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가은 기자
염가은 기자

 

  본지 1986호 ‘사람들’면 에 실린 허태균 교수님 인터뷰 촬영을 다녀온 날이었다. 교수님은 행복에 무뎌진 한국인에 관한 말씀을 하셨다. “자극에 과하게 노출되면서 행복에 무뎌진 사회가 됐다”라는 말과 “우리 모두 착각에 빠져 산다”는 말에 전적으로 공감했다. 사람은 누구나 본인은 예의 바르며 정중하게 행동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본인의 생각은 무조건 올바르며 틀리지 않다고 확신하기 때문에 누군가가 의문을 제기하거나 불만을 제기하는 경우 불쾌해하며 납득하기 힘들어한다.

  현대인들은 돈이나 외모, 지위와 명예 등에 큰 가치를 두고 있어 자기 삶에 만족하지 못한다. 심하게는 우울감이나 불안감에 빠진다. 끝없는 욕심과 탐욕은 만족감을 주기보다 마음을 병들게 한다. 1997년 미국 PSB가 방영한 다큐멘터리에서, 너무 돈이 많아서 제대로 된 사고 판단을 할 수 없는 사람들을 두고 풍요(affluence)와 유행성 독감(influenza)의 합성어로 ‘어플루엔자(Affluenza)’라는 신조어를 내보였다. 일명 ‘부자병’이라 불리는 이 병은 욕심과 탐욕으로 인해 선한 가치가 망가지고 타인의 고통에도 점차 무감각해진다. 또한 이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소비지상주의의 환상을 추구하다 무력감, 과도한 스트레스, 욕구 불만, 쇼핑 중독, 만성 울혈 등에 시달리게 된다. 풍요로워질수록 더 많은 것을 욕망하고 그 탐욕이 마침내 영혼까지 갉아먹는다. 영국 심리학자 올리버 제임스는 미국, 러시아, 중국처럼 소득 분배가 불평등한 국가일수록 감염이 심하다는 이론을 제시했다.

  대개 사람들은 무엇이든 더 많으면 많을수록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내 경우, 옷장에는 입지 않는 옷들이 가득해 항상 옷이 바닥에 놓이는 일이 많고 책장에는 더 이상 읽지 않는 책으로 빼곡하지만, 알 수 없는 소유욕으로 쉽게 버리지 못할 때가 많다. 무엇이든 많이 소유하고 있으면 행복할 것이라고 착각한다. 나에게 있는 것 가운데 버릴 것을 과감히 정리하고 버려야 할 때가 있다. 지금보다 더 풍족해지길 바라고 원하지만, 사실 지금 것으로도 충분할지 모른다.

  인생을 살면서 부딪히는 문제들을 잘 살펴보면 결국 모자람 때문이 아니라 지나침 때문인 경우가 많다. 소유보다 욕심이 적어야 행복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모든 것을 손에 넣으면 희망이 사라진다. 어느 정도의 욕심과 희망을 비축해 보는 것은 어떨지. 진정 스스로 즐길 수 있는 일을 하고, 소소함에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 돼 보자. 마케도니아의 왕 알렉산더의 유언으로 알려진 이 말은 한 번쯤 고민해 볼 문제다. “나를 묻을 땐 내 손을 무덤 밖에 빼놓고 묻어주게. 천하를 손에 쥔 나도 죽을 땐 빈손이란 걸 세상 사람들에게 말해주고 싶다네.”

 

염가은 기자 7rr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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