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철(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의 마음에 우주를 심은 건 어릴 적 본 사진 한 장이었다. “바이킹호가 화성에서 찍은 흑백사진이었죠. 난생처음 봤는데도, 왠지 낯설지 않더라고요.” 야릇한 기시감은 소년을 우주로 잡아당겼다. 이상하리만치 강한 중력이었다. “그때부터 쭉 우주에 관심을 가졌어요. 왜 내가 여기에서 온 것 같은 기분이 들까 하면서요.” 수십 년이 지난 지금, 그는 별의 진화를 연구하는 천문학자다. 그중에서도 항성이 수명을 다해 폭발하는 단계인 초신성을 관찰해 항성의 진화 과정을 추적한다. “초신성의 종류는 굉장히 다양해요
오랜만에 서점을 찾았다. 스마트폰에 점령당한 일상에 ‘디지털 디톡스’가 필요해서다. 우선 베스트셀러 코너로 직행해 한 권, 두 권 뒤적여 보지만 선뜻 고르지 못한다. 아무 책이나 골랐다간 읽다가 중간에 포기해버리는 낭패를 또 볼지도 모른다. 스테디셀러 코너와 신간 코너까지 기웃거린 끝에 집어 든 건 유명 작가의 얼굴이 박힌 신작. 좋다고 하는 데는 이유가 있겠지 싶다. 계산을 마치고 지하철에 오르자, 생각 하나가 스친다. ‘이럴 거면 온라인으로 살 걸 그랬나? 그럼 할인도 되는데.’ 둘 중 한 사람만 책을 읽는 시대다. 통계청이 발
사망자 절반이 무직자·하층노동자 주목 못 받고 역사에도 외면당해 1960년 4월 26일,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소식이 전파를 타기까지 전국의 거리는 최루탄 연기로 자욱했다. 서울을 비롯해 마산, 대구, 광주 등 곳곳에서 정부를 규탄하는 시위가 학생들을 주축으로 터져 나왔다. 시위로 이승만 정권의 12년 장기집권이 끝났지만,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총 186명의 사망자 중에는 77명의 학생이, 94명의 기층민이 있었다. 절반이 넘는 사망자가 무직자와 하층노동자였지만, 그들의 목소리는 언론의 외면과 전근대적 사고 속에서 주목받지 못했
‘자발성’ 인정되면 피해자 아냐 처벌받을까 신고하기 두려워해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이하 아청법)의 ‘대상아동·청소년 조항’을 둘러싸고 논란이 일고 있다. 아청법은 아동·청소년을 성범죄로부터 보호하고 이들이 건강한 사회구성원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한다는 목적 아래 2000년 제정됐다. 현행 아청법상 성매매에 유입된 아동·청소년은 ‘자발성’ 유무를 기준으로 ‘피해아동·청소년’과 ‘대상아동·청소년’으로 분류된다. 자발성이 없었다고 판단된 피해아동·청소년에게는 여러 법적 보호와 지원이 따르지만, 성매매에 가담했다고 판단된 대상
꽃이 화사한 건 꽃가루 묻힐 새와 곤충을 유인하기 위해서라지만, 활짝 핀 개나리 옆에 멈춰 서기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새 학기의 설렘을 느끼기엔 마음 무거운 나날들 속에서도 봄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서울 맨 아랫자락, 양재꽃시장엔 새 계절이 이미 가득했다. 이른 아침 꽃시장은 고요하다. 생화도매시장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꽃을 사람 키만큼 높이 쌓은 점포들이 새벽부터 물건 떼러 온 이들을 맞느라 분주하다. “어떤 거 찾아? 요새는 프리지아가 제일 잘 나가는데!” ‘한아름원예’ 김선자(여·75) 사장이 샛노란 꽃 더미를 가리키며 말했다
“넌 참 좋은 사람 같아.” 빈 병이 적잖이 쌓인 늦은 밤, 꽤 오래 알고 지낸 친구가 말했다. 고민이 있다기에 열심히 들어준 모습이 퍽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낯간지러운 말은 싫어하는 녀석인데, 표정이 사뭇 진지한 걸 보니 취기가 많이 오른 것 같았다. “칭찬을 해줘도 왜 반응이 없어?” 한참을 별 대답 없이 쳐다보고 있으니 녀석이 다그쳤다. 평소라면 괜한 소리 하지 말라며 받아쳤을 말인데, 진지해진 게 녀석 혼자만은 아니었다. “별로 좋은 사람 아냐. 가자.” 계산서를 집고 먼저 일어섰다. 가만히 앉아 있기엔 속이 울렁거렸다.
