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국이 어수선한 탓인지 교내의 목련도 예년보다 일찍 피고 있다. 겨우내내 기다리던 인내가 한송이 꽃으로 승화하는 것을 보면 자연의 신비를 새삼 느끼게 된다.

이른바 탄핵정국으로 시작된 정치적 갈등이 조금은 차분해지고 있는 느낌이다. 그간의 원인을 분석하는 것이 지금 와서 무슨 의미가 있으련만, 개인적 생각으로는 조금은 사려 깊은 정치적 행동들이 있었다면 이러한 갈등도 불필요한 것이 아니었나 라는 생각을 한다.

이른바 탄핵정국은 우리 사회에 이념이나 계층간의 대립이라는 새로운 갈등요소만을 만들어 놓았다. 가까이 다가온 총선도 정책대결이 아니라 이러한 갈등구조가 주요한 선택요인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갈등은 도처에서 야기되고 있는 것 같지만, 그러나 그 갈등이 무엇을 지향하는 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선뜻 답을 내기 어려운 듯 하다. 우리는 진정 무슨 변화를 지향하는 갈등을 하고 있는 것인가?

이러한 고민중에 최근에 어느 정도의 답을 주는 갈등의 양상은 개인적으로는 매우 신선한 느낌을 갖게 됐다. 개혁 또는 변화란 정치권차원에 진행되는 거창한 것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보여주는 갈등을, 이른바 야간촛불집회와 공무원의 정치적 의사표시사건에서 찾을 수 있었다.

두 사건의 공통점은 성숙한 시민사회의 의식에 비해 실정 법률이 아직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이들 두 사건은 적어도 현행법의 기준에서는 유감스럽게도 모두 위법행위라는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는 점도 공통점으로 지적될 수 있다.

그러나 이 두 사건에 공통적으로 바탕이 되고 있는 정치적 의사표시의 자유는 여론형성의 가장 기본적인 전제여건이며, 따라서 국가는 실정법에 의하여 이러한 정치적 의사표시를 보장하는 제도를 마련할 의무를 지고 있다. 우울한 우리의 과거 정치현실은 그러나 야간집회의 허용으로 발생할 수 있는 정치적 소요를 더 걱정했고, 공무원의 정치적 기본권은 관권선거나 정치적 남용의 가능성을 우려하여 제약의 대상이 될 수 밖에 없었다.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개혁의 한 방향은 정치적 참여를 확대하는 것이다. 시민들에 의한 다양한 의견개진 가능성을 보장하여 정치적 발전을 추구하는 것이 변화의 한 내용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야간집회를 통한 정치적 의사표시는 허용돼야 한다.

이를 위해 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 제10조는 시급하게 개정돼야 한다. 지금처럼 원칙적으로 야간집회를 금지하고 예외적으로 허용되는 체제가 아니라, 그 반대로 원칙적으로 야간집회를 허용하되 불가피한 경우에 한해 제한하는 구조로 전환되는 것이, 헌법상 보장된 기본권인 집회및시위에 관한 권리이념에 부합할 것이다.

또한 공무원의 정치적 의사표시의 자유도 보장돼야 한다. 공무원은 국민전체의 봉사자이며, 전체국민을 대표한다는 이념은 물론 가볍게 다룰 수 없는 중요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이념은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서’ 요구되는 것이며, 공무수행과 무관한 사적 영역에서도 요구되는 내용은 아니라고 이해돼야 한다. 따라서 교원이 수업시간에 자신의 정치적 의사를 통해 교육내용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인정될 수 없을 것이다. 최근의 외국 입법이나 판례도 교육내용의 정치적 및 종교적 중립성을 강조하는 입장에 있고, 이러한 취지는 우리의 경우에도 그대로 타당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공무수행의 영역이 아닌 사적 영역에서까지 이러한 의무를 요구하는 것은 지나친 기본권 침해라고 봐야 할 것이다. 공무원도 시민으로서의 지위를 갖는 것이며, 이에 따라 시민으로서의 지위에서 주장할 수 있는 정치적 기본권은 보장돼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현행 국가공무원법 및 지방공무원법등에 규정되고 있는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의무는 개정될 필요가 있다.

갈등은 그 자체만으로 의미를 갖는 것이어서는 안되며, 새로운 변화나 개혁을 지향한 갈등일 필요가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시민들의 야간집회나 공무원의 정치적 의사표시를 둘러싼 갈등이 추구하는 변화방향의 선명성만큼은 인정돼야 할 것이다.

물론 이러한 방향을 모색함에 있어, 의도적인 위법행위의 강행과 강제적인 처벌에 의한 대답보다는 대화와 타협의 방법에 의하여 해결하는 지혜가 필요할 것이다.

류지태(법과대 교수, 행정법)

저작권자 © 고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