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가습기살균제 제조판매사의 배상 책임을 처음으로 인정했다. 가습기살균제 제조판매사가 정부 지원 대상에 포함되지 않은 3등급 피해자에게도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는 판결이 지난 9일 나왔다. 가습기살균제 사건이 알려진 지 12년 만이다.

  옥시레킷밴키저와 납품업체 한빛화학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한 김모 씨는 2007년부터 2011년까지 옥시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하다가 2010년 질환에 걸렸다. 질병관리본부는 2011년 가습기살균제가 폐를 손상한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피해 정도를 4단계로 분류했다. 1, 2단계 피해자들은 인과성이 인정돼 소송 없이 합의금을 받을 수 있었지만 3, 4단계 피해자들은 배상을 받지 못했다. 3단계 판정을 받은 그는 2015년 옥시가 위험물질이 포함된 가습기살균제에 ‘인체에 안전하다’는 문구를 표기했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2017년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특별법이 통과돼 피해 인정 범위가 늘어났으나 기업 차원의 배상은 이뤄지지 않았다.

  대법원은 기업이 김 씨에게 다른 원인이 있음을 증명하지 못했다고 봤다. 증명 책임과 손해배상 책임을 기업에 적극적으로 물었지만, 아직 갈 길은 멀다. 이번 판결은 옥시라는 특정 기업에 대해서만 배상 책임을 확정했기 때문이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3분의 1은 SK케미칼과 애경 등을 사용했지만, 해당 기업의 살균제는 옥시와 구성 성분이 달라 형사적 책임이 확정되지 않았다. 게다가 이번 판결 자체는 김모 씨에게만 국한되기에 개별적으로 소송을 진행한 피해자들은 소송 과정을 한없이 기다려야 한다. 지난달 기준 공식 피해자 중 1800여 명이 사망했다. 지체할 시간이 없다. 인과관계를 신중히 따져봐야 하는 사법부는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다. 기업은 사회적 책임을 지고, 환경부는 피해 판정 지연 방지에 온 힘을 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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