A, T, G, C. 인간의 모든 유전정보는 이 네 종류 염기가 30억에 달하도록 줄지어 이룬 DNA 속에 저장돼 있다. 이 염기들의 순서는 나와 타인을 다르게 만드는 근원인 동시에 치명적인 질환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30억 서열 중 단 한 곳에 T 대신 C가 들어섰다는 이유만으로 누군가는 지독한 질병을 앓는다. 유전자가위는 질병 유전자를 잘라내 염기서열 자체를 바꾼다. 치료용 DNA를 세포에 주입하던 기존 유전자치료를 넘어 더 근본적인 교정을 목표로 하는 것이다. ‘크리스퍼 유전자가위(CRISPR-Cas9)’를 앞세운 유전자가위
전국을 삼켜버린 코로나19가 바이러스의 무서움을 실감케 하는 요즘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바이러스를 질병 치료에 활용하기도 한다. 바이러스의 높은 침투력을 이용해 치료 유전자를 세포에 주입하는 방식의 유전자치료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처럼, 바이러스 연구가 질병 치료의 새로운 장을 열어줄지 주목된다. 암세포 골라잡는 항암바이러스 유전자를 실어 세포에 전달하는 운반체를 ‘벡터(vector)’라고 한다. 벡터로는 주로 바이러스가 이용되는데 이는 숙주세포에 자신의 유전물질을 집어넣는 바이러스의 일반적 특성을 활용한 것이다. 치료 유
송환법 반대시위가 한창이던 작년 홍콩, 익숙한 노랫말이 이국땅 거리에 퍼졌다.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임을 위한 행진곡’은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희생자에게 헌정된 대표적 민중가요다. ‘운동권가요’ 혹은 ‘저항가요’라는 별칭에서 엿볼 수 있듯 민중가요는 부당한 현실을 향한 비판의식을 담았다. 거리의 화염병이 촛불로 바뀌는 세월 동안, 사람들이 모인 곳엔 늘 민중의 노래가 있었다. 청춘 바쳐 부른 노래, 민중가요 군사정권의 검열이 심하던 시절, 민중가요는 공식적인 경로로 유통될 수 없었다. ‘전진가’로도 알려진 노래
“그냥 잠들었다가 못 일어났으면 좋겠어.” 말끝이 조금 떨렸다. 죽고 싶단 소리가 버릇인 녀석이지만, 여느 때랑은 다른 억양이었다. 술이 단번에 깨는 듯했다. “….” 적당한 대꾸는 떠오르지 않았다. 허투루 받아치기엔 던져진 공이 무거웠다. 긴 정적이었다. “미안. 그냥 해본 소리야.” 녀석이 웃으며 말했다. 웃음이 퍽 싱거웠다. 껍데기만 남은 일상의 공허함. 벗어날 수 없는 현실이 주는 무력감. 눈을 뜨고 마주한 천장이, 삼켜야 하는 밥알이 넌더리나는 순간들. 삶은 때로 지독하다. 겨우 살아낸 하루 끝에서 내일이 줄 고통과 행복을
제52대 서울총학생회장단 선거 기호 1번 ‘RE:플라이’ 선거운동본부(본부장=이승현, 리플라이)는 “총학생회가 학생들의 신뢰를 잃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잃어버린 신뢰를 되찾고 총학생회의 책임을 다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정후보 안병국(보과대 보건환경16) 씨와 부후보 김지윤(문과대 한문17) 씨를 만나 이야기 나눴다. - 출마 계기는 “학우들이 학생회의 효능감을 느끼게 해주고 싶다. 2016년도 본관 점거 당시, 학생들은 총학생회가 자신들의 목소리를 대변 할 수 있다는 걸 확인했다. 다만, 신뢰를 회복하지 못한 학생회는 아무것도
병원 가는 건 여전히 무서운 일이다. 서늘한 공기, 희미한 약품 냄새, 그리고 흰 가운의 사람들. ‘운동도 열심히 하고 술도 좀 적게 마실걸….’ 흰 가운을 걸친 그들 앞에 서면 어느새 위축되어 있다. 여기 화면 속 나란히 앉은 세 남자가 있다. 사소한 일상 대화부터 재치있는 농담까지, 이들이 보여주는 남다른 ‘케미’에 손가락은 자꾸 다음 영상을 향한다. 한 가지 특징이 있다면, 이들 모두 의사란 점이다. ‘친구 같은 의사’를 외치며 가운을 벗은 세 친구. 유튜브 채널 ‘닥터프렌즈’다. 헬프(닥터프렌즈 구독자 애칭)들의 정신 건강을
국경 끝 산골까지 넘어가 별을 본다. 수 광년 떨어진 곳에서 내려오는 빛을 렌즈에 받는다. 천체관측동아리 KUAAA다. 손가락 한두 마디와 발끝에 체중을 싣는다. 벽을 타고 서서히 위로 옆으로 몸을 옮긴다. 실내 클라이밍동아리 올클이다. 흑인음악동아리 TERRA는 직접 힙합 리듬을 짜고 거기에 노래를 입힌다. 무대에서 노는 데 선수들이다. 동아리는 대학 생활에 상쾌한 호흡을 불어 넣는다. 청춘의 절반은 동아리에 있다. 이런 비유를 현실로 만들어 줄 동아리 세 곳을 선정해 취재했다. 흔쾌히 취재 요청에 응해준 세 동아리 KUAAA,
“ 개골…개골…”, “귀뚜르르…뚜르르…” 여름철 개구리 소리와 가을의 귀뚜라미 소리. 우리에게는 그저 듣기 좋은 계절의 순간일 뿐이지만, 정작 소리 내는 동물에게는 애절한 구애의 신호다. 동물의 소리가 지닌 뜻을 알아내기 위해 산과 들을 누비는 이가 있다. ‘자연덕후’라 불리는, 행동생태학자 장이권 교수다. - 교수님의 연구 분야에 대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행동은 나와 주변 환경을 연결합니다. 환경에는 물리적 환경도 있지만, 주변 친구들, 가족들도 모두 환경이라 할 수 있어요. 우리는 행동을 통해 나와 주변 환경의 관계를 바꿉니다.
