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아직까지 회복되지 않으신 데도 불구하고 선생님께서는 토론회에 참석하시거나, 인터뷰를 하시는 등 대외적으로 활발히 활동하고 계십니다. 
- 외부활동을 한다고는 볼 수 없어. 세미나나 토론회는 전쟁을 부채질하는 수구세력에 맞서 뜻을 펼치고자 하는 젊은 사람들을 격려하기 위해 가고 있어.
텔레비전 출현은 언어기능을 회복한 이후 지난 반년 사이 여러 텔레비전 채널에서 요청을 해왔기 때문에 하게 된 거야. 사회변화에 밀착해 살아오면서, 논문도 쓰고 발언도 해 온 내가 조용해지니까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궁금해한다고. 돌아가는 시세를 얘기해 달라고 해서 몇 군데 나갔지.

△선생님께서는 많은 책을 집필하셨습니다. 선생님께 글쓰기는 어떤 의미를 갖고 계십니까?
- 모든 인간들의 지식행위에 의미가 있듯이, 나에게도 글쓰기의 목적이 있지. 우리사회의 거짓을 밝히는 목적. 특히 군부 독재시기 극우 반공주의가 이데올로기로 자리매김하게 되면서 진실된 것이 금기사항이 되고, 온 국민이 허상만을 믿게 됐어. 그 결과 국민들은 말할 것도 없이 지식인들조차 삐뚤어진 이데올로기에 의해서 병들어 버리고 마비돼 버렸어. 그것에 대해 해독작용을 해야겠다고 생각한 거지. 바로 보고, 진실이 뭐라는 것에 대해 알려주고 진실에 입각해서 생각하고 행동하고 판단하는 건전한 인간성을 회복시켜야겠다고 하는 것이 내가 글쓰는 기본 동기야.

△선생님께서는 9번 연행돼 5차례 구속과 3번의 수감생활로 총 1012일의 수형생활을 치르셨습니다. 외부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선생님께서 지키고자 하셨던 바는 무엇입니까?
- 나는 한국식의 극우 반공 독재, 야만적인 체제가 강요하는 인간형에서 우리국민들을 해방시켜야겠다고 생각한거지. 인간해방이 내 글쓰는 중요한 본질이야.

△ 선생님께서는 북한의 아시안 게임 참가와 관련, 인공기 게양이 국가 보안법과 정면충돌하는 것에 대해 ‘현 국가 보안법이 전혀 현실성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현실적이면서 동시에 이상적인 것을 추구하기 때문에 국가보안법이 과거 한 시대에는 그 나름으로 존재이유를 갖고 있었다고 생각해.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입장이 아니지. 그러나 지금은 국제공산주의가 사라져 버렸고 남한의 대중들에게 소용없는 것이 돼 버렸어. 국가보안법이 무언가를 금지해야할 환경이 존재하지 않아. 국가보안법은 남한이 북한보다 못살았던 시대에 우리 국민들의 대북한 의식을 차단하기 위한 도구, 수단이었단 말이야.
둘째로는 국가보안법은 인간의 알 권리, 진실을 추구하는 노력을 봉쇄해버려. 국가보안법은 자유로운 인간이 되기 위한 노력을 차단하는 야만성의 표시야. 부산 아시안 게임에서 국기가 오르고 안 오르고 하는 것은 아주 초보적인 거야. 국가보안법이 거기에 개입할 이유가 하나도 없어. 국제경기를 개최하려는 국가에서는 거기에 참가하는 단체와 국가의 국기를 게양하는 건 당연한 거야. 그것을 반대한다는 것 자체가 야만의 문화이고 반문화야.

△선생님께서는 ‘북방한계선은 합법적 군사분계선이 아니다’, ‘대한민국은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가 아니다’라는 주장을 펼치고 계십니다.
- 한반도에서 UN총회가 승인한 유일한 합법정부라고 믿는 것은 우리 국민들이 오랫동안 잘못 생각해 온 또 하나의 허구야. UN총회결의에서 남한은 38도선 이하에서 성립된 합법적 정부라는 거야. 그런데 진실을 제대로 밝히지 못하는 지식인들, 교수들이 남한이 한반도 전체의 유일한 합법정부라고 한거지. 정부는 그것을 근거로 북한과 적대적인 관계를 유지했고  대학생들도 이것을 제대로 판단할 능력을 갖지 못했어.
마찬가지로 북방한계선이라고 하는 것은 북한정부에 대한 이승만 정부의 위험적 도발행위를 방지하고 휴전을 성립시키기 위해서 아이젠하워 미국 정부가 남한의 군함이 올라가지 못하는 선을 설정한 거야. 만약에 이북의 군함이 남쪽으로 내려오지 못하는 것이라면 남방한계선이어야 해야 하는 거지.
또한 북한과 한국은 법적으로는 1948년부터 완전한 동격이야. 그리고 전쟁을 일시 중지한 휴전상태라고 볼 수 있지. 거기에 1992년에 체결된 남북합의서에 의해서 하나의 민족으로서 잠정적 분할 되어있는 관계지 전혀 적대관계가 아니야.

