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헌 사범대 역사교육과 교수
                                              조영헌 사범대 역사교육과 교수

 

  지난 탁류세평에서 다음과 같은 문제제기를 했다. 첫 번째 칼럼은 ‘‘소확행’적 역사가에서 ‘거불행’적 역사가로’였다. 내가 정의한 ‘거불행’적 역사학자란 확실하지는 않더라도 거대 담론과 거시적 안목을 가지고 탐구함으로써 ‘거대하지만 불확실한 행복’을 즐기는 학자를 말한다. 두 번째 칼럼은 ‘‘약소국의 역사학’에서 ‘강소국의 역사학’으로’였다. ‘강소국’의 역사학은 ‘너머(beyond)의 역사학’이고 동시에 새롭고 거대한 담론을 제시할 수 있는 역사학이다. 그래서 이번 칼럼에서는 구체적으로 나의 연구 테제를 제시하련다.

  ‘대항해 시대’를 모르는 학생은 없을 것이다(온라인 게임의 이름으로 기억하려나?). 대항해 시대란 15세기 유럽인들이 아프리카 남쪽의 희망봉을 돌아서 인도양과 남중국해까지 진출한 것에서 시작하여, 당시까지 유럽인들에게 알려지지 않았던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이후 태평양을 경유해 동아시아까지 도달하면서 절정에 달했다. 이렇게 이전까지 간헐적인 교류에 머물던 지역들이 바다를 통해 접촉하고 교류하는 가운데 전 지구적인 해상 네트워크가 구축되는 시기, 대략 15세기에서 17세기까지 근대 해양 세계의 팽창 시기를 일컫는 시대 명칭이다.

  그런데 이 시기를 과연 ‘대항해 시대’라고 부르는 것이 적절한가? 21세기 아시아의 시대에 이런 용어를 여전히 사용하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역사적으로 조금만 세심하게 살펴보면, 15세기 유럽의 ‘대항해’ 이전부터 ‘대’자를 붙여도 무방한 장거리 항해의 역사는 오래되었을 뿐 아니라 그 주도권 역시 유럽인이 아니라 중국, 인도, 동남아 등지의 해상(海商)이나 무슬림들이 쥐고 있었다. 사실 대항해 시대 담론은 19세기 제국주의 패권으로 세계 각지를 지배했던 유럽인들이 퍼뜨린 유럽중심주의적 세계관의 일환이었다. 유럽중심주의에 대한 문제의식을 공유한다면 누구라도 대항해시대라는 용어를 편안하게 사용하기 힘들 것이다.

  문제는 대안의 부재다. 즉 대항해 시대나 ‘지리상의 대발견(the Great Discovery)’과 같이 유럽인들의 입장에서나 수용 가능한 용어들이 범람한 것에 대한 비판은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이보다 더 효과적이고 적절하게 15∼17세기를 파악하는 참신한 학술 용어가 등장하지 못한 상황이다. 비판은 쉽지만 대안 마련은 늘 힘들다.

  그 대안으로 나는 2021년 ‘대운하 시대’ 담론을 제안했다(<대운하 시대 1415-1784, 중국은 왜 해양 진출을 ‘주저’했는가?>). 대운하 시대는 대항해 시대를 염두에 둔 용어이지만, 15∼17세기 세계사를 포괄하는 개념은 아니다. 해양 세계가 유럽인들의 전유물이 아니었음을 강조하면서, 당시 유럽인들이 그토록 진출하려 했던 동양, 특히 중국으로부터의 시점을 동아시아적 맥락에서 재조명하기 위해 만든 개념이다.

  시기로는 15세기 전반부터 18세기 중반에 해당하는데, 조운(漕運)이라는 국가적(national) 물류에서는 대운하를 활용하되 철저히 해금(海禁)의 기조를 유지하면서도, 국제적(international) 물류에서는 통제된 거점과 암묵적인 밀무역을 허용했던 시대였다. 대운하 시대를 관통하는 해양에 대한 중국의 태도는 ‘통제 가능한 개방(Controllable Openness)’이었다. 유럽인들에게 중국의 태도는 쉽게 이해되지 않는 ‘주저함’이나 모순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15∼17세기 바다에 대한 유럽의 관점을 대항해 시대로 묘사한다면, 같은 시기 바다에 대한 동아시아의 관점은 대운하 시대 담론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이제 남은 과제는 대항해 시대와 대운하 시대가 모두 종료되면서 변화된 유럽과 동아시아가 직접 대면하는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전반까지의 약 50년(1780년대∼1830년대) 동안의 역사를 지구사적 관점에서 통합적으로 해석하는 작업이다. 앞으로 10년 동안 ‘거불행’적 역사학자가 할 과업이다. 다행히 한국은 확실히 ‘강소국’이 되었다. 역사학만 분발하면 된다.

 

조영헌 사범대 역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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