10월 18일부터 26일까지 ‘2019 고려대학교 홈커밍 주간’ 행사가 열렸다. ‘KU 83하모니 제2회 정기연주회’와 79학번과 89학번의 ‘모교방문축제’를 비롯한 여러 프로그램이 학교 곳곳에서 진행됐다. 특히 79학번과 89학번 모교방문축제에는 각각 500명, 800명가량의 교우가 참석해 모교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10월 19일 오후 5시, 83학번 동기들로 구성된 합창단 ‘KU83 하모니(단장=신명철)’가 인촌기념관에서 제2회 정기연주회를 선보였다. ‘눈’, ‘못 잊어’ 등의 가곡을 포함한 다양한 곡들이 83학번 교우들의
듣는 순간 어느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곡이 있다. 그리운 냄새를 맡은 것처럼. 미국의 재즈 가수 노라 존스(Norah Jones)의 1집 에 수록된 ‘Shoot the moon(Jesse Harris 작사·작곡)’이 내겐 그렇다. 일은 서툴고 선임은 무섭던 군 막내 시절이었다. 이런 말 하기 뭣하지만 ‘나 때는’ 핸드폰도, MP3도 쓸 수 없었다. ‘사지방’이 있긴 했지만, 막내에겐 그저 가시방석. 뒤통수가 따가워 견딜 수 없었다. 느껴지는 시선을 애써 모른 체하려 해도 결말은 언제나 같았다. “김
개천절이던 3일 오후 6시 30분, ‘조국 장관 임명 규탄 대학생 연합 촛불집회’가 대학로 마로니에공원에서 열렸다. 참가자들은 ‘조로남불 그만하고 자진해서 사퇴하라’, ‘학생들이 거부한다 조국위한 조국사퇴’ 등의 구호를 외치며 조국 법무부 장관의 사퇴를 요구했다. 행사를 주최한 전국대학생연합 측은 이날 5000명 이상의 인파가 모였다고 전했다. 집행부원들이 일제히 깃발을 들어 보인 깃발식에서는 고려대 깃발이 흔들리기도 했다. 여러 대학이 연합해 조국 장관 사퇴를 요구한 집회는 이번이 처음이다. 집회를 기획한 전국대학생연합 측은 “위
한국 최초의 경영학 연구기관이 본교에 있다. 바로 창립 60년을 넘어선 기업경영연구원(원장=배종석 교수, 기연)이다. 산업계와 기업경영의 주도적 역할을 해온 기연은 최근 새로운 도전에 나서고 있다. 더는 지식이 대학의 전유물이 아니며, 산학협동의 패러다임이 질적인 측면에서 변화돼야 한다는 믿음에서다. 배종석 기업경영연구원장은 “이러한 사회적 맥락에서 기연은 두 가지 역할에 더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그는 첫째로 “부분적인 것을 통합하여 현상을 평가·해석할 줄 아는 세계관과 관점을 제공하는 역할”을 짚었고, 둘째로는 “인문학
2019년 2학기 ‘진리·정의·자유를 향한 인문학적 성찰’ 첫 강연이 5일 오후 3시 30분 교양관 602호에서 열렸다. 연세대 문정인(연세대 정치외교학과) 명예특임교수와 본교 최장집(정경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가 강단에 섰다. 양교가 자랑하는 명사들의 강연을 통해 인생에 도움이 되는 통찰을 얻기 바란다는 정진택 총장의 축사와 함께 시작된 강연에는 400여 명의 학생이 참석했다. 평화를 위해서는 ‘신뢰’가 바탕 돼야 해 문정인 교수는 ‘한반도 평화론’을 주제로 강연을 진행했다. 먼저 문 교수는 평창올림픽 개최와 더불어 북한과의 교
본교가 운영하는 낙산·대천수련관은 20년이 넘는 기간 동안 꾸준히 방문객을 맞이해왔다. 하지만 오래된 시설인데도 적절한 시설관리가 이뤄지지 않아 이용하는 학생들이 많은 불편을 겪고 있다. MT·합숙훈련 때 즐겨 찾는 수련관 한 사람당 2000원(학생 1박 기준)이라는 저렴한 이용료와 가까운 곳에 해수욕장이 있다는 장점 때문에 여러 교내 학생단체가 여름 MT 장소로 낙산·대천수련관을 찾는다. 넓은 객실에서는 합주도 할 수 있어서 밴드동아리, 합창단, 관악부 등의 합숙훈련 장소가 되기도 한다. 관악부원 김모 씨는 “이용료가 저렴하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