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는 창간 58주년을 맞아 새로운 토론문화를 확산시키는데 큰 역할을 하고있는 토론프로그램 진행자 두사람을 만나봤다. 최근 대학생들이 가장 좋아하는 언론인으로 꼽힌 MBC <100분토론>의 손석희 아나운서와 조용히 그 영향을 발하고있는 KBS 라디오 <열린토론>의 정관용 시사평론가가 그들이다. 이 두 사람은 비슷한 분야에 종사하고 있지만 확연히 다른 분위기를 갖고있었다. 냉철하고 철저한 푸른빛의 손 아나운서와 부드럽고 온화한 붉은빛의 정 시사평론가.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 2년 연속 대학생들이 가장 좋아하는 언론인으로 뽑힐 만큼 우리나라 언론의 대표주자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거꾸로 생각해보면 우리나라에 손석희씨만큼 유명하거나 독창적인 언론인이 몇 없어서 그런 것도 같다.
-내가 독창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나라에 독창적인 언론인은 많이 있다. 내가 진행하는 <시선집중>이나 <백분토론>이 주로 시사문제에 관심있는 사람들이 많이 듣는 프로그램이고 매체파워가 있다보니 사람들이 호응해주고, 친밀감이 형성되면서 그렇게 된 것 같다.

△ 언론사에 처음 입사했을 때의 신념과 지금의 자신의 모습을 비교한다면.
-처음부터 어떤 생각이나 신념을 가지고 들어오지는 않았다. 사실 다른 사람과 똑같이 먹고 살기위해 들어왔다. 방송생활을 하면서 많이 담금질이 된 것 같다. 특히 5공시절 방송생활을 했던 것이 나에게 많은 각성의 계기가 됐다.

△ 토론시 사회자로서 공정성을 지키는 것이 힘들지 않는가.
-한쪽에 편파적인 적은 없었다. 사회자는 패널들이 갖고 있는 논거를 잘 풀어놓는 것을 돕는다. 물론 패널이 잘못된 논거를 말할 때는 바로잡아야 한다. 그러다가 도가 지나쳐 사회자가 도발을 하게 되는 경우도 있는데 성공회대 최영묵 교수는 이를 ‘방화범’이라고 말했다. 사회자는 때로는 방화범이 돼야하고, 토론이 과열될 때는 소방수의 역할도 해야 한다. 물론 나도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내 생각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은 당파성이 아니다. 시사프로그램 사회자로서 감수해야 할 일이다.

△ <100분 토론>이 정치적으로 이용되지는 않나.
-토론은 당연히 정치적으로 이용돼야 한다. 다만 그것이 한쪽에 편파적으로 이용되서는 안된다.

△ <100분 토론>을 보다보면 찬반의견을 가진 양쪽의 패널이 서로 입장차이만 확인한 채 끝을 맺는 것이 소모적으로 보이기도 하는데.
-토론에서 뭔가 끝장을 보고 싶어하면 안된다. 토론자들은 각자의 논거가 있고, 토론 프로그램은 그들에게 토론의 장을 마련하는 것 뿐이다. 물론 사람들이 다 합의하고 끝내면 좋겠지만 그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판단은 대중의 몫이고 프로그램은 그것을 돕기 위한 장일 뿐이다. 토론, 특히 방송토론에 대해 고답적인 인식을 가지면 안된다.

△ 우리나라 방송토론프로그램의 한계점은 무엇인가.
-질문을 우리 토론문화가 가진 한계점이라고 하는 것이 좋겠다. 토론의 문제가 한국 토론문화에서 나오는 것이지 토론의 장을 마련한 방송사의 책임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토론을 피하려는 경향이 있다. 패널을 섭외해도 잘 안 나오려고 한다. 그리고 나온 사람들이 상대편을 설득시키기 위한 화법보다는 자기편을 고무시키는 화법을 사용한다. 카타르시스 커뮤니케이션(배설커뮤니케이션)이라고 하는데, 상대편보다 자기편 진영을 향해서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 토론문화의 한계이지, 토론의 장을 마련한 방송사에게는 책임이 없다.

△ 우리나라 언론의 문제점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우리나라 언론계를 관통하는 문제는 상업성이다. 상업성 때문에 콘텐츠와 현상이 왜곡되기 때문이다. 사회구성원들이 함께 관심을 가져야 할 이슈를 다루는 프로그램이 시청률이라는 잣대에 의해 밀려나고 주요시간을 오락프로그램이 채워지는 것을 볼 때 참담하다.

△ X파일 사건에서 나타난 권언유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언론 자체가 정치 권력화하고 있다. 이를 완벽히 막을 수는 없다. 권력의 속성이 여론을 다루는 것인데 언론 역시 여론을 다루는 것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권력화 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옳은 방향으로 권력화하는지 아닌지이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언론은 권력을 객체화해서 봐야만 그것을 제대로 볼 수 있는데 언론이 권력 그 자체가 되는것은 문제가 있다.

△ 시선집중에서 애드립 비중은 얼마나 되나.
-기본틀은 마련해 놓고 더 궁금한 것이 있으면 보충질문을 한다. 하지만 어떨 때는 준비없이 그냥 하기도 한다. 상대방의 준비된 답변은 때로는 모자라기도 하고, 사실을 감추고 왜곡하기도 한다. 이 때 보충질문을 통해 그것을 해결한다.

