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옮겨 심지 않고 완전히 심는다’는 의미의 아주심기는 비단 식물과 작물에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아주심기를 하지 못한 작물처럼 나도 학교에 정을 붙이기 어려워 한동안 안암동에 완전히 심어지지 못했다. 이곳에 거주하지 않는 통학생이기 때문이었을까? 학교는 그저 수업을 듣고 시험을 보는 경직된 공간이었다. 학교에 마음을 완전히 주지 못한 채 어영부영 몇 학기를 다니니 잠시라도 이곳을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만이 머리에 가득했다.

  보문역이 눈에 들어온 건 그때였다. 그동안 보문역은 그저 안암역의 바로 전 역, 그 이상의 어떤 의미도 없었다. 고작 역 한 개 차이였던 보문이 학교와는 다른 곳이란 생각이 든 건 카페 ‘보리수’를 만난 후였다. 보문역에서는 약 5분 정도, 안암역에서는 이공계 캠퍼스를 크게 도는 방향으로 약 12분 정도만 걸으면 누구나 ‘보리수’를 찾을 수 있다.

  흰색 보드에 검은 글씨로 정갈하게 적힌 ‘커피’와 ‘계란 샌드위치’, ‘수프’, ‘바나나 토스트’라는 글씨는 ‘보리수’가 풍기는 단정함을 짐작게 한다. 원목 쟁반에 가지런히 놓인 계란 샌드위치와 수프를 보고 있노라면 소란하던 마음도 금세 차분해진다. 계란을 으깨 만든 샌드위치의 속은 너무 많지도, 적지도 않아 빵과 잘 어우러진다. 토마토 본연의 새콤한 맛이 그대로 담긴 수프는 속을 따뜻이 채운다. 샌드위치와 함께 나오는 당근 라페는 정갈한 맛의 향연에 새로움을 더한다. 계란 속의 담백함과 토마토의 상큼함, 당근 라페의 색다름은 마치 한식집의 한상차림처럼 조화를 이룬다.

  안암동 주민센터 근처, 성북천 산책로 앞에 위치하는 것 또한 ‘보리수’만의 편안하고 소박한 분위기를 만드는 데 한몫한다. 이곳을 삶의 터전으로 삼아 자리 잡은 사람들이 자주 다녀간다. 카페 ‘보리수’에 앉아 그들 틈에 섞여 산책로의 푸른 잎들을 바라보면 나 또한 이곳에 ‘아주 심어진’ 식물인 듯한 감각이 든다. ‘보리수’에서만 느낄 수 있는 사람 내음은 지친 마음을 위로하는 다정함을 지녔다.

  ‘보리수’가 건네는 따스함을 벗 삼아 안암동에서 살아 숨 쉬는 이들과 조금 더 부대끼며 지내보리라 다짐했다. 그리고 언젠가는 스스로를 아주심기 하리라 기대하며, 이와 같은 다짐과 기대를 바라는 모두를 ‘보리수’로 안내하고 싶다.

 

김유경(자전 정외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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