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브라질은 대통령, 주지사, 상원의원과 하원의원, 주의원을 한꺼번에 뽑는 그야 말로 선거 정국이었다. 선거열풍은 여당의 정치스캔들 폭로로 이어져 선거결과를 예측할 수 없었다. 이런 가운데 대통령 선거는 1차 투표에서 과반수이상의 득표자가 없어 상위 1,2위가 다시 결선투표에서 맞붙어 현대통령인 룰라 후보가 보수진영의 알크민 후보를 누르고 연임에 성공했다. 좌파 정권의 연임 성공을 두고 남미 ‘실용 좌파’의 승리, ‘우파의 경제정책과 좌파의 선거운동의 결과’ 등 다양한 평가들이 나오고 있다.   

룰라 대통령은 구두수선공, 금속노동자, 노동자당 당수를 거쳐 현재에 이르고 있는데 ‘노동자 대통령’으로 불릴 정도로 대중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는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그는 민주화 이후 대통령 선거에 한번도 빠지지 않고 도전해 3전4기로 정권창출에 성공했다. 이 과정에서 룰라는 변함없이 노동자와 빈민의 사람이었기 때문에 보수진영과 대립적인 관계를 만들었다. 그렇지 않아도 브라질은 사회·경제적 양극화가 심한 나라인데 그 동안 치룬 선거가 좌와 우, 진보와 보수, 가난한 자와 부자라는 대결구도를 더욱 뚜렷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대통령 선출 방식이 편가르기를 부추기고 있다고 비난받는다. 

룰라 대통령은 이번 선거에서 ‘자신의 승리가 곧 브라질의 승리’가 될 것이라고 설득했다. 진정한 브라질의 승리인지 한번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우선 두 후보가 득표한 상황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룰라 후보가 계층적으로는 저소득층, 지역적으로는 북부와 북동부, 정치적 성향으로는 개혁적인 도시 중산층의 지원을 받았으며, 알크민 후보는 부유층, 남부와 남동부, 보수 계층의 지지를 받았다. 따라서 룰라는 절반의 승리에 기뻐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승리가 브라질의 승리가 되게 하려면 다른 절반을 위해 안고 있는 절반을 부드럽게 내려놓고 나머지를 위한 몸짓을 해야 한다. 

브라질은 안정된 경제성장으로 개발도상국의 선두주자인 브릭스(BRICs)로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룰라 집권 이후 경제성장률이 다른 국가들에 비해 낮아 새로운 발전 동력이 필요하다고 인식하고 있다. 사실 집권1기 룰라 대통령은 ‘기아 제로(Fome Zero)'를 외치며 빈곤퇴치에 많은 관심과 노력을 기울였다. 일부에서는 성공적인 정책이라고 하지만 또 다른 측면에서는 성장을 잡아먹은 분배라고 한다. 이런 평가를 의식한 듯 당선 직후 집권 2기에는 발전주의 경제정책을 추진할 것이며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정치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성장을 통해 분배를 달성하겠다는 의미로 자신이 추구할 브라질의 사회통합 방식을 제시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지금까지 전세계의 다른 국가들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성장과 분배의 균형을 유지하는 일이 쉽지 않다. 

지금 남미는 다시 좌파 운동이다. 1988년 베네수엘라의 차베스가 반미·반자본의 강경좌파를 주장하면서 등장한 이후 많은 국가에서 좌파가 정권을 창출하고 있다. 룰라는 시장경제, 자유무역과 외국자본에 대해 유연한 태도를 보이는 실용 좌파를 선택했다. 그가 추진하는 실용 좌파 경제 정책은 ‘브라질 모델’로 관심을 모으고 있는데, 그 동안 브라질이 성장 모델을 찾지 못해 헤매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선택이 더 많은 관심을 끌고 있다. 자신의 정책적 선택이 남미 강경좌파들과 부딪히지 않게 하는 것은 자신의 개인적 신념의 문제일 뿐 아니라 남미에 대해 브라질이 가지고 있는 리더십의 문제이기도 하다. 베네수엘라가 브라질이 주도하는 남미공동시장에 가입하여 희망적인 일면을 보였지만, 미국의 부시 대통령과 차베스 대통령의 외교적 압력 속에서 브라질의 리더십이 손상되지 않게 선택한다는 것이 간단한 문제는 아닐 것이다.

이처럼 룰라 대통령은 사회적 양극화의 심화, 지지 세력과 반대 세력의 대립적 요구, 경제성장과 분배의 문제, 미국과 남미 강경좌파의 대립 문제에서 어려운 선택을 해야 한다. 우선 국내에서는 나머지 절반을 안기 위해 정책적 선택을 해야 하며 자신이 안고 있는 절반을 설득해야 한다. 이런 과정에서 성장과 분배의 선택이 나라를 양분시키는 일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적절한 사회적 합의점을 도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미국과 강경좌파의 관계에서도 브라질의 리더십을 시험하는 도전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룰라 당선자는 자신이 걸어온 길에 비춰 브라질 사람들이 좀더 ‘조화로운 관계’ 속에서 사회통합에 참여할 수 있는 선택을 해야 한다.

김영철(부산외대 이베로아메리카연구소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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