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철 고문 치사사건의 진상을 밝혀내는 등 법의학계의 1인자로 인정받고 있는 황적준(의과대 의학과)교수가 최근 『파리가 잡은 범인』이라는 법 곤충학 서적을 번역, 베스트셀러 대열에 올랐다. 지난 15일(금) 기자가 만나 본 황 교수는 파평 윤 씨 미라연구 발표에 한참 바쁜 발걸음을 옮기던 중이었다.

황 교수는 번역한 책이 전공인 법의학을 다룬 내용이어서  의학적으로는 어려움은 없었으나 곤충 분야에 대해서는 생소해 이를 분류하는 과정에서 고생을 많이 겪었다. 그 당시 의학도서관장을 맡고 있었기에 주변으로부터 도움을 얻을 수 있었다.

현재 법의학의 현실에 대해 “의학의 3D에도 들지 못할 정도로 대다수의 의학 전공자들이 기피하는 분야”라고 황 교수는 말한다. 의과대에서 부검을 정기적으로 할 수 있도록 제도적인 장치가 마련되어야 하는데도 불구, 국가에서 대학 병원 측이 사망원인을 규명해 낼 수 있도록 허용하지 않아 법의학 전공자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사회적으로도 전문적인 인력을 필요로 하고 있으나 수요에 비해 공급이 매우 부족한 상태라며 황 교수는 씁쓸한 웃음을 짓는다.

황 교수가 전문 번역가가 아닌데도 굳이 직접 책을 번역한 이유는 이처럼 열악한 법의학 연구에 대해 사회적인 관심을 고취시키고 의학 전공자들이 이 책을 읽고 법의학에 관심을 갖길 바랐기 때문이었다.

마지막으로 미궁에 빠진 사건의 진상을 밝혀 낼 때마다 법의학자로서 어떤 느낌이 드는지 묻자“언론에서는 내가 영웅이라도 된 것처럼 이야기하는데 그저 나는 내 할 일만 한 것 뿐”이라며 겸손함을 보였다.

남이 가지 않는 길을 가기에 더 힘든 시간들이었지만 그만큼 얻은 희열 역시 컸다고 말하는 황 교수. “이번 학장 임기가 끝나면 법 곤충학에 전념할 생각”이라며 안일함을 추구하지 않으면서도  의사의 본분을 다하는 모습에서 ‘히포크라테스 선서’가 되살아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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