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렴결백 정직한 사람 사회 리더돼야
명동성당 공권력 요청 극한에 몰린 고육책

‘어지러운 세상이다.’
다스리는 자와 다스림 당하는 자가 서로 공존해 세상을 이루고 있고, 그 세상은 다시 인생이란 것의 상위 개념이 되어버린다. 연일 계속되는 이야기, 정치인의 아무개가 어떻게 했다더라, 연예인 누구 누가 어떻 다더라. 어쩌면 세상이 혼탁할수록 인생은 단순할지도 모를 일이다. 다만 한가지 복잡한 것은 계속되는 일 뿐. 계속되는 단상의 선을 잘라 볼 수는 없는 걸까? 인생, 삶의 이야기를 들을 수는 없는걸까?

역설적이게도 다스리는 자와 다스림 당하는 자가 서로 공존하는 세상. 그 곳의 단면을 해석해 줄 수 있는 어른에 대해 생각할 수 밖에. 우리 사회에서 믿고 인생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사람, 김수환 추기경[사진]그에게 2002년 어수선한 한국의 가을을 묻는다. 

△사회가 혼란스러울 때, 고견을 들을 수 있을 정도의 원로는 안타깝게도 많지 않다고 합니다. 한국 사회에 진정한 원로가 없는 원인이 어디에 있다고 보시나요? 
우선 나이 든 사람들 중 학식 있고 모범적인 사람이 별로 없어서 원로가 없다는 말이 나온 것 같아요. 그렇지만 젊은 사람들이 연예인 같은 유명인에게만 매력을 느껴서 늙은이가 사회에서 밀려나간 것일 수도 있어요. 또, 장유질서가 뿌리 깊던 예전과 달리 누구나 평등하다는 생각이 광범위하게 퍼진 요즘 사람들이 원로를 찾지 않아서 원로가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해요.

△현 정부 출범 즈음, 정국 운영에 대한 조언을 주시기도 하셨는데요, 국민의 정부 5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글쎄요. 그 분이 정권에서 물러난 후 좀 더 시간을 갖고 지켜봐야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렇지만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된 것만으로도 지금까지 지역, 가난 등의 이유로 소외됐던 사람들의 상처가 어느 정도 치유했다고 생각돼요. 그러나 취임 전 IMF 위기에 적절히 대처해 인기가 높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후 편향된 인사정책이라든가 권력남용, 아들의 비리사건 등은 이전 대통령의 전처를 밟는 것 같아 아쉬움이 남네요.

△그렇다면 좀 더 외연을 넓혀, 우리 사회의 리더가 갖춰야 할 덕목은 무엇이며 대선후보가 갖춰야 할 자질은 무엇인가요? 
총리 인증과정에서 드러나듯 가장 중요한 것은 청렴결백이고, 또 그 사람 말을 믿을 수 있는 정직성이에요. 그리고 지역·계층·세대·노사 간의 갈등과 같은 문제들을 국민의 의견을 수렴해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 리더가 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같은 맥락으로 그런 사람이라면 남북문제도 통일로 이끌 수 있다고 생각되네요.

△북한 핵문제는 초미의 관심사입니다. 이를 근거로 대북 지원에 대한 의견이 분분한데, 우리나라의 대북 정책은 어떤 입장을 견지해야 할까요?
대북정책은 근본적으로 화해와 협력을 바탕으로 이끌어야 해요. 인간적으로 솔직하게 얘기할 수 있는 파트너 관계도 유지해야 하구요. 물론 우리가 일방적으로 주거나 북쪽에 매달리는 것은 곤란하죠. 최근 북한의 핵 보유문제가 불거졌는데, 북한이 핵폭탄을 얼마나 갖고 있는지 모르지만 그것으로 우리를 협박해서는 안되며, 이는 북한 을 위해서도 현명하지 못한 행동이에요.

△지난 9·11 테러를 일부 전문가들은 문화 충돌로 보기도 했습니다. 종교 또한 문명의 핵심을 이루고 있는데요, 문명 대립으로까지 치닫고 있는 세계 평화를 어떻게 풀어가야 할까요? 
종교가 다르다고 해서 적대적인 관계가 생기는 것은 아니에요. 9·11사태 역시 이슬람교와 크리스트교가 서로 달라서 발생한 것이 아니라, 일부 이슬람교도가 정치적 이유로 조성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테러를 감행했는데, 그들이 이슬람교도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종교와 연관짓는 것일 뿐이에요. 물론 문제가 있다면 폭력이 아닌 사랑과 용서로 해결해야겠죠. 폭력은 다시 폭력을 낳으며, 악순환이 계속되니까요.  

