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천루 성패는 수익성이 결정”

불확실한 당위, 공익으로 포장해

마천루의 공공성 강화 절실

 

서울롯데월드타워
서울롯데월드타워

 

  “롯데타워 공사 재개 안 하면 롯데백화점 광복점 폐점한다.” 2022년 부산시가 롯데 그룹 측에 전달한 최후통첩의 일부다. 1998년 롯데쇼핑은 부산광역시청 부지를 인수하며 백화점을 비롯한 복합 문화 공간을 짓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시민의 몫인 시청 부지를 넘기는 조건은 부산의 랜드마크가 될 공익적 목적의 롯데타워 건설이었다. 그러나 롯데는 2009년 백화점 완공, 2010년 아쿠아몰 완공에도 롯데타워는 2014년 지상 1층을 끝으로 공사를 중단했다. 백화점 폐점 압박에 지난해 부산롯데타워는 공사를 재개했지만, 지상 107층 510m의 계획은 지상 67층 342m 규모로 대폭 축소됐다. 마천루 건설을 놓고 사익과 공익이 충돌하며 갈등이 격화된 것은 덤이다. 서울과 인천 등 여러 도시에서 유사한 갈등이 반복되고 있는 가운데 공익을 과장해 마천루 개발의 이유로 삼은 이들과 이를 추동한 지역 사회의 반성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마천루 성공, 자본 논리 받침돼야

  초고층 건축물을 뜻하는 ‘마천루’의 설계·시공상 핵심은 건축물의 높이가 높아질 때 발생하는 건물 구조의 취약성을 해결하는 것이다. 건축물의 안정성은 건축물의 가로 길이와 높이 비율인 형상비에 영향을 받는다. 마천루는 가로 길이가 기존 건축물과 동일하지만 높이가 길어 형상비가 1대 30을 초과하는 기형적 형태로 지어진다. 고층부일수록 건축물이 받는 바람의 세기도 강해져 바람에 부딪힐 때 발생하는 풍하중도 고려해야 한다. 이 탓에 초고층 건축물은 일반 건축물에 비해 단위 면적당 시공비용이 높다. 2017년 완공된 서울롯데월드타워는 3.3㎡(1평)당 약 3819만원의 공사비가 소요됐다. 주택 재건축 사업 중 역대 최고 공사비가 서울 동대문구 용두 1-6구역의 3.3㎡당 922만원인 것과 비교된다.

  마천루 개발은 충분한 사업성이 보장돼야 한다. 권순욱(성균관대 건설환경공학부) 교수는 “마천루 개발의 성패는 개발의 수익성이 결정한다”며 “서울롯데월드타워의 성공은 소비할 여력이 있는 사람이 인근에 많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서울롯데타운으로 불리는 잠실 부지는 롯데호텔 월드, 롯데백화점 잠실점, 롯데월드 어드벤처가 위치해 시너지가 크다. 잠실역은 2021년 기준 하루 평균 이용객이 13만7715명으로 전국 도시철도  역사 중 이용객 순위 2위를 기록하는 등 소비 수요가 충분하다. 롯데물산에 따르면 서울롯데월드타워는 지난해 기준 연간 15만명 이상이 방문해 상업화에 성공했다.

  수익성으로 함축되는 자본 논리가 뒷받침된다면, 마천루 개발이 성공할 수밖에 없다는 주장도 있다. 이중원(성균관대 건축학과) 교수는 “마천루를 짓겠다는 결정을 했다는 것은 해당 부지가 토지 이용의 극대화를 요하는 자리라는 자본 논리에 의거한 판단이 있었던 것”이라며 “후대가 됐다고 해서 자본의 판단이 달라지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국내 마천루 개발의 대표적 실패사(史)

 

  지역 주민 돈 걷어 마천루 짓기도

  서울롯데월드타워와 같은 성공 사례도 있지만 국내의 마천루 개발엔 실패도 많다. 원정연(공과대 건축학과) 교수는 “실패 사례 중 상당수는 마천루 개발의 당위성을 자본 논리가 아닌 공익으로 포장된 개인·집단의 이해관계에서 도출했다”고 말했다. 공기업이 지역주민의 돈을 걷어 마천루를 짓겠다고 한 인천 청라시티타워가 대표적이다. 2003년 재정경제부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를 사업시행자로 인천 도심에서 약 17km 이상 떨어진 김포매립지에 택지지구를 조성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LH는 청라지구를 단순 배드타운이 아닌 자족 가능한 국제업무지구로 만들겠다는 청사진을 내놨다. 계획의 핵심은 청라호수공원 중앙 정육각형 부지에 높이 448m 규모 마천루를 세우는 것이었다. 공익적 목적의 랜드마크 건설을 목표로 LH가 청라시티타워를 건설한 후 이를 인천경제자유구역청에 기부채납하기로 했다. 김교흥 인천 서구갑 국회의원은 “2006년 LH는 청라 주민의 분양대금 3000억원으로 청라시티타워 건립 비용을 확보했다”고 전했다. 청라지구 입주민들은 랜드마크 건설 약속을 믿고 높은 아파트 분양대금을 지불했다. 그러나 착공이 예정됐던 2009년 이후 15년째 마천루는 첫 삽도 뜨지 못하고 있다. 공익을 명분으로 추진된 마천루 계획은 설계 부실, 시공사의 계약 포기에 이어 지난해 8월 ㈜청라시티타워가 LH를 상대로 사업 협약 계약자 지위 확인 소송을 제기하며 표류하고 있다.

