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에서는 교회를 하루에 한 개씩만 봐도 900일이 넘게 걸린다고 한다. 교황 그레고리 14세가 3주일을 채우지 못하고 가는 여행자에게는 “안녕히 가십시오.”를, 몇 달 이상 머무는 여행자들에게는 “그럼 로마에서 다시 만납시다.”라고 말했다는 이야기가 괜히 전해지는 것이 아니다. 로마에는 통하는 길만 많은 것이 아니라, 볼 것도 많은 것이다.
 
하지만 볼거리가 많은 만큼 로마에 대한 여행 가이드북을 쓰는 사람들은 늘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수많은 볼거리 중에서 정말 꼭 봐야하는 중요한 것들만 추려도 수 십장이 넘어가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운 좋게 선택된 볼거리들은 언제나 한국인들로 북적이는 대표적인 로마의 관광지일 뿐이다. 하지만 조금만 신경 써서 걷다보면, 로마의 평범한 주택에서도 무심코 지나치는 골목에서도 몇 천년동안 전해진 로마의 숨결을 찾아낼 수 있다. 
 

가장 먼저 찾아갈 곳은 떼르미니 역 북서쪽에 위치한 바르베리니 궁전이다. 지금은 로마국립고대미술관으로 이용하고 있는데, 베르니니 등 르네상스 최고 건축가들이 설계한 외관과 계단부터 우리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그 내부로 들어가면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기 거장들의 회화를 만나볼 수 있는데, 카라바조의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치는 유디스], 귀도 레니의 [베아트리체] 등이 바로 그것이다. 보수공사로 인해 두 군데 전시실에 명작들을 모아서 전시하고 있기 때문에, 수많은 명작들을 숨 돌릴 틈 없이 만나볼 수 있다.
 
이제 이곳을 떠나 고대 로마제국의 뛰어난 과학 기술을 만나볼 차례이다. 로마의 대표적인 쇼핑가인 비아 델 코르소의 서쪽에 있는 파를라멘토 광장(로마시대에는 캄푸스 마르티우스라고 불렸다)에는 로마 제국의 초대 황제였던 아우구스투스가 가져온 오벨리스크가 서있었다. 광장 바닥에는 시간과 계절을 나타내는 눈금선들이 있어서 오벨리스크 그림자를 통해 시간과 계절을 알 수 있었다. 조선시대 지평일구가 거대한 광장으로 확대되었다고 상상하면 편하다. 하지만 파를라멘토 광장은 중세를 거치면서 주택들로 들어찼고, 마침내 교황 베네딕트 14세는 오벨리스크를 원래 자리에서 남동쪽으로 한 블록 떨어진 몬테치토리오 궁전 앞으로 옮겨 놓았다.
 
힘들게 찾아본 해시계의 흔적을 뒤로 하고 로마의 역사적 중심지(Centro Storico)를 계속 걸어 내려가다 보면 트레비 분수를 만날 수 있다. 베르니니가 만든 트레비 분수는 동전을 던지기 위한 관광지로 알려져 있지만, 그 이면에는 엄청난 사실이 숨겨져 있다. 트레비 분수에서 나오는 엄청난 양의 물은 모두 로마시대 만들어진 아르고 수도를 통해 들어온다. 뿐만 아니라 시내 곳곳에 있는 크고 작은 분수들은 거의 대부분 고대 로마의 수도를 이용하고 있다. 몇 천 년이 지나도 여전히 제 기능을 발휘하는 것도 놀랍거니와, 그토록 오래된 수도를 아직도 이용하는 로마 시민들의 역사적 인식도 놀랍다.
 
트레비 분수에서 남쪽으로 내려가면, 로마의 신들이 거처했다는 카피톨리노 언덕을 마주하게 된다. 여기서 오른쪽으로 걸어가면, 로마시대 최초의 극장이었던 마르켈루스 극장이 나온다. 고대 로마시에는 공화정 말기까지도 석조 반원형극장이 하나도 없었다. 이에 폼페이우스는 자신의 전승기념물로 로마 시민들에게 제대로 된 반원형 극장을 선사하고자 했다. 극장의 이름은 먼저 죽은 조카 마르켈루스를 기리기 위해 마르켈루스 극장이라 지었다. 로마 최초의 극장 유적은 파괴되거나 세월의 흐름 속에 묻혀버린 다른 유적들과는 달리, 중세 어느 귀족에 의해 보존될 수 있었다. 가문의 별장을 지으면서 마르켈루스 극장의 외벽을 최대한 살렸던 것이다. 그 덕분에 지금 우리들도 로마 최초의 반원형 극장을 만나볼 수 있다.
 
