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번역 문학 지평 열어

<개미> 3부작으로 자리매김

“현업보다 오감 만족에 집중”

 

  베르나르 베르베르 책 <개미혁명>에 등장하는 익숙한 이름, ‘지웅’은 주인공 쥘리와 같은 밴드에서 드럼을 치는 인물이다. 책 <개미>를 베스트셀러에 올린 홍지웅(철학과 73학번) 대표가 그 주인공이다. 한국에 러시아 문학의 길을 열기 위해 출판사 ‘열린책들’을 차리고, 38년간 책을 만든 홍지웅 대표를 만났다.

 

홍지웅 대표는 “예술에서 중요한 것은 독창성”이라고 강조했다.
홍지웅 대표는 “예술에서 중요한 것은 독창성”이라고 강조했다.

 

  철학·만화로 가득했던 대학 생활

  “라스꼴리니꼬프, 뽀르피리 뻬뜨로비치, 조시모프...어려운 이름의 연속이었죠.” 고등학생 시절, 홍지웅 대표는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을 읽다 덮었다. 도스토옙스키를 다시 만난 건 대학교 1학년 때였다. 철학이 모든 학문을 관통한다고 생각했던 그는 철학과에 입학했다. 기대와 달리 1973년 캠퍼스의 공기는 암울하기만 했다. 학교는 계엄령으로 문을 여닫기를 반복했다. 그는 닫힌 교문이 열리길 바라며 하릴없이 책방만 돌아다녔다.

  대학교에서 알베르 카뮈, 사르트르, 니체를 배운 후 만난 <죄와 벌>은 완전히 달랐다. “<죄와 벌> 주인공은 사람을 평범한 범인(凡人)과 평범하지 않은 비범인(非凡人)으로 나눕니다. 사회에 쓸모없는 범인인 노파를 죽여서 유익한 일을 할 수 있다면, 더 선일까요? 하지만 누군가를 죽이는 건 용납할 수 없는 일이죠.” 그가 고민하던 실존의 문제가 모두 응축돼있었다. 홍 대표는 도서관을 돌아다니며 도스토옙스키 자료를 샅샅이 긁어모았다. 하지만 자료가 많이 없었을뿐더러 있더라도 일본어를 거쳐 번역된 중역본이 대부분이었다.

  대학원에 진학하기 전, 만화를 그리기 위해 고대신문에 입사했다. “네컷만화를 그리고 싶었어요. 그때 네컷만화가 일본과 우리나라에만 있었는데, 대부분 시사 문제를 다뤘죠.” 홍 대표는 주인공 ‘고돌이’를 내세워 전두환 정권과 박정희 정권에서의 일화를 담았다. “당시에 검열이 심해서 함부로 그리지 못했어요. 다 추상적으로 그려야 했습니다.” 1980년 5월 계엄령 이후, 만화를 그리면 종종 서울시청 2층 계엄사 검열실에서 검열관의 허가를 받아야 했다. 허가를 받지 못하면 그 앞에서 바로 다시 그렸다. 그가 그린 만화와 검열된 흔적들은 현재 본교 박물관에 보관돼있다.

 

홍지웅 대표가 본지에 연재한 네컷만화 ‘고돌이 군’. 그는 총 104회의 시사만화를 연재했다.
홍지웅 대표가 본지에 연재한 네컷만화 ‘고돌이 군’. 그는 총 104회의 시사만화를 연재했다.

 

  번역 문학의 문을 열다

  홍 대표는 대학 4년 내내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을 탐독하다가 노어노문학 전공으로 대학원에 진학했다. 도스토옙스키를 공부하기 위해 석사 졸업 후 미국으로 유학도 갈 생각이었다. “도스토옙스키만 파도 평생 직업이 생기겠다고 생각했어요. 번역도 제대로 다시 하고, 전기도 쓰고, 비평도 쓰고, 강의도 하면 되니까.” 하지만 이미 결혼도 하고 아이가 있는 그가 불쑥 유학을 떠날 순 없었다. 돈이 필요했다.

  당시 고대신문 부주간도 병행하던 그는 고대신문에서 편집 능력을 펼치고 있었다. 대학신문 최초로 신문 가로쓰기를 도입했고 <고대신문 축쇄판>과 책 <사진으로 본 고대 학생운동사>을 기획하고 편집해 수입을 거뒀다. 특히 <고대신문 축쇄판>으로는 기금 5000만 원을 모으기도 했다. “출판사를 차리고 책을 내면 먹고 사는 데에 지장이 없을 거라 생각했어요.” 1986년 닫혀 있던 러시아 문학의 세계를 열어가겠다는 다짐을 담아 출판사 ‘열린책들’을 설립했다.

