요하네스 바이스(Johannes Weiss)교수는 ...
1969년 쾰른 대학에서 사회학으로 석사학위를 받고, 불과 6개월 후에는 동 대학 철학과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은 천재적인 사회학자이자 문화사상가이다
Max Weber 연구의 세계 제 1급의 권위자이며 그의 문화 해석학적 접근 방법은 이미 사회학을 넘어 철학, 정치학 심지어는 독문학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근자에는 ‘울리히 벡’에 대한 격렬한 비판, 이태리에서 벌어진 ‘위르겐 하버마스’와의 논쟁 그리고 최근의 ‘귄터 둑스’와의 3차례에 걸친 ‘현대성’ 논쟁을 통해 독일의 사회과학자들 사이에서는 용감한 묵시적 대변인으로 인정받고 있다.

통역을 담당해주신 홍정진 박사는 ...
1985년 본교 사회학과 졸업, 프랑크푸르트 대학에서 음악 미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또, 199년부터 2002년까지 카셀 대학교에서 문화 사회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현재 본교 한국사회연구소에 선임연구원으로 있으며, 본교 대학원과 한국종합예술학교에서 강의하고 있다.

학자에게 64살의 나이는 많지 않다. 아직도 왕성한 연구 활동을 펼치고 있는 64살의 세계적인 석학 요하네스 바이스 교수를 만나봤다.

△<Weber and the Marxist World (1986)>라는 책을 집필하셨는데 이 책의 중요한 쟁점은 무엇입니까.
- <Weber and the Marxist World>는 1981년에 독일어로 출판됐다. 1981년이면 6·8학생운동의 영향력이 대학을 지배하던 시기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독일대학 내에서는 맑스 운동이 활발했다. 그리고 맑스의 반대자로 베버가 등장했기 때문이 이런 책을 발간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현대로 넘어오는 길목에서 현대성을 대변할 수 있는 인물로 맑스와 베버 중 누구를 택할 것인가 하는 갈등에 부딪혔다. 이 때 서유럽과 미국에서는 현대성의 바탕을 베버에서 찾았다. 동구권의 사회주의자들은 레닌이나 맑스에게서 새로운 세기를 설명할 수 있는 체계를 찾으려 했다. 결국 사회과학자 중에서 베버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독특한 방식으로 재해석 운동이 벌어지는데 나도 거기 동참하게 됐다.

무엇보다도 베버의 사상적인 생각들이 동구권은 물론이고 서구권조차 많이 왜곡됐고 심하게 변형돼 이것을 수정하고 싶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베버의 이론이 오늘날 현대사회 문화발전을 설명할 수 있는 잠재성을 가진 이론이라는 사실이다. 맑시스트의 일방주의적이고 왜곡된 베버 해석에 대해 의문을 갖게 됐고 이 책에서는 그 점을 집중해 집필했다.

맑스는 정치, 학문, 도덕의 문제가 분리되지 않았고 도덕과 철학을 가지고 정치적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고 봤다. 반면 베버에게는 모두 분리 됐다. 내가 알고 싶었던 것은 학문의 한계가 어디인지, 학문의 영향력이 어디까지 미쳐야할지 하는 것이다. 사회를 구성하는 각 분야의 서로의 한계를 인정하며 도움요청을 구해야 한다. 사회과학 전반에 걸쳐 맑스에는 전지전능함이 부여됐는데 과연 이것이 타당한 것인지 의문이다. 막스 베버에 있어 중요한 것은 학문의 자유였다. 학문은 심지어 도덕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어야 한다. 모든 곳에서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 한 진정한 학문이 이뤄질 수 없다.

△학문은 도덕에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학문이 도덕으로부터 어떻게 자유로울 수 있습니까.
- 학자와 학문은 구별해야 한다. 학자는 당연히 도덕적이어야 하고, 정치적 성향을 가질 수 있며 때로는 가져야 한다. 그러나 학문이라는 자체가 도덕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도구가 되서는 안 된다. 학문 자체는 어떠한 사실에 대해 선악을 판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교수님께서는 9·11테러에 대해 약간은 다른 생각을 갖고 계신다고 들었습니다. 교수님께서는 9·11테러를 어떻게 보고 계십니까.

