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부터 문제 공론화 노력

전담인력 처우 개선 필요

“자립의 첫 단추는 기대기”

 

허민숙 입법조사관은 “질책보다 이해가 우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허민숙 입법조사관은 “질책보다 이해가 우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2018년 조사처 발표를 통해 일찍이 △보호종료 청소년들의 보호기간 상향 조정 △자립정착금 및 대학입학금 지급 표준화 △지방정부의 자립지원전담기관 설치 및 전담요원 배치 의무화 등을 제안한 바 있다. 이 중 자립지원전담기관 설치와 전담요원 배치 의무화 등을 포함해 자립 지원체계 구축에 대한 제안 상당수가 이후 정책에 수용됐다. 허민숙 입법조사관은 “새로운 제도가 도입된 지 얼마 안 된 만큼 아직 청년에 대한 지원이 활성화됐다고 판단하기엔 이르다”고 말한다.

 

  - 자립준비청년 관련 정책들을 제안하게 된 계기는

  “2018년에 ‘보호종료 청소년 자립지원 방안’이라는 보고서를 냈습니다. 당시 몇몇 기자분들께서 보호가 종료된 후 시설에서 퇴소하고 어려움을 겪는 청년들에 대해 쓰신 기사들을 봤어요. 그러나 사회적으로 크게 공론화가 되진 않았던 것으로 기억해요. 입법 제안을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보고서를 발표한 후 한 의원실로부터 연락을 받았어요. 점차 국회에서 관심을 갖고 토론회도 열면서 해당 의제가 기사화됐습니다. 그때 17개 시도에 자립지원전담기관이 적어도 한 군데씩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입법화됐어요. 2019년부터 제도가 하나둘 만들어지기 시작한 점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습니다.”

 

  - 다양한 제도적 개선에도 자립준비청년들이 어려움을 겪는 이유는

  “2019년부터 계속 국가 지원이 확대됐고 민간 기업의 후원도 늘어났어요. 무엇을 하고자 한다면 얼마든지 도와줄 수 있지만 많은 청년이 의욕이 없고 뭘 해야 할지 몰라요. 어렸을 때부터 정신건강이 취약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 놓인 청년이 많은데, 별다른 개입 없이 시간만 지났을 경우 정신적 괴로움이 또래 집단보다 훨씬 심각한 상황이 많을 수 있는 거죠.

  제도를 만드는 것과 사용하는 건 별개의 문제예요. 인간에게 가장 힘든 감정 중 하나가 희망 없는 미래가 예견될 때 느끼는 막막함이잖아요. ‘네가 더 용기를 냈어야 해’라고 한다거나, ‘네가 너무 나태했어’라고 질책하기보다 누구나 힘든 상황에 부닥치면 그럴 수밖에 없다는 이해가 우선돼야 합니다.

  그래서 청년마음건강지원사업의 경우도 정말 안타까워요. 청년들이 주민센터를 방문해 공무원에게 스스로를 자립준비청년이라고 밝히고 신청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인데, 그런 청년들을 돌려보낸 거잖아요. 상담이 10회기에 그치는 것도 아쉽습니다.”

 

  - 참고할 만한 해외 제도는

  “영국에 개인상담사 제도(Personal Advisor)가 있어요. 보호조치에 있던 청소년이 15살이 되면 해당 청소년을 담당했던 사회복지사와 새로운 개인 상담사, 청소년 당사자 3명이 함께 만납니다. 그때부터 천천히 자립 준비를 시키는 거예요. 개인 상담사는 청소년과 2달에 한 번 대면으로 만나 상황을 살피고 보고서를 작성해 상부에 보고하게 돼 있어요. 현재 국내선 인력이 부족하다 보니 자립지원전담기관에서 청년들과 직접 접촉하기가 어려워 전화만 하는데, 안 받는 경우가 많아요. 연락이 안 되는 이유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안타깝게도 자립정착금과 자립지원수당을 가족이나 친척이 착복해 연락을 차단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특히 위탁가정의 경우 연락두절률이 약 30%에 달해요.

  인력이 부족해 전담인력 1명이 평균 70여명을 맡고 있는 국내와 달리 영국에선 상담사 1명이 전담할 수 있는 아동 수를 20명 정도로 제한하고 있어요. 또 공인된 자격과 더불어 대상자에 대한 이해가 깊은 사람들이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국내에도 자립준비청년의 전 생애 과정을 잘 이해하고 포용할 수 있는 전문 인력이 더 많아져야 합니다.

  그러려면 처우도 개선해야겠죠. 자립지원전담기관에선 아직 일괄적인 호봉제가 적용되지 않고 있어요. 전담인력에 요구하는 근무 자격과 조건에 비해 처우가 부족하면 인력 충원이 쉽지 않을 겁니다.”

 

  - 사후관리 후 자립준비청년들은 어떻게 나아가야 하나

  “복합적인 문제를 가진 자립준비청년들이 있어요. 장애가 있다든가, 차상위계층이나 기초생활수급자라든가, 장학사업의 대상자라든가, 정신건강복지센터에 연계돼야 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이런 경우엔 자립지원전담기관의 사후관리 도중 또는 이후에도 지속적인 지역사회의 도움이 필요해요. 지역 내 자원을 통합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주민센터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주민센터 내 설치된 통합사례관리 기관인 희망복지지원단은 주민센터로 들어오는 기부금을 효과적으로 이용할 수도 있고, 지역 내 복지관이나 병원과 연계해 도움을 줄 수도 있거든요. 또 자립지원전담기관과 다르게 훨씬 가까운 거리 내 위치한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다만 주민센터에서 하는 일이 워낙 많기에 자립준비청년이라는 특정 대상에 대한 이해가 부족할 수 있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주민센터에 전화해 특정 복지 제도에 대해 여쭤봤을 때 잘못 대답하는 분도 계셨고 잘 모른다고 말씀하시는 분도 계셨어요. 결국엔 자립지원전담기관의 인력을 충원해 사후관리라도 더 강화해야 한다는 이야기로 귀결됩니다.

  특별한 어려움이 없더라도 일찍이 혼자 살면 위기에 취약하기에 주변의 관심이 계속 필요합니다. 부모나 가족과 함께 생활하면 건강이나 평소 일상에서 문제가 생기는 경우 빨리 눈치채고 조처하기 쉬운데, 혼자 생활하면 스스로 자신을 책임져야 하니 문제가 생겨도 늦게 발견될 수 있어요. 전북에서 한 기업이 청년들의 건강검진·의료비를 지원해 그 지역 자립준비청년들의 건강검진을 일괄적으로 진행했다가 어떤 청년이 암을 진단받은 경우가 있었습니다. 다행히 조기에 발견해 완치했죠.

  자립의 첫 단추는 다른 이에게 기댈 줄 아는 것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다른 사람들과 연결된 기분을 느끼고 필요한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어야 해요.” 

 

글|나윤서 기자 nays@

사진|한희안 기자 onefreak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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