△ 시선집중에서 전화인터뷰시 상대방과 불편한 관계에 놓이기도 할텐데.
-예정되지 않은 보충질문에 대해 상대방이 많이 불편해하기도 한다. 질문하는 사람은 더 알려고 하고, 상대방은 필요한 것만 알려주려고 하니까. 그러나 애초부터 논쟁을 기도하고 인터뷰를 시작하지는 않는다.

△ 자신의 젊음 지수는 말한다면.(100점 만점)
-싸이월드가 젊음을 나타내는 지표라면, 나는 별로 젊어지고 싶지 않다. 싸이월드에 시간을 투자할만큼 거기에 가치를 느끼지 못한다. 젊음지수는 60점 정도 주고 싶다.

△ 유능한 토론자, 무능한 토론자를 꼽을 수 있나.
-특정인을 꼽는 것은 곤란하다. 다만 나는 토론을 잘하는 사람을 2가지로 본다. 매우 논리적인 사람, 매우 설득력있는 사람이다. 가장 나쁜 토론자는 논리도 없고 설득력도 없는 사람이다. 대개 설득력이 논리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지만 논리와 설득력 중 하나를 택하라면 우리는 설득력 있는 사람을 더 원한다. 철학에서 말하는 에토스(신뢰),로고스(논리),파토스(감성) 이 3가지가 조화를 이루는 토론자가 가장 좋은 토론자이다.

△ 요즘 대학생들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
-부럽고 무섭다. 부러운 것은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고, 무섭다는 것은 힘과 에너지가 넘치는 것이 무섭다는 것이다. 물론 이 말은 좋은 의도이다. 학생들을 가르치러 학교에 1주일에 한번씩 가는데 가르친다기 보다는 그들에게서 기를 얻어간다. 예전과 많이 변한 점은 탈정치화 됐다는 것이다. 물론 내 수업은 저널리즘 이슈와 토론에 대해 다루는 수업이기 때문에 내 수업을 듣는 학생들은 정치의식이 어느정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봤을 때 많은 학생들의 탈정치화됐다. 그렇게 힘과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들이 탈정치화된 것을 보면, 이 사람들이 어떻게 사회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을까 하는 우려가 든다.

△ 학보를 비롯, 대학언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학보사를 최근에 본 경험이 전무하다. 그러나 학보들이 굳이 기성언론과 달라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힐 필요는 없다. 지금은 외연을 넓혀야 할 때이다. 지역사회와 대학은 떼려야 뗄 수없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내가 미네소타 대학에 다닐 때, 미네소타 대학 학보사는 지역 사람들에게 직접 신문을 팔기도 했다. 물론 그 쪽은 대학과 지역사회가 함께 발전해 온 역사를 가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어쨌든 학보사는 지역사회에 관심을 두어야 한다.

△ 인터넷에 손석희씨가 쓴 ‘지각인생’이란 글이 많이 떠돈다.
-유명해지려거나 어떤 의도를 가지고 쓴 글은 아닌데 그렇게 인터넷에 떠돌 줄은 전혀 몰랐다. 일반 사람들의 삶이 워낙 어려우니까 그들에게 힘이 됐을 수 있다. 힘이 됐다면 나도 좋다.

△ 완벽주의자 이미지인데.
-방송에서는 어쩔 수 없이 그래야하는 부분도 있다. 미디어는 이미지를 나쁘게 말하면 조작, 좋게 말하면 가공한다. 그런 이미지가 부담스럽긴 하지만 감수해야 한다. 하지만 실제로 자로 잰 듯이 사는 사람은 아니다. 현실과 미디어가 만들어낸 이미지가 조금 차이는 있는 것 같다.

△ 언론인이 안됐더라면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 것 같은지.
-어렸을 때는 천문학자가 되고 싶었고, 철이 들면서는 건축학자가 되고 싶었다. 불행하게도 나는 이과쪽이 아니었다. 수학을 못했다. 우리나라 교육제도가 참 이상하다. 수학을 못하면 왜 건축학과를 못가는지.(웃음)

△ 언론인을 꿈꾸는 학생들에게 격려와 조언의 말을 해달라.
-‘열심히 준비하세요’ 라는 말밖에 할 말이 없다. 먼저 들어와 있는 선배 입장에서 늘 미안하다. 사람을 적게 뽑으니까. 하지만 요즘 MBC는 연령, 학벌 등의 제한을 철폐해 최대한 공평한 경쟁이 될 수 있도록 장벽을 없애고 있다. 언론인을 꿈꾸는 사람은 관심을 여러 곳에 두고 방송도 잘 알아야 한다. 무엇보다 가치관이 제대로 정립돼 있어야 한다. 상황에 순응하기 보다는 문제의식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나는 방송사에 들어와서 시행착오를 겪으며 시간을 허비하기도 하는 준비되지 않은 사람이었다. 미리 준비해서 시행착오를 겪지 말길 바란다.

인터뷰/ 장효주 편집국장, 금보운 취재부장
정리/ 이정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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