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인>, <강철비> 연속 쾌거

“콘텐츠에는 우열 없어”

웹툰부터 소설까지 다재다능

 

양우석 감독은 “서로 다른 분야의 지식끼리 연결될 때의 즐거움에서 영감이 온다”고 말했다.
          양우석 감독은 “서로 다른 분야의 지식끼리 연결될 때의 즐거움에서 영감이 온다”고 말했다.

 

  2013년 45세에 영화감독으로 데뷔해 첫 영화에서 천만 관객을 달성한 사람이 있다. 양우석(철학과 90학번) 감독은 첫 영화 <변호인>으로 청룡영화상 신인감독상을 받고 <강철비> 시리즈로 반향을 일으켰다.

  양우석 감독은 영화감독이 되기 전부터 프로듀서와 웹툰 작가 일을 하며 복합 창작가의 길을 걸었다. 현재는 본인이 쓴 시나리오와 소설을 영상화한 <대가족>과 <면면면>을 스크린에 올릴 준비를 하고 있다. 애니메이션과 CG 기술에 가졌던 관심을 바탕으로 2025년까지는 무협 애니메이션 <열혈강호>를 제작할 예정이다.

  사회와 산업의 변화를 읽어내는 예리한 시선 끝엔 사람에 대한 따뜻한 기대가 있다. 지난 10년 동안 인간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사회에 필요한 이야기를 전하는 데 집중했던 양우석 감독은 이제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전하려 한다.

 

  영화로 키운 낯선 세계에 대한 동경

  어린 시절을 충남 천안에서 보낸 양 감독은 ‘특별할 것 없는’ 학생이었다. “시골에선 아무도 공부를 안 했어요. 당연히 저도 공부를 안 했죠.” 평범하게 노는 걸 좋아했던 그는 초등학교 6학년 때 교육 방송 채널에서 우연히 <흑인 오르페>를 보고 영화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땐 영화 속 언어가 포르투갈어인지도 몰랐어요. 낯선 물라토 사람들과 화려한 리우 카니발 장면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어요. 외화를 접하면서 세상과 영화에 대한 호기심을 가졌죠.”

  양 감독은 몇 년간 힘들게 했던 유도를 관두고 고등학생 때 서울로 이사했다. 새 진로를 찾기 위해서였다. 한동안 공부에 집중하지 못하던 그는 고등학교 3학년 때 마음을 다잡고 공부한 끝에 철학과 90학번으로 고려대에 입학했다. 양 감독은 입학 전부터 문학과 역사, 철학을 모두 공부하고자 생각해 고려대에서 철학과 영어영문학을 전공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운이 좋았어요. 당시 철학과에 김충렬 교수님, 윤사순 교수님 등 좋은 분이 많이 계셨거든요. 영문과엔 김우창 교수님이 계셨고요. 그때 하고 싶었던 인문학 공부를 마음껏 했습니다.”

  대학 시절 양 감독은 다양한 영화를 섭렵하기 시작했다. 중고등학생 때부터 간직한 갈증을 채우기 위해 하루에 영화를 몇 편씩 챙겨봤다. “당시 학교 앞에 ‘석비디오’라는 비디오 가게가 있었어요. 매일 두세 편 몰아봤습니다. 학부 시절엔 영화 보고 돈 버느라 정신이 없었어요.” 양우석 감독은 여러 영화를 접하며 작품을 대할 때의 독특한 기준을 만들었다. “저만의 취향을 없애려고 많이 노력했습니다. 취향이 생긴다는 건 우열을 정하는 거잖아요. 콘텐츠에 우열은 없다고 생각해요.” 이 태도는 훗날 양 감독이 소비자의 관점에서 작품을 기획하고 창작하는 데 도움을 줬다.

 

  창작 토대는 철저한 자료조사

  TBC와 MBC에서 PD로 일하던 양 감독은 영화 <쉬리>를 연출한 강재규 감독과 함께 일할 기회가 생겨 영화계에 뛰어들었다. 국내 영화 산업이 부흥하기 시작하던 199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그 현장에서 함께했다. 그러나 처음부터 연출의 길을 걷진 않았다. “신씨네와 명필름 등 여러 제작사에서 일했어요. 주로 투자 심사나 펀드 만드는 일을 했고, HD 시스템 전환도 맡았습니다. 당시엔 시나리오 작가가 부족하다 보니 작가 일을 겸하기도 했죠.”

  2000년대 중반, 국내 만화시장이 침체하고 웹툰 시장이 자라기 시작하자 양우석 감독은 주중엔 PD 일을 하면서 주말엔 웹툰 글 작가 일을 병행했다. “혼자 자료조사하고 조금씩 글을 쓰던 것이 웹툰 일로 이어졌어요.” 지적 호기심에 기반한 철저한 자료조사는 양우석 감독의 작품에 그대로 반영돼있다. 그는 궁금한 주제가 생기면 전문가에게 자문해도 빈틈이 없을 때까지 넓고 깊게 공부한다. 창작은 그다음이다. “창작에 개인적 경험이 들어가기 시작하면 창작가로서 수명이 끝난다고 봐야 합니다.” 훗날 <강철비>로 영화화된 웹툰 <스틸레인>도 한반도의 지정학적 상황에 대한 방대한 자료조사가 앞섰다. “서로 다른 분야의 지식끼리 연결될 때의 즐거움이 있어요. 영감은 거기서 온다고 생각합니다.”

