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국악원에서 황진이를 음악극으로 올린다면서 한시(漢詩)에 대한 강연을 해달라고 하기에 원고를 만지던 중이었다. 그러면서, ‘권력과 쾌락과 광명’의 추구를 상징하는 루이 14세(브느와 마지멜 분)의 춤이 너무도 인상적이어서, 제라르 코르비오가 감독한 <왕의 춤(King is Dancing)>이란 영화를 끝까지 다 보았다.

평소 두 가지 이상의 일을 동시에 하는 습관이 있는 나는, 그만큼 한 가지에 몰두하지 못해  영화를 좋아하면서도 거기에 깊이 빠져들지 못했다. 영화 감상이라고는 해도, 비디오 대여점을 통해서, 그것도 14인치 텔레비전의 작은 화면을 이용하여 줄거리만 쫓아가는 식은 애당초 고차원의 감상이라고는 할 수가 없으리라.

그런데 이 프랑스 영화는 노란 색조가 아주 강렬해서, 교정을 보던 손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 영화 속에서 이태리 출신 음악가 ‘륄리’ (보리스 테랄 분)는 친구 몰리에르와 경쟁하면서까지 루이 14세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그럼으로써 음악에 대한 열렬한 사랑을 키워나간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그런데 내가 흥미를 느낀 점은 영화 속의 루이 14세가 신성 왕으로서 성장하기 위해 음악을 철저히 이용했고 권력의 아래에 음악을 종속시켰다는 사실이었다. 루이 14세는 처음으로 프랑스에서 왕으로서의 신성한 권력을 확립한 인물이라고 세계사 교과서나 일반 상식의 책에서 읽은 일이 있다.

또 음악을 포함한 예술 일반과 정치와의 관계는 그간 미학 관련의 여러 책들에서 자주 접하였던 문제였지만, 그것도 본격적으로 논해보지 못한 터였다. 그런데 이 영화는 서구 역사와 미학사의 탄탄한 해석을 토대로 그 두 주요한 테마를 다룬 것이다. 영화의 완성도에 대해서는 이러저러 평가가 다를 수 있겠지만, 그러한 테마들을 다룰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이미 문화전통의 힘을 시사해준다고 하겠다.
 
집의 아이들이 하도 졸라서 미야자키 하야오의 <센과 치히로의 모험>도 빌려왔다. 애니메이션에 그리 흥미를 느끼지 못해 온데다가, ‘모험’이라고 하면 <인디아나 존스>식의 가벼운 오락물이라고 여겨 마뜩치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붉은 색조에 ‘매료되고’ 말았다. 만사에 적극적이지 않던 열 살짜리 여자아이(치히로)가 자신의 주체를 찾아나가는 과정을 환상의 공간과 사건을 통해서 멋지게 그려낸 작품이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나 <오즈의 마법사>를 연상시키는 면도 있지만, 등장인물의 성격이나 사건들은 모두가 일본의 문화전통을 배경으로 했고, 감독의 생태주의적이고도 인본주의적인 철학은 일본의 전통사상을 바탕에 깔고 있었다.
 
애니메이션을 보고서야 제목에 ‘모험’이라고 한 것이 잘못임을 알았다. 원어로 ‘가미가쿠시’였기 때문이다. 다른 번역으로는 그것을 ‘행방불명’이라고 하였다. 이것도 석연치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가미가쿠시’는 어린 아이가 갑자기 사라지는 현상을 두고, 신적 존재가 아이를 잠시 숨긴 것이라고 믿어온 일본인의 속신에서 나온 말이다.

더구나 이 애니메이션은 제목부터가 심상치 않다. 치히로(千尋)는 신들의 휴게처인 유야(목욕탕)의 주인 유바(욕탕 주인할머니)에게 자기 이름을 빼앗기고 센(千)이란 이름으로 일하게 된다. 돼지로 변한 부모를 센이 인간으로 되돌리기 위해 활약하는 과정은 곧 센이 자신의 이름을 찾아나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치히로의 이름에 찾을 심(尋)자를 쓴 것이다. 심(尋)의 글자는 ‘너비’라는 뜻과 ‘찾는다’라는 뜻이 있다. 감독은 그 점을 멋지게 이용하였으니, 그는 한자문화권의 전통을 최대한 이용할 줄 알았던 것이다.
  
최근 우리나라 정부는 부가가치가 높은 문화산업에 주목하고 있다. 외국어로의 번역, 영화 제작에 상당한 예산을 배정하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산업은 단시간에 손끝에서 훅 나오는 것이 아니다. 문화전통을 재해석할 수 있는 역량 속에서 나오는 법이다. 우리나라에서 출시된<센과 치히로의 모험>에서는 영화 주제가인 ‘언제고 몇 번이라도’가 빠져있다. 일본어 가창 음반을 출시 대상에서 제외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실은 그 곡 또한 일본 문화의 근저를 이루는 불교사상을 배경으로 하여 뜻이 매우 깊다. 노래 말에 이러한 부분이 있었다. ‘산산이 부서진 거울 조각들 하나하나에도 새로운 경치가 비치기 마련이다’

심경호(문과대 교수, 한국 한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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