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본교 시네마트랩에서 퀴어 다큐멘터리 영화 <종로의 기적>이 상영됐다. <종로의 기적>은 같은 성(性)을 사랑한다는 이유로 조금은 불편하고 고단하지만 남들처럼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네 남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날 영화 상영 뒤에는 이혁상 감독과 <종로의 기적>에 출연한 영화감독 소준문 씨와 인권활동가 장병권 씨가 관객과 대화하는 시간을 가졌다. 관객과 세 남자의 진지하고 유쾌한 대화를 지면으로 옮겼다.

“어떤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고, 이 영화를 통해 무엇을 얻길 바랐나요?”
혁상 | 게이의 삶에 대해 잘 모르는 이성애자 관객이 영화를 보고 이해의 폭을 넓힌다면 좋겠어요. ‘우리와 다를 바가 없구나’하는 일상적인 것에서 오히려 충격을 받은 분들이 많더군요. 그리고 자신의 정체성 때문에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당신과 같은 사람들이 여기 잘 살고 있습니다’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포스터는 밝고 명랑한 분위기인데, 영화는 밝은 부분보단 어두운 부분이 더 많았어요”
혁상 | 포스터는 밝아도, 영화 속엔 어두운 부분이 당연히 있지요. ‘게이는 즐거워야 해’ 그런 생각으로 만든 게 아니에요. 게이가 사는 곳에도 희로애락이 있고, 그걸 다 담으려고 노력했어요. 우울한 부분도 저희의 일부분이잖아요.

“주인공 중 한 명인 최영수 씨가 갑자기 돌아가셔서 놀랐는데요. (최영수 씨는 뇌수막염으로 사망했다.) 장례식장 모습도 담았는데 특별한 의미가 있나요?”
혁상 | 죽음에 대해 어떻게 표현할 것인지 오랫동안 토론했어요. 보통 커밍아웃을 하지 않고 죽으면, 그 장례식장은 굉장히 쓸쓸해요. 항상 숨겨진 존재이던 친구들은 그의 가족이 있는 장례식장을 가기 어렵거든요. 심지어 자신의 애인이었더라도 어디에 묻혔는지 모르는 경우도 있어요. 영수의 장례식은 그렇지 않아서 행복했던 장례식이었고, 그런 부분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소준문 감독은 영화 속에서 게이 감독이라는 것 때문에 큰 심적 고통을 겪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럼에도 계속 퀴어 영화를 고집하는 이유가 있나요?”
준문 | 영화에도 나오지만 군대에서 커밍아웃을 했을 때 폭력적인 상황(소준문 씨는 1년간 군 정신병원에 강제로 입원해야 했다.)을 겪었고 삶이 순탄치 않았어요. 예전엔 커밍아웃을 할 때 일방적으로 무조건적인 이해를 구했던 것 같아요. 그런 무책임한 커밍아웃을 할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소통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화를 보고 머리로는 동성애를 이해하겠는데 여전히 가슴으로는 잘 이해가 안 돼요”
병권 | 동성애를 이해하기 싫으면 이해하지 않을 수도 있어요. 거기까지는 그럴 수 있어요. 하지만 그 이상이 되면 문제가 될 수 있죠. 부모가 아이가 동성애자라는 걸 받아들이지 못해서 아이를 데리고 정신병원을 전전하는 일도 있어요. 정신질환이 아니니까 약도 없는데요. 그런 상황에서 최악의 선택을 하는 경우도 있어요.

혁상 | 이해 안 되면 표현하세요. 요즘엔 진보적인 척 하려고 ‘다 이해해’, 근데 뒤에서는 ‘내 아들이 이러면 죽여 버릴 거야’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요. 하지만 이해가 안 되는 것을 얘기하면 오히려 그게 대화를 이끌어내는 단초가 될 것 같습니다. 이 영화가 그런 분들을 위해 만든 거거든요. 처음부터 완벽히 이해하려고 하기보단 같이 대화하면서 조금씩 변화하면 좋겠어요. 저희도 저희 스스로를 이해할 수 없을 때도 있거든요(웃음).

◆다큐멘터리 <종로의 기적> 줄거리 = 남자를 사랑하는 남자들이 모이는 그곳, 종로. 종로를 무대로 평범하지만 사뭇 다른 네 남자의 모습을 담은 <종로의 기적>. 이성애자 스태프, 배우들과 갈등하는 게이 감독 준문의 위축된 모습과 여러 인권 집회에서 동성애자의 인권을 위해 활발하게 뛰어다니는 병권, 오랫동안 자신을 찾아 헤매다 늦게나마 자신과 같은 친구들 속에서 인생의 황금기를 맞이한 요리사 영수, 사랑만 있다면 애인의 불치병도 문제가 아니라고 말하는 샐러리맨 욜의 고단하고, 그래서 행복한 일상에 대한 이야기다.



 

저작권자 © 고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