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식 동인(사회학과 71학번)
△어떤 계기로 고대신문사에 입사했나.
-초등학교 시절부터 학창시절 내내 신문을 만들거나 책을 펴내는 등 계속 글 쓰는 일을 해왔고 그 연장선상에서 고대신문사에 입사했다. 고대에 입학했을 때부터 고대신문사에 들어가야겠다는 생각을 했기때문에 입사 공고를 보고 망설임 없이 지원했다.

△1971년 10?15 위수령 사태로 인한 휴업조치 등 1970년대 초반 독재정권에 저항한 고려대는 많은 압력을 받았다. 당시 학교 분위기는 어땠나.
-1971년 10월 15일 본교에서 벌어진 위수령 사태는 개교 이래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자발적인 이틀간의 휴교를 마치고 비상대의원총회를 하던 중 중무장을 한 수도경비사가 학교로 쳐들어와 학교를 난장판으로 만들었다. 캠퍼스 안의 학생들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2000여명을 수경사로 끌고 간 것이다. 독재에 저항했다는 이유로 전교생의 반 정도 되는 인원을 끌고 가 폭력을 행사한 예는 대학 역사상 유래없는 일이었다.
1971년 초반, 교련 반대시위 등 민주화 운동이 과열돼 본교는 휴교가 반복되는 등 그 시대는 민주화 발전에서 암울한 침체기였다. 1973, 4년에도 학생들은 침묵하지 않았고 매년 휴교와 휴업이 반복됐다. 그러나 학생들은 좌절하거나 절망하지 않고 정의의 목소리를 냈다.

△70년대의 특수한 정치, 사회적 상황과 관련해 신문사의 분위기는 어땠나.     -신문은 기사로 영향력을 미치는 매체이다. 당시 군사독재 하에서 대학신문에서 시찰과 검열이 일상화 됐었지만 나름대로의 지혜를 동원해 때로는 강하게 때로는 우회해서 민주화를 외치기 위해 노력했다. 지성인으로서의 사명감을 갖고 특집과 칼럼 등을 통해 기성 언론에서도 내지 못하는 저항의 목소리를 냈다.

△당시 고대신문은 <권두논문>으로 유명했다. <권두논문>은 주로 어떤 내용이었으며 그 위상은 어떠했나.
-<권두논문>은 아카데미즘과 저널리즘의 절묘한 융합체적 성격을 띤 칼럼이었다. 주로 당시 국내외 이슈와 관련된 사안에 대해 학문적 접근에 의한 비평과 이론의 제시 또는 새로운 문제제기를 위한 지성인의 목소리를 냈다. 모교 교수는 물론 국내외 학자들은 고대신문에 <권두논문>을 싣는 것을 무한한 영예로 여겼다. 학생 중에는 매번 <권두논문>을 외워 취직 시험에서 논문 시험을 잘 치렀다며 찾아온 이도 있었다. <권두논문>은 학내외에서 그 진가를 널리 인정받았다.

△<석탑춘추>와 <냉전>은 고대신문에서 가장 오래된 코너이다. 당시 <석탑춘추>와 <냉전>에는 어떤 내용이 실렸나.
-<석탑춘추>는 학내 이슈, 사건에 대해 다뤘으며 그 외에도 시대적인 관심사안을 주제로 했다. 당시 학생들 중에는 신문을 읽을 시간이 없으면 <석탑춘추>와 <냉전>만 읽어도 된다고 할 정도로 주요 사안에 대해 짧지만 강한 필치를 남겼다. 춘추에는 재미있으면서도 촌철살인의 묘를 발휘했던 명문들이 많았다. 간결하면서도 사건의 폐부를 찔렀던 것이다. 내가 고대신문 편집국장으로 있던 때 총장이셨던 김상엽 교수는 춘추의 애독자로 늘 춘추에 후한 점수를 주셨다.

△기자로 활동하면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10?15 위수령 사태 때 비상학생총회 도중 군인들이 들이닥쳐 취재를 하고 있던 나와 학생회 간부는 학생회장실에 피신해 있다가 결국 군인에게 들켜 매를 맞고 끌려 나갔다. 운동장에 머리를 박고 있었는데 학교를 자주 드나드는 군인이 나를 보고 데모 현장마다 나타난다며 “이놈이 제일 악질이다”라고 말했다. 시위현장마다 취재를 나갔기 때문에 시위의 선동자로 오인했던 것이다.
3학년 가을에는 고연전을 앞두고 ‘연세기게양사건’이 있었다. 당시 연세대 학보사인 연세춘추에서 본교 본관 앞에 연세기를 게양하고는 사진을 찍어 신문 1면에 실으려 했던 것이다. 소식을 듣고 당시 연세춘추의 인쇄를 대행해주던 조선일보에서 진을 치고 있다가 연세춘추에 항의해 신문 게재를 막았다.

△MBC 부국장을 역임하는 등 사회에 나가서도 언론계에 종사했는데 고대신문의 경험이 기성언론 활동을 하는데 어떤 영향을 미쳤나.
-고대신문사를 하면서 책임감과 자신감을 얻었다. 어떤 일을 맡더라도 할 수 있다, 해내야 한다,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의지와 열정을 배웠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MBC 부국장을 역임한 것으로부터 아리랑 TV 기획이사, iTV 전무이사, 우리홈쇼핑 전무이사를 지내는 등 새롭고 어려운 일이 생기는 곳으로부터 부름을 받았다. 기획력과 추진력을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바로 이 기획력과 추진력 역시 고대신문 활동을 하면서 얻은 것이다.

△현재 고대신문에서 활동하는 현역기자들에게 조언을 한다면.
-인생에서 청년기에 고대신문이라는 인재양성의 링 위에서 자신을 단련시키는 기회는 매우 귀한 것이다. 고대신문 기자로서의 자긍심과 시대적 사명을 갖고 혼신의 정열을 다해 소임을 다한다면 먼 훗날 자기 성취의 보람으로 보상이 돌아올 것이다.
고대신문은 대학을 선도하는 신문이 되어야 한다. 우리나라 지성을 이끌어가는 신문이라는 긍지를 갖고 신문을 제작하길 바란다. 이러한 자세를 가지면 기사를 기획하고 제작할 때 다양한 시각을 가지도록 차원 높게 사안을 보는 입장이 생길 것이다. 21세기 뉴 미디어 환경에 맞는 진로에 대한 고민도 해야 한다. 어찌하면 독자와의 거리를 좁히고 양방향 커뮤니케이션을 활성화시킬지가 고대신문의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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