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책을 부여잡고, 고개를 떨구는 노인의 사진 옆에 ‘행복해서 울었습니다.’라는 광고 문구가 실린 광고를 기억하는가? 거기에 나온 사진은 무수한 구절보다도 분단의 아픔을 절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 사진을 창조한 사람은 작가 김녕만[사진]이다. 2001년 ‘올해의 사진기자상’에 이어 이번 ‘대한사진문화상’ 수상자로 선정된 그. 사진을 찍을 때 피사체를 항상 따뜻한 시선으로 대한다는 그를 만나기 위해 그가 일하는 『사진예술』 사무실을 찾았다.  

△지난 해 올해의 사진 기자상에 이어, 이번 대한사진문화상 수상자로 선정된 것을 축하드립니다. 먼저 선생님의 사진에 대한 열정의 원동력은 무엇인지 알고 싶습니다.
- 아무래도 사진 그 자체를 좋아하는 게 원동력이겠죠. 실제로 사진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고등학교 졸업 후였어요. 특별히 잘하는 게 없었던 전, 어느 날 우연히 사진을 찍었는데, 잘 찍었다고 칭찬을 받았죠. 그 때 ‘내가 여기에 소질이 있구나.’라는 생각을 했고, 이를 계기로 사진에 뛰어들게 됐습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사진이 예술로서 인정받지 못하던 시기에 사진을 시작하셨습니다.
- 중앙대 사진학과에서 학부 시절을 보낼 당시, 교수님들이 ‘너희는 행운아’라고 하셨어요. 그 말씀은 미개척지였던 사진의 영역에 소위 말뚝만 박으면 제 땅으로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이 많다는 뜻이었겠죠. 지금이야 40여 개의 대학에서 사진학과를 개설한 상태지만, 그 때는 중앙대 사진학과가 유일했거든요.

1960년대 말이나 1970년대 초, 사진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고 있기는 했지만, 사진을 예술의 한 분야로 인정하는 분위기는 아니었어요. 지금은 예술의 영역이 커짐에 따라 사진도 자연스럽게 예술의 영역으로 인정됐지만 말입니다. 어떻게 보면, 아웃사이더로 밀려나 있었던 사진이 지금은 예술의 중심부로 입성했으니, 사진의 가치가 많이 상승했다고 할 수 있네요.

그리고 사진 자체의 영역도 많이 확대됐어요. 예전에는 사진의 ‘기록성’을 중시해서, ‘사실성’만 강조했는데, 지금은 사진으로 다양한 표현을 추구합니다. 사진을 찢어서 전시, 합성하는 게 그 예죠.

△30년 넘게 사진과 함께 하셨는데, 선생님의 사진에 대한 관점은 어떻게 변해왔는지 듣고 싶습니다.
- 제 고향은 판소리의 고장인 전북 고창입니다. 고향의 영향 탓인지 사진을 처음 배우기 시작할 때 판소리 같은 사진을 찍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실제 사회는 직설적이고, 여유가 없는 경우가 많은데 반해, 판소리에서는 놀부의 심술도, 춘향이의 애절한 사랑도 해학으로 풀어냅니다. 저는 사진 속에 여유를 담아내고 싶었어요. 그래서 휴머니티가 들어간 사진을 많이 찍었습니다. 사진집 『유머가 있는 풍경』에서 볼 수 있듯이, 생활 속 유머러스한 광경을 포착해 사진을 찍기도 했죠.

사진 기자로 활동하면서부터는 보도 사진을 주로 찍었지만, 보도 사진에도 가장 중요한 건 ‘사랑’이라고 생각해요. 비판의 대상을 찍을 때에도 단순히 감정 표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기반으로 한 충고의 마음이 있어야  좋은 사진이 나온다고 봅니다.

△‘사회 참여적’ 사진들을 많이 찍으셨습니다.
- ‘참여’라기보다 제가 역사의 현장에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생각해요. 역사 현장을 사진으로 담기 위해 억지로 한 일은 없습니다. 단지 기자라면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공정성을 유지하면서 최대한 주관을 배제한 채 역사 현장을 지켜본 거지요. 개인적 사진집에는 주관적인 관점을 담을 수 있지만, 신문에는 객관성이 우선이니까요.