마르켈루스 극장에서 카피톨리노 언덕을 가로질러 내려가면 고대 로마의 정치, 문화, 교육, 예술 등 모든 공적 활동의 중심지였던 포로 로마노가 나온다. 이곳은 곧바로 팔라티노 언덕과 콜로세움으로 이어지는데, 이 두 곳은 포로 로마노와 달리 10유로의 입장료가 있다. 한 여름 성수기에는 콜로세움에 입장하기 위한 줄이 수 십 미터씩 서있는데, 간단한 팁 하나로 기나긴 줄을 피해 빠르게 입장할 수 있다. 앞서 말했다시피 콜로세움과 팔라티노는 10유로짜리 통합 입장권으로 입장한다. 따라서 비교적 한산한 팔라티노 언덕 매표소에서 입장권을 사면 손쉽게 로마의 대표적 유적지 두 곳을 관람할 수 있다.
 
10유로가 아깝다면, 콜로세움 주변에서 놓쳐서는 안 될 유적들을 찾아가보자. 콘스탄티누스 개선문의 앞쪽으로 사각형의 공터가 있다. 많은 관광객들이 그냥 지나치는 이 공터는 네로가 세웠었던 거대한 콜로수스 동상의 기단부 유적이다. 이곳에서 콜로세움을 따라 절반쯤 돌아가면, 작은 입석들이 세워져 있다. 콜로세움에 비해 작디작은 입석들은 당시 콜로세움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게 해주는 중요한 유적이다. 로마는 지중해성 기후지대로 한 여름에는 태양 아래에 앉아 있을 수조차 없다. 만약 지금과 같은 콜로세움 구조라면 노예들은 물론이고 황제까지도 더위 때문에 고생했을 것이다. 바로 이 때문에 콜로세움 최상층에는 도넛 모양의 거대한 천이 덮어씌워졌고, 그 천을 지탱하는 줄을 묶었던 돌이 바로 콜로세움 주변의 입석들이다. 
 
콜로세움을 떠나 이제는 로마 외곽으로 나가보자. 날씨가 화창한 일요일이면 좋은데, 지금부터 찾아갈 아피아 가도는 일요일에 차량들을 통제하기 때문이다. 기원전 4세기 아피아라는 재무관에 의해 건설된 아피아 가도는 로마 최초의 가도이자, 로마와 이탈리아 남부를 연결하는 주요 가도였다. 바로 이 아피아 가도가 로마에서 4km정도 떨어진 외곽지대까지 거의 그대로 남아 있다. 버스를 타고 보존된 아피아 가도의 남쪽 끝에서 내려, 자전거를 타거나 도보로 로마까지 올라오는 길은 산책하기에도 좋고 느긋하게 주변 유적지를 둘러보기에도 좋다. 무덤을 도로변에 만드는 고대 로마인들의 관습 덕분에 로마인의 무덤들도 확인할 수 있고, 초기 기독교인들의 카타콤베도 볼 수 있다. 무엇보다 기독교인들에게는 성베드로와 관련된 도미네 쿠오바디스 성당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로마는 몇 달 동안 여행하더라도 아쉬움이 남을 정도로 매력적이다. 수천 년을 이어져온 과거 유적들이 엄청나게 남아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로마의 매력이 단순히 남아있는 옛날 돌덩이들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로마는 다른 유럽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과거를 끊임없이 발굴하고, 해석하여 역사로 만들고 있다. 지금까지 살펴본 로마의 숨어있는 유적들도 모두 그런 역사인식 아래에서 보존되고 알려진 것들이다. 과거를 그냥 내버려둔다고 역사가 되지는 않는다. 과거를 현재의 관점에서 해석하는 역사인식이 있어야 역사가 되는 것이고, 바람직한 미래로 나갈 수 있다.
문과대 한국사 04 임동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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