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자청을 사 왔다. 패딩을 꺼내 입을 때가 되면 버릇처럼 유자청을 사 온다. 고등학교 때부터 매년 그랬다. 덕분에 우리 집 겨울철 냉장고에는 늘 유자청이 있었다. 매년 샀고, 매년 다 먹지 못했다. 냉장고 구석에 뚜껑만 따 놓은 유자청을 볼 때마다 엄마는 볼멘소리를 했다.

  유자차를 좋아하지만 자주 마시진 않는다. 뜨거운 음료를 잘 못 마신다. 뜨거운 커피를 시킬 땐 얼음을 1~2개 띄우거나 뚜껑을 열고 20분 정도 김을 식혀 마시는 버릇이 있다. 마셨을 때 ‘아 조금 있으면 미지근해지겠다’ 싶은 정도의 온도가 좋다. 내가 좋아하는 온도는 길어야 10분 정도다. 그 안에 다 마시지 못하면 한때 뜨거웠던, 식은 커피가 된다. 식은 커피는 맛이 없다. 뜨거운 커피를 시키면 자꾸 남기는 이유다.

  유자차도 마찬가지다. 뜨거워서 잘 못 먹는다. 그래도 유자차는 김이 날 때 마시려고 노력한다. 바닥에 잠겨 있는 따뜻한 유자 껍질을 숟가락으로 퍼먹으면 기분이 좋다. 유자 껍질을 씹으면 코 뒤로 기분 좋은 향이 퍼지는데 그게 참 좋다. 향이 좋은 음식들을 제대로 즐기려면 트림을 해야 한다. 연태고량주를 먹고 트림을 하면 상쾌한 향과 함께 살짝 취기가 올라온다. 기분이 금세 좋아진다.

  옷장에서 긴 옷을 꺼내듯 유자차를 꺼내 드는 습관은 아무래도 ‘브로콜리 너마저’의 영향이 크다. 유자청을 사며 겨울을 맞기 시작한 것도 브로콜리 너마저를 처음 알게 된 고등학생 시절부터다. 내가 고등학생인 시절에는 토요일 4교시마다 ‘CA’ 활동이란 걸 했다. 지금으로 치면 동아리 활동 같은 느낌이다. 학기 초 여러 동아리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통기타부를 골랐다. 제일 빨리 끝내준다고 소문이 자자했거든.

  기타를 다루는데 서툴렀지만 치고 싶은 곡은 많았다. 이왕이면 인디밴드의 노래만 치고 싶었다. 홍대병이 심할 때였다. 당시 ‘나만 알고 싶은 밴드’ 브로콜리 너마저는 자신들의 악보를 인터넷에 무료로 공개하는 꽤 파격적인 행보를 보였다. 이게 참 고맙고 기뻤다. 보통 기타 코드까지 적힌 악보를 구하려면 전문 악보샵에서 유료로 구매하거나, 가입 절차가 무지 귀찮은 다음 카페에서 꼬박꼬박 가입인사 써 가며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브로콜리 너마저 노래 중에서도 1집에 수록된 ‘유자차’를 유독 좋아했다. 기타로 연주하기 쉬웠고 가사가 인상 깊었다. 누군가를 제대로 사랑해 본 적도 없으면서 노래 가사가 온전히 내 단어로 쓰인 것 같았다. 느껴본 적 없는 느낌을 느껴본 적 있는 것처럼 느끼게 하는 가사란!

  대학교 입학이 얼마 남지 않았던 어느 토요일. 오랫동안 좋아하던 후배에게 고백을 했다. 한참의 침묵을 깨고 후배는 대답했다. 아니, 하지 않았던가. 나는 커다란 기타 가방을 메고 오도카니 서 있었다. 가방 안에는 오선지에 4B 연필로 적은 ‘유자차’ 악보가 있었다. 추운 겨울이었다. 그날 텅 빈 교정에는 서툰 기타 연주가 울려 퍼졌다.

 

<마이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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