△역사적 ‘기록물’로서의 사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사진은 단순한 기념사진 한 장도 사료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기록물’의 가치를 지닙니다. 사진 한 장이 과거의 삶을 유추하는 징검다리의 역할을 하거나 사건의 실마리를 해결하는 중요한 단서가 되기도 하죠. 그러나 기록이 기록으로만 존재해서는 안됩니다. ‘기록’된 사진을 정리해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 또한 중요합니다.

‘기록물’로서의 사진의 영향력은 큰 편입니다. 김주열 군과 이한열 군의 사진 한 장이 민주항쟁을 불러일으킨 원동력이 되기도 했으며, 종군 사진가들의 영향으로 반전 운동 확대에 긍정적인 효과를 더하기도 했죠.

여기서 주의할 점은 ‘사실성’입니다. 특히 사실과 진실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한 예로 데모 현장에 학생과 경찰이 대치되는 상황이라고 가정해 봅시다. 이 상황에서는 경찰과 학생이 서로를 때리는 일도 발생할 수 있죠. 그런데 경찰이 학생을 때리는 사진만 보도될 경우, 사실이긴 하지만 진실은 왜곡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민주화 운동 현장에서 취재를 하시면서 느꼈던 점은 무엇입니까. 
- 언론의 자유가 보장되지 못하던 때였습니다. 당연히 광주 항쟁에서 찍은 사진도 보도되지 못했죠. 외신에는 보도된 광주 항쟁이 국내 신문에 보도되지 않은 것을 안 광주 시민들이 분개하는 현장에 있었습니다. 그 때 전 많은 자괴감을 느꼈습니다. 특히 ‘알려야 하는’ 기자의 입장에서, 제가 본 것을 말하지 못할 때의 자괴감은 정말 컸죠.

△북한 취재도 많이 하셨던데, 선생님이 보신 북한은 어떠했나요.
- 북한의 문화나 언어에 대한 괴리감을 많이 느꼈어요. 물론 북한 사람들과 말은 통했지만, 가슴이 통하지는 않았거든요. 서로 벽이 쌓여 있으니깐 그런 것이겠지요. 또한 분단된 채로 살아야 하는 세월이 길어질수록 벽은 깨기 힘들어지겠죠.

△일상의 삶을 프레임으로 포착할 때, 특별히 적용시키는 기준이나 관점을 가지고 계십니까.
- 글쎄요. 사진을 머리로 계산해서 찍진 않습니다. 게다가 사진은 250분의 1초라는 짧은 시간에 찍히잖아요. 그래서 시쳇말로 사진 기자가 가장 단가가 높다는 말을 해요. 하루에 1초도 일을 안 하는데 똑같이 월급을 받는다는 거죠.(웃음)

특히 보도 사진은 마의 속도로 사진을 찍어야 합니다. 매 순간 순간 느낌이 와 닿아야 하고, 교감의 속도도 빨라야 하죠. 그러기 위해서는 평소의 시각적 훈련이 매우 중요합니다. 많은 데이터가 구축돼 있는 컴퓨터가 자료의 처리를 빨리 도출해내듯, 사진가도 훈련을 통해 사물을 보는 수준이 높을수록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거겠죠. 

또한 사진은 영상 언어라고 칭해집니다. 언어는 ‘아’냐 ‘어’냐의 작은 변화에도 달라지듯, 사진도 조금의 ‘다름’이 큰 차이를 만들어 냅니다. 특히 사진이 사진가를 통해서 나온다는 것을 생각하면, 사진은사진가의 인생관이나 관점, 수준이 담겨 있는 결과물이죠. 따라서 사진가는 스스로 자신의 내면을 키우는 게 필요하다고 봅니다.

△사진에 담겨있는 메시지의 영향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메시지는 사진에서 가장 강조되는 부분이 아닐까 생각되네요. 신문도 사진의 유무에 따라 차이를 보입니다. 신문에 사진이 있는 경우가 시선을 끄는 효과가 크죠. 그러나 사람들이 이를 망각하는 경우가 많아 속상할 때도 있습니다.