△현재 미국에서는 대북강경책을 내놓고 있습니다. 현재 이러한 미국의 정책이 북한에 어떠한 영향을 줄 것이라고 생각하시며, 대북강경책의 문제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 미국은 사실상 제국주의 국가야. 지금은 적대적인 세력이었던 소련이 없어짐에 따라 미국만이 강대국으로 남았던 거지. 앞으로 미국의 권위에 도전하거나 명령에 따르지 않는 일체의 국가들과 미국 자본의 행동원리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국가들을 단 시일내에 처치(dispose)하기로 한 거야. 미국은 미국의 경제원리와 군사 정치를 거부하는 이란, 이라크, 리비아, 쿠바, 북한 5개 나라에 대해서 어떠한 방법으로도 굴복시키려하고 있어. 지구상에 미국을 중심으로 한 제국을 만들려는 거지. 독일의 법무상이 지난 7월에 이 부시 미국 정권의 이와 같은 폭력적인 세계지배 야욕에 대해서 히틀러와 비슷하다는 표현을 사용했어. 미국과 독일이 그것 때문에 실랑이를 벌이고 있지만, 부시에 대한 독일 법무상의 견해는 진실에 가깝지. 한마디로 미국의 명령을 고분고분 듣지 않는 국가를 처치하는 기본목적에서는 변함이 없어.

△올해로 임기를 마치는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에 대해 평가가 엇갈리고 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햇볕정책을 어떻게 평가하시며 차기 정부의 북한 관련 정책이 어떻게 변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햇볕정책’은 실질적으로 역사적인 대전환이었어. 지속적인 전쟁관계에 있었던 남북한 충돌의 위험을 평화적으로 해결했다는 것 자체가 위대한 발상이고 정책이었다고 평가해. 다만 김 대통령이 성급하게 자기 임기 중에 결과를 얻기 위해 무리수를 쓴 것이 있다고 봐야지.
다음 정권에도 기본적으로는 반전쟁, 평화지향, 남북 상호 협력 및 장기적인 평화 통일이라는 선에서는 후퇴할 수 없을 거야.

△신의주 개방, 시장경제 체제 일정수준 허가 등 북한이 점차 변화하고 있습니다. 북한의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며, 결과는 어떻게 예상하십니까?
-북한의 변화는 이미 1999년에 큰 방향이 결정된 것으로 보고 있어. 내가 북한에 갔을 때 이미 당 지도부에서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할 것이냐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고 하더라고. 아마 북한경제개혁의 기본 노선은 중국의 개방의 노선을 수용하지 않을까 하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어.

△선생님께서 출판하신 『반세기의 신화』의 부제가 ‘휴전선 남북에는 천사도 악마도 없다’입니다. 부제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남한의 사람들의 머리를 지배하고 있는 허상을 깨려했던 거야. 남한은 좋은 데 북한은 나쁘다는 고정관념, 극우반공주의를 내세우는 보수 수구 신문들에 의해서 굳어졌던 인식들을 계몽하려 했던 거지. 물질적 생산력과 국민의 생활수준 향상에 있어서는 물론 남한이 북한보다 우월해. 그러나 북한은 인간적 순수성, 정직성, 서로간의 믿음, 이런 심정적인 면에서는 남한보다 우월하거든. 남한과 북한은 서로 상대방이 갖고 있는 장점을 수용해야 해. 뿐만 아니라 현실적으로도 북한만 남북협정을 위반한다고 착각하고 있는데 실질적으로는 남한이 남북협정을 더 많이 위반하고 있어. 북한만 잠수정을 보내고 남한은 가만히 있는 줄 알았지만 우리나라도 많은 북파 간첩을 보냈어. 북파된 공작원 가운데 돌아오지 못한 간첩의 수는 7662명에 이르고 있지.

△현재 ‘미선이와 효순이 사건’과 더불어 미국과 관련한 한반도 내의 반미 움직임이 높습니다. 선생님께서 현재 우리나라 사람들이 사회 기저에 갖고 있는 미국관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며 미국은 한반도 내에서 어떠한 위치를 지닌다고 보십니까?
-나는 한국 국민들이 미국을 자유를 우호하고 박애주의적 지원을 하는 나라로 착각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 큰일났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야. 미국 정책의 본질을 알면 미국이 얼마나 위험한 나라이냐에 대해서 놀라게 돼.  왜 전세계에서 미국만이 테러를 당할까. 그건 결국 미국이 정치, 경제, 문화, 종교에서 전세계인들을 지배하려 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거야.

