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가르치는 일을 하다 보니 과정과 결과의 가치에 대한 생각을 종종 하게 된다. ‘열심히’보다 ‘잘’이 중요하다는 우스갯소리를 종종 듣기도 하지만, 많은 선생님은 과정의 가치를 낮게 보지 않는다. 학생의 발표나 과제에서 진지함과 성실함이 엿보일 때면 무척 고맙고 대견하다. 특히 성실함은 좋은 결과에 대한 기대와 연결되어 학생을 향한 기쁨이나 안타까움의 근거가 되기도 한다.

  좀처럼 결석하거나 결근하지 않는 사람 혹은 할 일을 빼먹지 않는 사람을 흔히 성실하다고 평한다. 그래서 ‘성실’은 겉으로 보이는 것과 관련된 말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사전적으로 ‘성실(誠實)하다’는 “정성스럽고 참되다”로 풀어진다. 한자의 구성을 생각해 보면 당연한데도 일상적 용례를 생각하면 다소 뜻밖이다. ‘정성스럽다’와 ‘참되다’의 뜻을 붙여 풀어보면, ‘성실하다’는 어떤 일이나 누군가에게 최선을 다하려는 참된 마음을 뜻한다. 겉으로 보이는 것은 이러한 마음의 결과인 셈이다.

  얼마 전 우연히 ‘개근 거지’라는 말을 들었다. 주로 초등학생들 사이에서 종종 쓰인다고 한다. 이는 가정형편이 어려워 체험학습이나 해외여행을 가지 못하는 아이들을 낮잡는 말이다. 이 말에 상처받은 아이가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또 개근이 조롱거리가 되는 오늘날의 세태에 씁쓸했다.

  그러면서 나의 학창 시절을 자연스럽게 떠올려 보았다. 그때는 개근이 당연시되었던 것 같다(안암동 시절은 학창 생활에서 제외인 것 맞겠지?). 그래서 나도 조금 아픈 것쯤은 참고 등교한 적도 많았다. 낮잡는 말은 없었지만, 개근하지 못한 학생들은 은근한 의심의 눈초리를 받기도 했다. 구도만 뒤집혔을 뿐, 예전에도 다수 집단이 거기에 끼지 못한 소수를 ‘비정상’으로 보았음은 마찬가지인 것 같다. 이렇게 생각하니 ‘개근 거지’라는 말은 성실함의 대상이 학교였던 시절에서 그렇지 않은 시절로의 변화를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누군가의 마음을 날카롭게 찌르고 자존심을 송두리째 무너트리는 말 자체를 옹호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이 성실함에 조롱을 퍼붓고 과정의 가치를 휴지조각으로 만드는 세상이라 믿고 싶지는 않다. 다만 예전에 비해 성실함의 대상이 달라지고 과정의 다양성이 인정받는 세상이라 이해하기로 했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 묻는다. 나는 무엇에 혹은 누구에게 성실해야 하는가?

 

<호랑이 이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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