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학생총회는 학생들의 요구를 학교에 전달하는 장이 돼 왔다. 90년 이후 성사된 비상학생총회와 요구안건들에 대해 정리해봤다.

1991년 2천여명이 참석해 성사된 비상학생총회에서는 △학교측의 등록금 15%인상방침 수용 △학교와 학생대표가 참여하는 학생문제 협의회 구성에 대한 안건을 내놓았다. 하지만 2245명 중 1183명이 반대해 부결됐다.

1994년 2740명이 참석해 성사된 비상학생총회에서는 등록금 공동인상심의위원회 구성 등의 △학원개혁요구안 △4·18기념관 점거 농성 △수입개방 반대안 △동맹휴업을 주장했다. 이중 동맹휴업안건이 36.92%의 찬성을 얻어 부결됐고 나머지 세 안건은 모두 가결됐다.

1995년 2121명이 참석해 성사된 비상학생총회에서는 학교 당국에 제시할 요구안과 요구안 관철을 위한 천막농성 안건이 모두 가결됐다. 1996년에는 〈서총련〉총궐기 시위 도중 사망한 故 노수석 학생의 장례식과 관련해 〈한총련〉동맹휴업 찬·반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열렸다. 2075명이 참석해 성사됐으며, 동맹휴업 안건이 80.3%의 지지로 가결됐다. 그리고 △시위진압 책임자 전원 처벌 △대선자금 공개 및 교육재정 확보 △부총학생회장 석방을 요구하는 투쟁결의문을 채택하기도 했다.

1997년 성사된 비상학생총회 이후 5년간 성사되지 않다가 2002년 김정배 총장의 연임문제로 다시 비상학생총회가 소집됐다. 2002년 비상학생총회에서는 당시 성만영 학생처장이 김정배 총장의 연임포기 의사를 밝혔다.

그리고 지난 2003년에는 정족수 1871명을 넘긴 2349명이 참석해 비상학생총회가 성사됐다. △등록금 동결 △등록금 책정 자문기구 설치 △교양강의 개설권 및 실질적 강의 평가 △도서관 개선 등을 결정했다. 이때 참가자들은 거수로 7가지 안건을 통과시켰지만, 후에 요구안 채택을 거수로 결정한 것에 대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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