△미국의 한반도 주둔 필요성 여부와 그 이유에 대해 군사적, 정치적으로 설명해 주십시오.
- 모든 존재와 관계가 다 그렇듯이 미군 역시 역사성을 지니고 있어. 6·25전쟁 이후에는 역사적으로도 미군 주둔의 정당성이 있었어. 현재 많은 사람들이 미군이 없으면 안된다고 생각하는데 이는 세뇌 교육탓으로 미국의 존재의미를 착각하고 있고, 자신의 정체성을 잊고 있는데서 비롯한 문제지.

△북·일 수교이후, 한국의 위치는 어떠하다고 생각하십니까?
- 북한과 일본의 수교는 동북아와 한반도의 정세속에서 본다면 바람직한 일이야. 일본은 미국의 꼭두각시로서 북한에 50여년간 적대적 관계를 유지해 왔어. 그것이 이번 국교정상화로 해소할 수 있으면 그것은 남북한의 평화에도 도움이 되지. 우선 일본의 식민지 통치에 대한 배상과 그 후의 적대관계에 대한 보상으로써 북한이 1백억 달러에 가까운 경제부흥의 재원을 얻게 됨으로써 북한 내부의 긴장을 완화하게 될 것이고 남·북한의 관계를 훨씬 부드럽게 해나갈 거야. 그것은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의 환경을 미래지향적이고 평화적으로 변화시킬 거야.

△북한의 핵보유에 대해 여려가지 의견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 북한의 핵 보유는 상당히 복잡한 문제야. 그러나 어떻든 한반도에 핵무기가 없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야. 그래서 남북한사이에 비핵화 협정도 있는 것이거든.
북한이 핵을 가지려고 한다는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어. 핵협상 금지 조항에서 핵 보유국가는 비핵국가, 핵을 가지지 않은 국가에 대해서 핵공격을 해서는 안된다고 결정 했어. 그런데 미국은 협정을 위반하고 1957년에 남한에 약 750발의 핵무기를 들여놨어. 북한 공격용이지. 게다가 북한에 대해서만은 세계 어느 나라도 통하지 않는 핵 선재공격을 적용하고 있어. 미국은 북한에 대해서만 현지사령관, 즉 주한미군사령관이 필요하다고 생각할 때는 언제든지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거지. 그런데 한국사람들은 전혀 이러한 사실을 모른단 말야. 심지어 한국 사람들은 북한에 대해서, 핵무기를 발사해서 북한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어. 우리는 항상 공정하고 공평해야 돼. 소련군이 막강한 군사와 무기를 들여와 있고, 유일하게 남한에 대해서는 핵선재공격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 봐. 그렇다면 남한, 우리 대한민국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답은 뻔하지.

△한반도 통일에 중국과 일본, 그리고 여러 주변 강대국들은 어떤 역할을 할거라고 생각하십니까?
- 난 우선 통일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아. 한반도에서 전쟁이 다시 일어나지 않게 하는 것이 통일의 길이야. 통일은 장애요인을 극복하는 과정이야. 장애요인이 제거되면 제거될수록 통일에 더욱 가까워지는 것이지. 통일은 감 떨어지듯 주어지는 것이 아니야. 미국의 극우보수, 대북한 증오와 관련한 인식이 다 장애요인에 속해. 북한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로 내적인 변화까지 필요해. 통일만 주장하지 말라는 거야. 나는 의식의, 인식의 문제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 통일은 주장한다고 되는 것이라 하나하나씩 이루어 가는 것이야.

그는 “ 아직도 원고지에 펜으로 글을 쓴다”며 “남이 무엇을 하든 내 나름대로의 생활방식과 철학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라고 자평한다. 그러기에 70∼80년대 어두운 시대를 정면으로 부딪치면서 살아온 건 아닐까.
그런 그이기에 고희가 넘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아직 할 일이 많다고 한다. “우리 국민들은 아직도 많은 허상에 쌓여 있어. 그 허상을 지우는 것이 내가 할 일이지….”라며 끝나도 말을 끝맺지 못하는 모습은 다시 한번 70∼80년대를 풍미해온 냉철한 지식인의 모습 그대로였다. 얼마 남지 않은 여생 속에 이제 그에게 남겨진 마지막 과제는 그가 시대를 향해 날렸던 날카로운 비판의 칼날을 후대에게 전달해 주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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