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경 미디어미래연구소 전략연구센터장
김희경 미디어미래연구소 전략연구센터장

 

  1980년대에 이른바 ‘땡전 뉴스’라는 것이 있었다. 9시 뉴스의 시보가 ‘땡’하고 울리자마자 “오늘 ‘전’두환 대통령은”으로 시작되는 앵커의 브리핑이 뉴스의 첫머리를 장식하는 현상을 일컫는 단어다. 특정 기사가 언론 보도의 첫머리에 등장한다는 것은 그날의 가장 중요한 사건이라는 뜻인데, 그게 대통령의 하루 행보거나 지시 사항이었고, 이런 희한한 현상이 매일 아무렇지도 않게 반복됐다.

  대통령의 주요 일정이 소개되고 나면 “오늘 이순자 여사는”으로 시작되는 영부인의 일과가 소개됐다. 영부인이 어디 보육원이나 양로원을 찾아가 다과와 잔치를 베풀었다는 내용이었다. 그런 다음에야 그날의 주요 소식이 보도되지만, 그마저도 ‘보도지침’이라는 절차를 통해 국가가 거른 뉴스로 채워져 언론자유 말살의 무한루프로 접어든다.

  지금 이런 내용을 얘기하면 제대로 알아듣는 학생들이 거의 없다. ‘땡전 뉴스’니, ‘보도지침’이니 하는 것은 언론자유를 기본으로 하는 저널리즘의 원칙과는 너무나도 생소한 개념이고, 존재해서도 안 되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언론사에 보도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가이드라인으로 주고, 곳곳에 사람을 배치해 매일의 뉴스를 보도 전 체크하는 이른바 ‘언론검열’ 행위는 지금으로선 상상되지 않기에 이를 설명하는 데 한참 시간을 할애해야 했다.

  그런데 애써 과거를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사태가 최근 우리나라 공영방송에서 발생했다. 지난 14일 KBS 9시 뉴스는 시작과 동시에 ‘윤 대통령, 개선안 나올 때까지 공매도 금지’ ‘신도시 특별법 연내 처리’라는 리드로 전체 뉴스 49분 중 2분 35초를 할애하며 ‘땡전 뉴스’를 부활시켰다. 이날 ‘땡전 뉴스’는 윤 대통령의 지시 사항을 전달하고, 이어 곧 있을 해외 순방을 통해 국가에 어느 정도의 실익을 가져올지 기대된다는 기자의 멘트로 마무리됐다. 지난 14일 그 많은 뉴스 가운데 가장 중요한 뉴스가 대통령의 행보와 ‘지시 사항’이었다. 언론 역사의 부끄러운 과거가 반복되는 순간이었고, 입 아프게 ‘땡전 뉴스’의 폐해를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고마운’ 사례가 나타난 순간이었다.

  이와 같은 KBS의 보도 행태 변화는 지난 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방송 3법’과 매우 밀접하다. ‘방송 3법’은 공영방송 이사회의 이사 수를 늘리고 이사 추천 권한을 방송미디어 관련 학회와 시청자위원회, 직능단체로 확대하는 내용으로서, ‘방송법(KBS)·방송문화진흥회법(MBC)·한국교육방송공사법(EBS)의 지배구조에 변화를 꾀하고자 하는 취지로 개정된 법안’이다.

  현재 공영방송 이사회의 이사 수는 9명(MBC·EBS), 11명(KBS)인데, 이를 각 21명으로 늘리고, 이사 추천권은 국회 5명, 시청자위원회 4명, 방송·미디어 관련 학회 6명, 직능단체(방송기자연합회, 한국PD연합회, 한국방송기술인연합회 각 2인) 6명으로 나눠 갖자는 내용이다. 또한 공영방송 사장 선임의 경우 성별·연령·지역 등을 고려한 일반시민 100명이 직접 사장 후보를 추천하는 ‘사장후보국민추천위원회’를 신설하고, 이후 이사회가 재적 이사 3분의 2 이상 찬성으로 의결하도록 하는 내용도 담겼다.

  이사 수를 확대하고, 추천권을 외부 전문기관이나 시민에게 돌리는 이유는 현재와 같이 한정된 이사 수가 가지는 폐해 때문인데, 몇 명의 이사진만 교체하거나 사퇴를 시키는 방법으로 이사회 고유 권한인 사장의 임명(KBS는 대통령)과 해임을 정부의 의지대로 강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사장이 바뀌더라도 보도본부의 자율성과 언론의 독립을 최우선으로 하는 저널리즘의 원칙이 보장된다면 언론자유와 편집의 독립성에 대한 우려나 방송 3법이 관철될 이유가 없다.

  그러나 KBS 신임 사장의 취임 후 벌어진 일련의 사태(땡전 뉴스 부활, 주요 진행자 교체 등)는 방송 3법의 국회 본회의 통과가 어떤 의미인지 다시 한번 고려하는 계기가 됐다. 언론사의 보도와 편집권은 보도의 주체인 기자와 데스크(보도본부)에 있다. 이는 언론 보도의 자유뿐 아니라 표현의 자유라는 헌법적 가치를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로서 보도에 대한 사장과 경영진의 간섭은 언론자유를 표방하는 민주사회에서 발생할 수 없는 언론 탄압으로도 규정할 수 있다. 물론 방송 3법이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수호하는 충분조건이 될 수 있을 만큼 완벽하지 않다는 점도 인정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마저도 관철되지 않는다면 또다시 언론 자유의 역사는 ‘땡전 뉴스’의 무한루프에 갇히게 될 것이라는 점도 상기해야 한다.

 

김희경 미디어미래연구소 전략연구센터장

저작권자 © 고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