△명동성당에 대한 천주교 서울대 교구 측의 공권력 투입요청을 규탄하기 위해, 20만 인간띠 실천단 결성에 들어갔습니다. 명동성당을 둘러싸고 들리는 잡음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한 두 마디로 말하기는 좀 어려운 문제네요. 우선 카톨릭 성모병원 노동자들이 굉장히 억울한 입장에 있다고 여론에서는 보여지는데, 약간의 오해가 있다고 생각돼요.

노조측은 모든 잘못을 병원 탓으로만 돌리고 있어요. 그러나 처음에 노조가 중재위원회에 중재를 요청했을 때, 병원 측은 그것을 받아들였어요. 원래 법정 중재가 들어와서 상대편이 받아들이면 적어도 보름간은 파업을 하지 않고 양쪽이 타협을 해야 하거든요. 그런데 그들은 갑자기 태도를 바꿨고, 법이 자신들이 파업을 하는 데 불리하게 돼있다고 주장하며 돌연 파업에 들어갔어요. 또, 처음에는 임금인상을 위해 파업을 시작한 것으로 아는데, 이게 성희롱 문제까지 번진 것은 노조가 언론을 너무 극단적으로 몰고 가서 발생한 것 같아요. 무엇보다 지난번에 치료받으러 병원에 가서 노조측은 자신들의 입장만 일방적으로 벽보에 적어 붙이고 병원 측의 벽보는 모조리 뜯어버리는 것을 봤는데, 대화를 통해 해결책을 찾아야 하는 이런 문제에 서로 대화하려는 노력이 부족한 것 같아 많이 안타깝네요. 그리고 어제는 혜화동 로타리에 가서 우연히 ‘이제는 추기경님이 나오실 차례입니다’라고 씌어진 플래카드를 봤는데, 선임자는 후임자가 아주 큰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 한 후임자의 결정에 반대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또, 성역의 질서 유지를 위해 약자를 감싸지 않겠다는 비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사람들은 단지 그들이 노동자란 이유만으로 동정하는 것 같은데, 천여 명으로 조직된 그들은 이제 내전 현관문까지 봉쇄해서, 출입하는 사람들은 자기 집에 살면서도 숨어살 듯 지내요. 예배와 미사 는 물론 교무처 일도 거의 볼 수 없을 지경이에요. 그러니 어쩌겠어요. 물리적 힘을 일체 사용할 수 없는 명동성당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성지를 자기들 사유물처럼 사용하는 그들에게 대항하기 위해서 공권력에 호소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생각돼요.

△ 과학은 점차 발달해, ‘신의 영역’을 향하고 있다고 평가되기도 합니다.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서 우리들이 과학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과학은 자연의 신비를 벗겨내고, 과학자를 통해 하나님이 사람을 만든 신비로움에 조금은 다가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광대한 자연과 하늘의 별, 이런 것들은 볼 때마다 놀랍잖아요. 또, 원자 역시 연구자들이 연구와 분석을 거듭해도 끝이 없는 것을 보면 정말 신비스러워요. 우리의 몸 역시 원자로 구성되었다는 점에서 땅을 이루고 있는 것과 근본적으로 같다고 볼 수 있어요. 이 점에서 우리 몸도 한없는 신비 속에 있다고 할 수 있어요. 따라서 신비로움을 밝혀내는 과학의 발전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러나 과학은 그 자체의 발전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고 소중함을 간직할 수 있을 때 의미가 있는 거예요. 요즘 인간 배아복제다 해서 인간 존중이나 생명존중에 바탕을 둔 윤리관 없이 단지 편리함 추구하기 위한 연구를 하기도 하는데, 이런 연구는 자칫하면 인류에 재앙을 불러올 수도 있어요. 무엇보다 인간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나온 과학이 돼야겠어요.
 
문답이 끝나고 문을 나선다. 어쩌면 사랑과 죽음이라는 문턱을 가장 잘 알며, 가장 잘 해석 해줄 수 있는 사람. 아쉬움에 뒤를 돌아보지만, 보이는 건 그의 얼굴이 아닌 그의 손마디다. “죽을 준비를 해야지” 죽을 준비를 해야 한단다. 말만 앞세우고 행동을 따르지 않았던, 그의 일생에 단막을 내릴 준비를 해야한단다. 사랑해야 한단다. 많음을 포괄하더라도 남을 위해야 한단다. 80生 로맨티스트의 손마디를 보며, ‘아직 당신의 손길을 기다리는 사람이 많을 텐데…’라고 넘겨짚어 본다.
그리고 그러한 광경이 주는 온기만을 가지고 다시 계속되는 인생으로 회귀한다.

대담:김대원 편집국장
정리:윤수현 취재2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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