한편, 글은 논리적인 반면, 사진은 감성적입니다. 거꾸로 보면, 사진이 비논리적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 만큼 빨리 받아들여진다는 점에서 전달력이 뛰어나죠. 분단의 슬픔을 담은 사진의 경우, 그 사진 한 장으로 민족의 아픔을 느낄 수 있게 해 주잖아요.

이번 월드컵 열기에도 사진을 비롯한 영상이 큰 몫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예전처럼 단순히 중계만 가지고는 그렇게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집중시키기 어렵기 때문이죠. 흔히 사진을 제3의 눈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미처 포착하지 못했던 순간을 사진의 특성으로 고정화시켜 다음 날 확인했을 때의 감흥은 큽니다.

△선생님이 생각하시는 사진의 ‘생명력’은 무엇인가요.
- 사실성이겠죠. 실제로 63빌딩에서 뛰어내리는 그림은 사람들에게 큰 영향력을 주지 못하지만, 5층에서 뛰어내리는 사람을 사진으로 담았을 때 그것을 보는 사람들에게는 큰 충격을 줍니다. 요즘은 이를 이용해 사진을 변형, 응용하는 분야가 발달하고 있지만, 포토 저널리즘의 입장에서 제가 느끼는 것은 사실성이 가장 중요하다는 겁니다.

△새로운 사진집을 준비하신다고 들었습니다.
- 『대통령이 뭐길래』라는 사진집을 준비중입니다. 6년 동안 청와대 출입 기자로 활동하던 시절, 김영삼 前대통령, 김대중 대통령과 30개국 외국 정상들을 취재했습니다. 그밖에 윤보선, 최규하, 전두환, 노태우 前대통령은 청와대 밖에서 취재할 수 있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사진가의 눈으로 직접 본 권력의 무상함, 대통령의 고뇌를 사진집으로 엮고 있습니다.  단순히 대통령을 비아냥대거나 비판하기보다는 애정을 가지고 충고한다는 마음으로 만들었죠. 특히 『대통령이 뭐길래』 사진 중 김대중 대통령이 희망을 가지고 청와대로 들어오는 모습과 김영삼 前대통령이 쓸쓸히 청와대를 떠나는 것을 대비시킨 부분은 권력의 무상함을 직접 확인하게 해 줍니다.

△사진을 지망하는 젊은이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 사진은 진실입니다. 사진처럼 진실하고 꾸밈없이, 솔직하게 살자는 게 제 좌우명이에요. 그 좌우명을 말하고 싶네요. 물론 그 다음에는 사회에 쓸모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겠죠.

사회에 대한 관심 또한 잃지 않았으면 합니다. 특히 사진을 하는 사람한테 적용되는 필수 조건은 관심입니다. 사진은 누구나 찍을 수 있지요. 그러나 수준 있는 작품 사진을 찍기 위해서는 관심을 가져야 하고, 찍은 사진들을 단순히 모으는 데 그쳐서는 안됩니다. 즉, 정리하는 능력을 길러 사진이 메시지를 발산하게 할 수 있어야겠죠.
 
그는 1980년의 혼란한 광주의 한복판에 뛰어들어 그 당시는 보도되지 못했어도 ‘역사의 한순간’을 담아 남기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랬기에 50이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그의 사진 속에 생생한 현장감이 꿈틀거리고 있나 보다.  
 
사진 작가 김녕만은...
 
1949년 전라북도 고창에서 출생해 1978년 중앙대 사진학과를 졸업했다. 같은 해 동아일보사에 입사해, 23년 간 재직하면서 판문점 출입 기자, 청와대 출입 기자를 거쳤으며, 광주민주항쟁, LA 올림픽, 평양 남북 고위급 회담 등을 취재했다.
1985년 현대사진문화상 창작부문, 2001년 올해의 사진기자상 등을 수상했으며, 1979년 사진 동요집 『노래가 하나 가득』을 시작으로 총 7권의 사진집을 출간했다. 현재는 월간 『사진예술』의 발행인이다.(옆 사진은 자신의 사진을 골라 주는 김녕만 씨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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