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위 “빈곤 자살 노인 많아”

급속 경제성장·제도 부족 원인

“정부 지원만으론 생활 힘들어”

 

점심시간이 되자 노인들이 무료 급식을 받기 위해 탑골공원 무료급식소로 이동하고 있다.
점심시간이 되자 노인들이 무료 급식을 받기 위해 탑골공원 무료급식소로 이동하고 있다.

 

  한국 노인빈곤율은 2020년 기준 40.4%로 OECD 38개 국가 중 1위다. 노인빈곤율은 중위소득의 50% 이하 노인 인구 비율로, 한국은 OECD 평균 수치의 3배다. 노인 빈곤은 노인 우울증과 자살로도 이어질 수 있다. 2019년 기준 노인자살률도 10만명 당 46.6명으로 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은 수준이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 3일 “빈곤 등으로 자살하는 노인이 많은 현실을 무겁게 인식한다”며 빈곤 노인에게 더 많은 기초연금액을 지급할 것을 권고했다. 서울 종로 광장시장과 탑골공원 일대에서 만난 노인들에게 연금이 자신의 생활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물었다.

 

  경기 침체 속 연금, 적지만 도움

  노인들은 연금 등 국가가 제공하는 복지 혜택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종로 광장시장에서 25년째 호떡 장사를 하는 민남선 할머니는 매달 20~30만원의 연금을 받는다. “20~30만원이 생활에 얼마나 도움이 되겠어요. 그렇다고 더 바라지도 않죠. 우리 같은 사람들은 연금을 많이 못 넣어서 많이 받지도 못해요.” 시장에서 20년 동안 장사를 한 A(여·64) 씨는 12만원 정도를 수령한다고 전했다. “아휴, 돈 받는 거 누구 코에 붙여요. 물가가 너무 올라서 더 그래요. 복지 정책은 국회에서 더 활발하게 논의하면 좋을 텐데 그렇지 않아서 아쉽죠.” 광장시장을 나와 탑골공원으로 가는 길가에서 노점을 운영하고 있는 방명희 할머니는 “노령연금이 큰 도움은 아니어도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라며 “노인들이 더 원한다고 국가에서 빚내서 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탑골공원 옆 노점상 강효순 할머니는 연금 액수가 적어도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요즘 물가가 올라서 장사가 워낙 안돼. 그런 와중에 연금은 도움이 많이 되지. 연금은 더 바라지도 않아.”

  탑골공원에서 산책하던 B(남·70대) 씨는 노령연금을 적게 드는 것이 낫다고 말한다. “노령연금을 많이 받으면 기초연금을 적게 받아요. 연금 적게 들어서 기초연금과 노인 일자리로 꽤 받고 있죠. 오히려 연금을 적게 드는 게 나은 것 같아요.” 이는 연계 감액 제도의 영향이다. 연계 감액 제도란 연금가입 기간이 길수록 기초연금액이 깎이는 구조로, 기초연금을 받는 사람이 받지 않는 사람보다 소득이 더 높아지는 것을 막기 위해 생겼다.

  민남선 씨는 가장 혜택을 보고 있는 국가 복지로 무료 지하철 이용을 꼽았다. “다른 복지는 사실 크게 와닿지 않아요. 지하철 무임승차를 가장 많이 이용하고 있죠.” 우리나라는 만 65세 이상 노인을 대상으로 지하철 무료 승차 정책을 운용 중이다. 반면 방명희 씨는 지하철이 무료라도 노인은 이용하기 어렵다고 전한다. “버스는 돈을 내야 하니 버스 카드 충전하러 많이들 가게에 들르죠. 다들 계단을 무서워해서 지하철은 이용하는 사람들만 이용해요.”

  탑골공원 주변에서는 노인들을 대상으로 한 무료 배식이 운영됐다. 50여 명이 줄을 서 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종로 학원가를 지나가던 대학생 C(여·22) 씨는 “노인 빈곤 심각성은 인지했지만 언론이나 정치권의 언급은 적은 것 같다”고 말했다.