  그의 목표는 일본어를 거치지 않고 우리말로 온전히 번역하고, 전집을 발간하는 것이었다. 첫 책은 솔제니친의 <붉은 수레바퀴>. 총 7권 중 3권까지 출간했을 때, 권 당 1000부도 팔리지 않았다. 하지만 독자 한 명을 위해서라도 완간을 해야한다는 일념 아래 재정악화를 감수하고 전집을 냈다.

  빚이 쌓여가던 출판사를 살린 건 <아르바뜨의 아이들>이었다. 그는 우리나라와 교류가 없었던 1988년 소련과 국내 최초로 판권 계약에 성공했다.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개미>가 출판사의 판도를 완전히 뒤바꿨다. 처음 에이전시를 통해 <개미>를 소개 받았을 때, 소재는 독창적이 었지만 베르베르는 무명작가였다. 그는 출간 전에 신간 정보를 제공하는 ‘북캐스트’를 홍보 방법으로 선택했다. 신간 정보가 새어 나갈까봐 쉬쉬하던 출판계에서 이례적인 시도였다. 덕분에 <개미>는 출간 일주일 만에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이후 홍 대표는 평생 염원이었던 <도스토옙스키 전집>을 2000년에 완간했다. 이를 완성하기 위해 23명의 역자와 약 4억 원의 자금이 투입됐다. 일본어를 거쳐 번역됐던 도스토옙스키 작품 대부분을 본격적으로 번역했다. 그는 번역이 제대로 되지 않았던 러시아 문학의 틈을 찾아 파고들었다. “옛날에는 출판사마다 전공이 있었어요. 열린책들은 번역 문학, 문학동네는 한국 문학이었죠. 요즘은 보편적인 소재나 주제를 다루는 출판사가 많지만 세세하게 파고들면 틈이 있을 수 있습니다.”

 

  세상을 새롭게 보게 하는 건축

  홍지웅 대표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독창성이다.“예술은 무언가를 새롭게 볼 수 있게 해야 해요. 늘 보던 대로 만들거나 사고하던 대로 사고하면 안 됩니다.” 대표적인 분야가 건축이다. 그는 지금까지 상업 건물을 포함해 9개 건물을 지었다. “가장 애정이 가는 건 아무래도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입니다.” 미메시스(mimesis)는 모방이라는 뜻으로,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의 하얀 외벽과 곡선이 어우러져 고양이를 연상시킨다. 2002년, 2012년에 베니스 건축 비엔날레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알바루 시자가 파주 출판단지에 설계했다. “출판과 마찬가지로 건축은 공공의 것이에요. 미메시스는 제가 지었지만, 제 소유라고 말하기 어려워요. 일반인들이 쓰는 용도로 지었고 모든 가치는 사용에서 나오니까요.”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에는 매년 5만 명이 방문한다. 건물 외관뿐만 아니라 매년 진행되는 전시와 ‘열린책들’ 도서들을 보기 위해서다.

  최근 홍지웅 대표는 현업에서 상당 부분 손을 뗐다. ‘열린책들’은 2세대 경영인 체제로 돌입해 홍지웅 대표의 자녀가 이끌어가고 있다. 그는 “요즘 손주들 놀아주고 드럼 연습하는 게 삶의 낙”이라며 웃었다. 책은 신간이나 오면 펼쳐 보지만 의도적으로 읽지 않는다. “35년 동안 책을 만들었는데, 그러다 보면 일이 아닌 것들엔 소홀해집니다. 그림도 그랬죠.” 60대가 되면 그림을 그리려고 했지만 여의치 않아 일단 드럼을 열심히 쳐볼 생각이고, 올해부터는 그림을 그려볼 예정이다. 평생 책을 만져온 그의 그림은 어떤 모습일까. 하나만은 확실하다. 그가 그리는 그림은 지금까지 세상에 없었던 꼴일 테다.

 

글 | 임예영 취재부장 yeye@ 

사진 | 한다빈 기자 binsoffthewall@

이미지 출처 | 고대신문 연재만화 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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