- 이슬람 테러리즘은 우리가 알고 있는 사회학적 유형으로 설명이 불가능하다. 이들이 무조건 나쁜 사람들이라고 악마화시키는 생각은 위험하다. 사실 테러리스트는 매우 똑똑하고 공부를 많이 한 사람들이다.

또한, 테러리스트의 분노를 가난한 사람들의 분노와 동일시해서는 안된다. 9·11이후 아일랜드 여자가 “저들이 얼마나 고통을 받았으면 테러리스트가 됐을까”라는 말을 했다. 그것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동조하긴 쉽다. 하지만 그렇다면 히틀러가 유태인 6백만명을 죽인 것도 용인될 수 있다는 것인가. 사회의 불평등에서 테러의 원인을 끌어내서는 안 된다. 그렇게 되면 자동적으로 테러리스트에게 동조하는 입장으로 가게 되기 때문이다.

테러는 우두머리 이론가의 심리적인 요인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오늘날 테러의 많은 부분이 매우 지적인 사람들에 의해 고안되거나 유도된 경향이 점점 강해지는 추세다.테러 목적의 대부분은 우두머리 이론가가 유도한 것으로 결국 순수한 질서를 유지하기 위함이다. 현대사회의 불균형, 불평등 심화, 부조화, 가치해체에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이 통일된 이상 세계를 가지고 이데올로기를 주장하다 구현되지 않으면 폭력을 가지고 이상을 일으키려 하면서 발생한 것이다. 조화적인 세계질서를 재현해야 한다는 이데올로기인 것이다. 이런 것이 나치, 스탈린 같은 테러리스트의 공통점이다. 테러는 이데올로기 문제이다.

△독일의 통일이후 서로 다른 이념들이 공존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각각의 이념적 차이로 인한 문제점과 그리고 해결방안, 서로의 문화적인 융합과정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 동독은 사회주의 국가였고 평등주의가 매우 강하다. 귀족층이 있지만 귀족층 내에서도 평등주의가 존재했다. 동독은 평등주의가 엄격했던 사회이다.
현재 동서독의 가장 큰 문제는 경제적 비대칭이다. 1989년 독일이 통일됐을 때 서독의 콜 수상은 5년내 동서독의 경제수준을 동등하게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만약 그것이 성공했다면 아직도 동독에 잔존하는 사회주의 이데올로기가 사라졌을 것이다. 그러나 사회·경제적 비대칭 문제는 아직 해결되지 못했다. 이는 동서독 체제를 충분히 경험한 30~40대 동독 사람들에게 ‘우리가 차별 당한다’는 열등의식을 갖게 했다.

그 결과 경제적 약자 입장에서 ‘도덕적으로 우리가 더 우월하다(평등하고 단결력이 뛰어나며 이웃끼리 서로 잘 돕는다)’는 의식을 가지게 됐다. 도덕적으로 우월하다는 보상심리가 아직 남아있는 것이다. 반면 젊은이들에게는 이러한 현상을 발견하기 힘들다. 지난해 바이마르 대학에서 프리드리히 니체 석좌교수를 역임한 적이 있다. 거기서 몇몇 동독의 젊은이는 과거의 단절을 통해 더욱 자유로웠다. 일부는 서독에 대한 우월감까지 가지고 있었다. 이 동독의 신세대들은 과거의 동독 제도를 옹호할 어떤 근거도 발견하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서독 젊은이들에 대해 열등감을 가질 필요도 의무도 없다. 젊은이들은 가장 자유롭고 개방적이고 진취적이었다. 내 관점이 전적으로 맞는 것인지 몰라도 지난해에 그들은 매우 신기하게 바라봤었다.

