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환경 변화의 핵심이 될 극지연구에 전 세계가 열을 올리고 있다. 미국은 남극에 상설기지 3곳을, 일본은 상설기지 1곳과 하계기지 3곳을 운영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극지연구 선진국 반열에 뛰어들기 위해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난 6일(금) 인천항에 입항한 ‘아라온 호’는 우리나라 극지연구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왜 극지인가
극지는 미래 자원의 보고다. 극지 해양생태계가 포함한 생물자원의 양은 전 세계 수산물 생산량을 능가한다. 석유와 가스 같은 지하자원도 막대하게 묻혀있다. 북극해저엔 전 세계 석유 부존량의 20% 정도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 2003년엔 우리나라가 300년간 사용할 수 있는 대량의 가스 하이드레이트가 발견되기도 했다.

극지는 지구환경 변화의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 극지의 눈과 얼음은 태양에너지의 70%를 반사한다. 이것이 녹으면 지표에 흡수되는 태양에너지 양이 급격히 늘어 이상 기후가 초래된다. 또한 극지는 다른 지역에 비해 온난화 정도가 3~4배 정도 크게 나타나 기후 변화를 예측하는데 도움이 된다. 한국해양연구원 극지기후센터 윤호일 책임연구원은 “극지에 간직된 수천, 수만 년 전의 기후변화 기록을 찾아내 빙하기나 온난화가 어떤 요인에 의해 일어났는지 연구한다”며 “극지연구는 현 인류가 풀어야 할 숙제인 급격한 온난화에 대처하는데 필요한 정보를 제공해준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극지연구가 지나온 길
우리나라 극지연구는 지난 1988년 남극 세종과학기지가 개소하며 시작됐다. 기지가 건설된 이후 우리나라 남극연구 분야와 지역은 계속 확대돼 왔다. 2002년엔 북극 다산기지를 세웠다. 한국해양연구원 부설 극지연구소의 남상헌 극지연구실장은 “북극기지가 만들어지기 이전엔 간헐적으로 북극을 연구했지만 기지가 생긴 후 남·북극을 아우르는 진정한 극지연구가 가능해졌다”고 말했다.
남극 세종기지엔 매년 17명 안팎의 극지연구소 연구원으로 구성된 월동대가 파견된다. 연구원은 1년간 기지에 머물며 △지구물리학 △생화학 △천문우주과학 등을 연구한다. 기지의 전자통신이나 기계설비, 발전을 맡는 대원도 있다.

겨울에 비해 기상환경이 나아지는 여름철(12월~1월)엔 집중연구팀인 하계대가 파견된다. 하계대는 연구 목적에 따라 짧게는 보름, 길게는 두 달 동안 연구에 참여한다. 극지연구소뿐만 아니라 대학 및 다른 연구기관도 동참해 투입인원은 100명을 넘어선다. 세종기지 건설 초 파견됐던 1차 연구팀이 하계대 9명, 월동대 12명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큰 발전이다.

우리나라는 극지의 기후변화 및 고(古)기후를 중점적으로 연구한다. 극지연구소 정책개발실 서현교 선임행정원은 “과거 기후를 복원하고 현재 기후를 모니터링해 미래 기후를 예측한다”며 “쇄빙연구선이 만들어졌으니 해양연구에도 박차를 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극지연구소는 제2남극대륙기지를 건설할 계획이다. 세종과학기지는 남극대륙에서 조금 떨어진 섬에 위치해있어 극지연구에 한계가 있었다. 현재 남극대륙 내 후보지를 물색하고 있지만 접근하기가 쉽지 않아 현장조사는 하지 못한 상태다. 다음달 쇄빙연구선 운항이 시작되면 내륙기지 후보지 정밀조사팀을 파견해 후보지 정밀조사를 시행할 예정이다.

극지연구의 중심, 쇄빙연구선 ‘아라온 호’
지난 2003년 남극에서 전재규 대원이 사고로 사망했다. 쇄빙선이 없어 고무보트를 타고 이동하던 세종1팀이 갑 작스런 기상악화로 조난당했고, 이 조난팀을 구하러 간 전 대원이 구조과정에서 숨진 것이다.

아라온 호의 전경    (제공=극지연구소)
대원의 죽음 이후 쇄빙선이 필요하다는 국민여론이 높아졌고, 이를 계기로 지난 2004년 쇄빙선 설계가 시작됐다. 쇄빙선은 남극대륙 주변이나 북빙양과 같은 결빙해역을 항해할 수 있도록 얼음을 깨는 기능을 갖춘 선박이다. 남상헌 실장은 “극지연구는 기초과학을 중심으로 하기 때문에 성과가 바로 눈에 보이지 않아 정부의 지원이 미흡했다”며 “전 대원의 희생을 계기로 정부와 국민이 남극기지의 열악한 연구환경을 인식했다”고 말했다. 사고 이후 바로 설계에 착수한 ‘아라온 호’는 6년에 걸친 건조 끝에 완성됐다.

쇄빙선이 만들어지기 전 우리나라는 남극에 기지를 둔 20개국 가운데 쇄빙선이 없는 두 나라 중 하나였다. 미국은 쇄빙선 3척을 보유하고 있으며 해군 또는 해양경찰로부터 다수의 군용선과 장비를 지원받고 있다. 일본은 쇄빙선 2척, 해양조사선 3척, 헬기 5대와 수송기 2대를 보유하고 있다. 쇄빙선을 보유하면 교통편이 해결돼 기지에 보급·지원이 수월해진다. 또한 외국 쇄빙선을 빌리는데 드는 막대한 비용도 절약할 수 있다.

아라온 호는 미국, 영국, 일본, 중국이 보유하고 있는 2만톤의 쇄빙선에 비하면 규모가 작은 7000톤의 중급 선박이다. 하지만 연구기능은 대폭 강화해 연구기능만 비교하면 현재 운영되는 쇄빙선 중 1, 2위를 다툰다. 아라온 호엔 다각도로 음파를 쏘아 바다 밑 영상을 3차원으로 재생하는 ‘다중빔측심계’를 비롯해 100여종의 첨단 실험 장비가 장착돼 있다. 아라온 호만 유일하게 갖춘 자동 위치제어 시스템도 있다. 쇄빙선이 바다에서 움직이지 않는 채로 연구해야 할 때, 바람이나 해류에 흔들리지 않도록 위치를 제어해주는 시스템이다. 아라온 호는 위성으로부터 GPS를 수신하고 다른 시스템과 연계해 위치를 제어한다.

전문가들은 아라온 호가 한국을 극지연구의 주변국에서 중심국으로 끌어올 것이라 기대한다. 남 실장은 “쇄빙선 진수 소식이 알려지면서 미국·영국 같은 선진국이 공동연구를 제안했다”며 “아라온 호는 한국 극지연구의 큰 전환점”이라고 말했다. 현재 아라온 호는 동해에서 종합시험항해를 하고 있으며 다음달 18일 남극으로 출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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