  LH는 주민과의 약속을 늦게라도 지키겠다는 입장이지만 거듭된 약속 번복에 지역 사회 내 갈등은 임계점에 도달했다. LH 청라영종사업본부 측은 “공사비 급등으로 청라시티타워 건설에 7000억원 이상 소요될 것으로 추정되나 LH는 4000억원의 손실을 감당해서라도 주민과의 약속을 지키겠다”고 전했다. 청라 지역주민들은 2022년 11월 24일부터 40일간 용산 대통령실 앞 1인 시위를 비롯해 청라시티타워 사업 정상화를 요구하는 집단행동을 펼쳤다. 청라국제도시 주민인 임명화(여·49) 씨는 “공기업이 사업을 시행한다고 해 약속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며 “시티타워가 들어설 것을 기대하고 입점한 지역 상인들은 큰 손해를 봤다”고 말했다. 송치욱(남·45) 씨는 “부지가 장기간 방치되며 인근에 들어오기로 했던 기업들도 입주를 철회했다”고 토로했다. 김교흥 의원은 “공공기관의 희망고문으로 주민들은 기대와 좌절을 반복했다”고 지적했다.

  마천루가 완공되더라도 과장된 공익에 의존한 마천루가 당초 목표한 역할을 다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원정연 교수는 “청라시타타워 자문에 참여하며 외형은 일반적 건축물의 형태지만 용도는 전망대로 제한돼 완공 후 운영 유지 비용조차 건지기 어렵다는 판단이 들었다”고 지적했다. 부산롯데타워 역시 사정은 비슷하다. 부산시가 롯데백화점 광복점 폐점을 압박하며 착공을 이끌어냈지만 당초 기대됐던 공중 수목원과 같은 공익적 시설은 빠진 채 전망대와 판매 시설만 들어섰다. 반선호 부산광역시의원은 “계획한 바와 같이 부산의 랜드마크가 될 수 있도록 부산시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청라시티타워 부지.
개발이 완료된 청라호수공원 인근 택지와 달리 청라시티타워 사업은 15년째 표류 중이다.

 

  파급효과 큰 마천루, 공공 논리 따져야

  그럼에도 마천루 개발에 자본 논리만을 적용해선 안 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건원(공과대 건축학과) 교수는 “마천루 개발의 외부효과는 예측하기 어렵고, 수많은 사람이 떠안기에 공공기여의 방법과 규모, 마천루의 사용 등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부산 LCT 개발 사업이 정경유착을 비롯해 수많은 개발 비리를 양산하며 국민적 공분을 사기도 했다. 부산 LCT 개발은 자본주의적 관점에서 성공한 마천루로, 4조 5000억원대 분양 수익을 달성했다. 그러나 해운대 해안가와 맞닿은 부지는 당초 60m 이상 건축물 건설이 불가능한 중심지미관지구였다. 사업 시행사는 정치권 로비를 통해 부지를 일반미관지구로 변경하고, 금지됐던 주거시설 포함 승인을 얻어냈다. 반선호 부산광역시의원은 “시의회는 LCT 개발 사업 등에서 도시계획위원회 심의 과정이 고무줄식으로 부실하게 이뤄졌음을 확인했다”고 이야기 했다. 민현준(홍익대 건축학부) 교수는 “초고층 빌딩은 시장에서 만들어지는 상품이지만 공공성을 검증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중원 교수는 “개발 비리가 반복되며 마천루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늘고 있지만 마천루를 단순히 빈부격차 심화의 장과 같은 부정적 공간으로 인식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개발 과정에서 공공이 충분한 역할을 수행한다면 마천루의 공익성이 발휘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 교수는 “300m 높이의 수직 도시 대신 300m 길이의 수평 도시를 짓는다고 공익이 보장되진 않는다”며 “시민들이  저층 건물이 밀집한 한남동 거리의 카페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듯 마천루 중간중간에도 시민들의 공간을 마련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아직 마천루에서 시민 모두를 위한 공간은 건축물 저층부의 개방된 광장, 고층부의 전망대 등으로 제한돼 있지만 수평 도시를 개발할 때처럼 도시에 필요한 임대주택과 같은 공공시설을 마천루 중층부에 넣을 수 있다는 것이다.

 

글 | 이경준 기자 aigoya@

사진 | 하동근 기자 hdnggn@

인포그래픽|전장원 기자 newje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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