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민주주의에 대한 본격적인 이론적 성찰이 빈약한 실정에서, 일관되게 그 문제를 천착해온 최장집 교수가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를 출간했다. 「조선일보」로 인해 더욱 유명해진 『한국민주주의의 조건과 전망』 이후 꼭 6년만의 일이다. 민주화 이후의 한국정치에 대한 최 교수의 후속 작업을 기다리던 사람들에겐 말할 수 없이 반가운 소식이다. 이 책은 2가지 점에서 독자들을 견인한다. 첫째, 최 교수의 지난 저술들에 비해 비정치학도들도 쉽게 접할 수 있을 정도로 문체의 유려함과 저자의 개인적 문제의식이 도드라지며 둘째, 최 교수 특유의 이론적 투철함과 동서양의 다양한 비교시각을 유지하면서도, 시기적으론 DJ정부하의 최근 상황에 이르기까지, 또한 쟁점의 범위에 있어서는 세계화가 한국민주주의 발전에 던지는 함의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이슈를 취급하고 있다.

최 교수는 이 책에서 민주화 이후의 한국민주주의가 오히려 위기에 처했다는 진단을 내린다. 그 근거는, 우리의 시민사회가 보수적 주류언론을 주축으로 형성된 소위 ‘담론동맹’에 의해 냉전이데올로기와 지역감정 그리고 시장근본주의로 기진해 있는 반면, 정당 등 정치적 대표체계의 미발달과 정치엘리트의 카르텔화로 폐쇄적 무력증의 탈진상태에 있는 정치는 무책임한 적의(敵意)의 목표물로 일상적으로 폄하되고 있다는 데 있다. 특히 이 책의 독자들은 잘못된 사회통념 혹은 허위의식의 심연을 들춰내는 저자의 예민한 통찰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거니와 예컨대, 그는 지난 일년간 거대언론들에 의해 분주히 회자되어온 ‘제왕적 대통령’ 그리고 그 대체개념으로서 ‘CEO 대통령’ 등 담론들이 왜 퇴행적 이데올로기의 혐의가 짙은지를 논리적으로 부각시킨다. 최 교수는 한국의 자유주의가 냉전반공주의와 최근의 시장지상주의와 동일시되는 와중에 “보수세력에 의해 오염되고, 비판적 운동세력에 의해 버림받았다.”고 단언하면서, 자유주의의 원래 의미를 복원시키고 공화주의적 전통을 새롭게 확립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한 이념적 토대가 되어야 할 것으로 주창한다.

10여년 전 한국노동계급형성에 관한 효시적 연구인 『한국의 국가와 노동운동』을 읽으면서 학자의 자세와 한국정치에 관한 문제의식을 키웠던 나로서는 한 세계적 정치학자의 학문적 연찬 외에 한국민주주의의 갱생을 갈망하는 한 시민으로서 최 교수의 열정을 새삼 확인하는 가외의 기쁨도 얻었다. 이 책이 지난 여름 최 교수의 일련의 ‘열린’ 특별강연을 토대로 저술되었다는 사실은 그가 그리도 강조해마지 않는 시민교육과 정치교육에 대한 지식인의 책무를 감동적으로 환기시킨다.

고세훈 교수는...
 

경상대 행정학과 교수. 1955년 서울 출생으로 연세대 경제학과, 서울대 대학원 정치학과를 거쳐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학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영국정치와 서유럽 사민주의 그리고 복지국가 등과 관련한 30여 편의 논문을 발표. 『유럽 민주주의와 노동정치』, 『복지국가의 이해: 이론과 사례』 등의 저서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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