  2008년 웹툰 <당신이 나를 사랑해야 한다면>은 뇌과학 분야를 조사해 써둔 이야기를 기반으로 만든 작품이었다. “<당신이 나를 사랑해야 한다면>으로 그해 만화 관련 상을 많이 받았는데, 지금은 솔직히 보기 좀 부끄러워요. 영화 시나리오랑은 다르게 여러 번 첨삭을 거치지 않았거든요. 게다가 철저히 바람둥이 남자의 시선에서 쓴 작품이에요.” 이외에 양 감독은 태권브이 후속작 <브이>, SF 작품 <칩> 등 여러 웹툰의 스토리를 창작했다.

 

  사회에 필요한 화두를 던지다

  “연출을 시작하고 앞으로 10년은 세상에 필요한 이야기를 하자고 생각했어요.” 양우석 감독의 ‘해야 할 이야기’는 변화해온 대한민국 사회였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선 후보가 돼서 중단했던 영화 <변호인>을 몇 년 후 다시 쓴 이유는 IMF를 겪은 한국 사회가 청년 세대를 중심으로 지나치게 침체했다고 여겨서였다. “그분이 돌아가시고 5년쯤 지났을 때, 우리나라가 아무도 항의하지 않는 사회가 됐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어떤 이야기를 하면 좋을까 생각하다가 그분을 떠올렸습니다.” <변호인>을 쓰고 난 후 연출 적임자가 없자 직접 연출을 맡았다.

  <강철비>를 세상에 내놓은 시점도 한반도에 북핵을 둘러싼 위기가 고조된 때였다. “2017년에서 2018년 사이에 충분히 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북한이 핵무장 직전까지 가면 미국은 외교 매뉴얼에 따라 반격할 수밖에 없습니다. 당시 미국과 북한은 로켓맨이니 늙다리니 주고받으며 말로는 이미 핵전쟁이 몇 차례 날 뻔한 상황이었죠.”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위기 속 우리나라의 무력함을 더 냉정하게 드러내고자 그 후엔 <강철비2: 정상회담>을 연출제작했다.

  오는 설 연휴에 개봉 예정인 차기작 <대가족>은 가족의 의미가 점차 변화하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가족의 의미를 어떻게 이해할지에 대한 고민을 담고 있다. <대가족>은 의대생 아들이 출가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가정’은 직업 훈련소에 가깝다고 생각해요. 흑사병이 창궐한 것도 아닌데 약 한 세대 반 만에 신생아 수가 5분의 1 정도로 급감한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습니다. 뭔가를 놓치고 있다는 문제의식이 생겼습니다.”

  또 다른 차기작 <면면면>은 절대적 빈곤이 존재했던 60년대에 가난과 응전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국내에서 처음 라면을 개발한 삼양식품 전중윤 회장을 모티브로 하지만, 이 작품의 실제 주인공은 영희와 황필이다. 양 감독은 <면면면>을 통해 젊은 세대의 사랑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두 청춘 남녀가 서로 사랑하는데 무엇이 그들의 사랑을 막는지 생각했습니다. 사실 ‘썸’이라는 단어가 사회적으로 쓰이기 시작했을 때 저는 조금 슬펐어요. 남녀 누구도 쉽게 사랑을 시작하지 못하는 사회가 왔나 싶었어요.”

  양 감독은 궁극적으로 우리 사회가 행복의 의미를 고민해봐야 할 때가 왔다고 말한다. “우리는 한 번도 행복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본 적이 없어요. 행복이 인생의 목표여야 한다는 강박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행복은 그저 살아가며 느끼는 거죠. 하지만 적어도 행복이 무엇인지, 어떻게 찾을 수 있는지는 생각해봐야 합니다.”

 

             소설 은 절대적 빈곤이 존재했던 60년대에 가난과 응전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소설 은 절대적 빈곤이 존재했던 60년대에 가난과 응전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산업 위기 딛고 ‘하고 싶은 이야기’로

  첫 연출을 하고 10년이 지난 양우석 감독은 다음 목표로 나아가고자 한다. “다음 10년 동안은 산업을 위한 일을 하고 싶습니다. 우리 산업에 위기가 올 것 같거든요. 그후에도 제게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땐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양 감독은 2018년 스튜디오 게니우스를 설립해 <열혈강호> 애니메이션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판권을 사기 전부터 양 감독은 국내 영상 산업의 위기를 걱정해왔다. 그가 생각한 돌파구는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장기 시리즈의 슈퍼 IP를 활용하는 방법이었다.

  <열혈강호>는 1994년부터 장기 연재 중인 국내 대표 무협 만화다. “무협이라는 한국의 독특한 장르는 지난 몇십 년간 충분한 내공을 쌓아왔어요. 만화방 때부터 시작해서 지금 웹소설까지, 한국에 꽤 좋은 무협 원천 콘텐츠가 많이 있습니다.” 그는 무협 장르를 IP로 하는 콘텐츠 시장을 개척하고자 한다. “다른 후배들이 쫓아오시길 바라는 마음으로 무협 장르의 문을 좀 열어놓고 싶습니다.”

  양 감독은 마지막으로 행복에 대한 고뇌를 계속하라고 조언한다. “고려대생이면 그래도 성공 궤도를 걷고 있는 청춘들일 텐데, 그럴수록 더더욱 행복에 대한 고민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행복하기 위해선 개인의 치열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글|나윤서 기자 nays@

사진제공|양우석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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