△현재 서구를 중심으로 한 문화의 세계화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문화의 세계화의 쟁점은 무엇인지, 앞으로는 어떤 형식으로 진행될지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 문화의 의미는 복수에 있다. 다양함이 문화의 전제다. 다양함이 없는 문화는 이미 의미를 상실한 것이다. 문화의 의미는 다양함과 다수이다.
하지만 세계화가 되면서 어느 부문은 어쩔 수 없이 하나로 통일이 된다. 문화세계화 과정에 의 2가지 큰 축은 학문과 경제다. 이런 세계화 과정에서 어느 부분까지는 기술적 지배가 다양함을 파괴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어느 부분까지는 특정문화가 지배적 역할을 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러나 문화 세계화의 과정에서 문화의 다양성을 잃어서는 안 된다.
특히 학문은 큰 구속성을 발휘한다. 우리가 문화의 세계화에 반대해 서구의 학문이라고 포기한다면 패자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미 입증된 가치는 인정해야 한다.

△유럽이 점차 통합되고 있습니다. 유럽통합 이후 유럽내의 문화변동을 어떻게 이뤄지고 있습니까.
- 현재는 유럽통합에 의해 공통적인 문화추구는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우리는 유럽통합에 이러 문화의 통합이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현재의 정치가들조차 전혀 관심이 없다. 물론 역사적이고 문화적인 것이 언젠가는 관심의 대상일 될 것이다. 현재 터키가 유럽 연방에 가입하려고 하고 있다. 문화적?역사적으로 관찰한다면 터키는 유럽 문화권이 아니다. 하지만 정치가들에게 있어 터키를 EU에 받아들일지 말지에 대한 문제는 문화적인 문제가 아니라 국제정치에 부합할지의 문제이다.EU는 점점 확장추세에 있다. 앞으로 북아프리카 시리아 이집트로 들어가게 될 것이고, 이스라엘은 이미 좋은 후보로 올랐다. 자연스럽게 문화의 다양함에 유럽문화의 정체성은 묻힐 것이다.

△교수님께서 관심을 갖고 계신 ‘가족’에 대해 질문드리겠습니다. 현대사회로 올수록 이혼률이 증가하고 있으며, 결혼제도에 속하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 젊은 독일 사람들에게 가족에 대해 질문하면 대다수가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고 살길 원한다고 대답한다. 이혼율이 높아지면서 가족이 해체된다는 인상을 주는 게 사실이지만 가족에 대한 가치의 존중은 지금도 변함없다. 또 형태가 달라져서 그렇지 이혼 후 다시 재혼해 가정을 꾸리는 것을 무시해서는 안된다.

△동거율과 저출산 가족의 증가는 가족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 동거나 저출산 가족의 증가는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동거는 국가의 인정을 포기하고 스스로 결혼을 결정, 인정하고 싶다는 개인주의에서 비롯한다. 새로운 개인주의의 하나다. ‘나는 국가의 제도라는 틀이 필요없다’는 것으로 가족제도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스스로 가족제도를 규정하는 것으로 가족제도와 모순관계에 있는 것은 아니다. 이는 대안 없는 현대사회 개인화의 현주소다. 동거가족이 늘어나기는 하지만 가족이란 제도를 파괴할 정도로 큰 변수는 아니다. 이는 젊은 사람에 한정된 것이다. 사회가 가족이 보장하던 고정성, 폐쇄성이 점차 유연한 형태를 가지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문제다.

어쩔 수 없는 부분이지만 여성해방운동이 가족해체의 큰 부분을 담당했다. 해방과 동시에 여성은 직업을 추구했다. 하지만 직업과 집안일을 병행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자녀 교육에 문제가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 현재 텔레비전이 노동자 가정의 자녀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다. 알게 모르게 교육을 텔레비전에 넘기는 것은 큰 문제다. 해결방법은 남자가 여자를 많이 도와주는 것이다. 그래야 매스미디어에게 우리가 믿어왔던 이상적인 교육을 뺏기지 않을 것이다.

1시간을 예상하고 갔던 인터뷰는 2시간을 넘기고서야 끝이 났다. 인터뷰 내내 강한 어조와 자신감 넘치는 답변이 이어졌다. 왕성한 연구와 사회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한 인터뷰에서 기자는 다시 한 번 세계 석학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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