  김태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노인을 대상으로 여러 제도 등이 함께 운영되고 있지만, 실제 급여 수준이 높지 않아 정부 지원을 통해서는 생활하기 어렵다”며 “여전히 많은 노인이 직접 노동시장에 비정규직의 형태로 참여해 소득 활동을 하거나 자녀 등에 의존해 생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심각한 노인빈곤율 원인은

  노인은 우리나라의 급속한 경제성장의 혜택을 누리지 못했다. 이는 노인빈곤율 상승으로 이어졌다. 이승희 KDI 연구원은 “고령층 내에서도 1950년 이전 출생 고령층과 이후 출생 고령층의 빈곤 수준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며 “경제성장이 빠르게 이뤄져 세대 간 소득 격차와 세대별로 노후 보장체제의 성숙도가 다르다”고 밝혔다. 1950년 이전 출생 세대는 급속한 경제성장의 혜택을 누리지 못했고, 국민연금도 1998년 전 국민을 대상으로 확대돼 가입 기간이 짧아 수령 금액도 적다는 것이다.

  노후 소득보장제 부족도 언급된다. 김태완 연구원은 “현세대 노인의 대부분은 연금 혜택을 받기 어렵고, 스스로 노동시장에 참여해 소득을 벌어야 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한다. 서구 복지국가의 경우 연금급여가 노인 소득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지만 한국의 경우 노인들은 국민연금 가입 기회가 적어 급여가 높지 않다. 노령연금 급여액에 영향을 주는 요소는 가입 기간이다. 만 65세 이상 중 20년 이상 가입자는 만 65세 이상 인구 대비 4.15%에 불과하다.

  현재 우리나라의 노인 대상 복지에는 기초연금, 국민연금, 퇴직연금, 주택연금, 농지연금, 노인 일자리 사업 등이 있다. 대표 복지인 기초연금은 소득인정액이 하위 70%인 노인에게 월 약 32만원을 지급하는 제도고, 국민연금은 정부가 주도하는 사회보험 제도다. 노인 일자리 사업은 정부에서 고령층에게 공익사업이나 공공서비스 등의 일자리를 제공하고 급여를 지급하는 제도로 공익형은 월 27만원을 수령한다.

  한편 OECD 노인빈곤율 통계가 실제보다 과하게 추산됐다는 의견도 있다. 주명룡 대한은퇴자협회장은 “우리나라 노년층은 대부분 자산이 부동산에 묶여 있고 자식들에게 용돈을 매달 받는 경우가 많다”며 “이를 소비와 저축으로 쓸 수 있는 돈인 가처분 소득으로 인정하면 노인빈곤율이 30%대로 떨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노인 빈곤 해결하려면

  노인 빈곤과 부족한 복지를 해결하기 위해 전문가들은 적극적인 노인 일자리 창출과 지원 정책의 연계를 제안한다. 노인 빈곤의 심각성이 정치계에서 주목받지 못하는 상황을 지적하기도 한다.

  김태완 연구원은 “교수나 공무원, 전문직 등이 중심인 사회지도층과 여론 주도층은 이미 특수직역연금을 통해 상당한 연금급여를 받고 있다”며 “보유 자산이 많아 노인 빈곤 문제를 크게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사회가 노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대한은퇴자협회는 ‘배벌사(배우고 벌며 사는 것)’를 슬로건으로 내세운다. 주명룡 회장은 “하루에 8, 900명씩 쏟아져 나오는 아버지 세대의 퇴직자들에게 직장 정보를 제공한다면 연금과 일자리 소득으로 생활비를 유지할 수 있다”며 “월 27만원을 벌기 위해 노인 일자리에 줄을 서는 노령층을 위해 일자리 제공에 계속해서 힘써야 한다”고 전했다.

  김태완 연구원은 “현재 노인 세대는 국민연금이나 퇴직연금으로 빈곤을 벗어나기 어려워 정부가 지원하는 기초연금, 노인 일자리 등을 촘촘하게 연결해야 한다”며 “국민연금 개혁이 일방적 진행이 아닌 국민적 합의를 통해 진행되면서 건강한 노인에게는 일할 기회를, 건강하지 못한 노인에게는 지출 부담을 줄여주는 정책을 시행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글 | 김아린 기자 arin@

사진 | 염가은 기자 7rr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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