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관투자자, 주총 반대표 5.3%뿐

170여 기업에서 제1·2대 주주

“정치적 독립 우선돼야”

 

  증시 저평가의 해결사로 기관투자자가 떠오른다. 기관투자자란 증권사와 같이 자산 투자로 수익을 내는 법인과 공적 목적으로 다수 가입자의 돈을 걷어 투자하는 기금을 일컫는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14일 기관투자자가 기업에 정부의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참여 여부를 점검 및 참여 독려토록 명시했다. 증시 저평가 해결을 위해 기관투자자가 언급된 것은 막대한 자금을 가진 기관투자자가 대주주 견제에 적합하다는 판단에서다. 국민연금 측이 “정책 방향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며 “향후 자금 투입 계획을 내놓겠다”고 화답한 가운데 정치적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않은 연기금의 역할 확대가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대주주 견제하는 기관투자자

  국민연금을 비롯한 국내 기관투자자는 운용 자금이 커 대주주 일가에 버금가는 지분을 갖고 있다. 그럼에도 기관투자자들은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데 주저해 왔다. 한화자산운용의 ‘2023 국내 자산운용사 의결권 행사 현황-안건별 의결권 행사 현황 및 자산운용사별·피투자회사별 반대율’(2024) 보고서에 따르면 기관투자자는 약 6번 중 한 번 꼴로 의결권을 아예 행사하지 않았고, 반대표를 던진 경우는 5.3%였다. 이수준(세종대 경영전문대학원) 교수는 “자산운용사에 근무하며 10년 이상 연기금 대신 운용해 왔지만 주주로서 별다른 의결권을 행사한 경험은 없다”며 “국민연금이 보유한 주식은 연금 가입자인 국민의 돈으로 산 것이라 자기 돈으로 주식을 사들인 투자자처럼 큰 목소리를 내긴 어렵다”고 설명했다.

  공적 금융기관인 국민연금의 역할이 특히 주목된다. 김지훈(연세대 경영학부) 교수는 “국민연금은 경영활동을 하는 기관이 아니기에 주주의 이익이 아닌 공익을 위해 의결권을 쓸 수 있다”고 전했다. 윤선중(동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국민연금이 지분을 보유하지 않은 기업을 찾기 어려울 정도”라며 “기업의 실질적 변화를 유도할 역량이 충분하다”고 말했다. 지난해를 기준으로 국민연금이 제1·2대 주주로 등재된 상장 기업은 170여개에 달한다. 

  금융위원회 발표를 놓고도 기대감이 읽힌다. 조원호(광운대 경영학부) 교수는 “이번 개정으로 국민연금이 주주의 이익을 대변하는 역할이 한층 강화될 것”이라 전망했다.

 

  가입자 이익 중심으로 개편돼야

  지난 19일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는 저평가된 기업에 연금 자산을 투자해 기업 가치를 끌어올릴 ‘가치형 위탁 자산운용사’ 3곳을 새로이 선정했다. 김우찬(경영대 경영학과) 교수는 “지금까지와는 달리 주주로서 마땅히 할 일인 기업 가치 제고를 적극 주도하겠다는 것”이라며 “국민연금은 가입자인 국민의 재산을 지키기 위해 주주권을 적극 행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민연금의 역할 확대가 연기금의 정치적 사용으로 이어져선 안 된다는 조언도 있다. 윤선중 교수는 “연기금의 의사 결정 과정은 여전히 정치 권력의 영향을 받고 있다”고 짚었다. 나현승(경영대 경영학과) 교수는 “국민연금의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가 최근 연금 가입자를 대표하는 위원 수를 줄여 정치권의 영향력이 커질 수 있다”며 “연기금의 주주권 행사가 정치로부터 독립하려면 오직 연금 가입자의 이익을 중심으로 판단·행동해야 한다”고 말했다.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 산하 위원회로 국민연금이 보유한 상장주식에 대한 주주권 및 의결권 행사와 책임투자 관련 주요 사안을 검토·결정한다.

 

이경준 기자 aigo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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