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U레이터’는 전시회 속 콘텐츠의 이야기를 전문가의 지식으로 재조명하는 코너입니다.


 

집단 향유로 전승된 여성문학

일상사와 미시사 주목해

현대에도 여전히 교훈 주는 기록

 

  내방가사는 여성들의 주체적인 기록을 통해 역사 속에 가려진 그들의 일상을 보여준다. 이러한 내방가사는 필사와 낭송을 통해 당대 여성들 간 공감대를 형성하며 소통과 연대의 기록으로 확장됐다. 최은숙(경북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내방가사는 각 시대별 여성들이 겪었던 고초와 애절한 감정을 진솔하게 보여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은숙 교수를 만나 내방가사가 지니는 의의에 대해 물었다.

 

최은숙 교수는 “내방가사는 현대인들에게 진정한 삶의 의미와 행복을 가르쳐준다”고 말했다.

 

  - 내방가사의 시대적 성격은

  “내방가사는 여성들이 자신들의 삶과 현실을 한글을 통해 표현한 문학 양식입니다. 남성 중심 사회에서 여성이 창작과 향유의 주체가 됐고, 동아시아의 보편적인 문자였던 한자가 아닌 한글을 사용했습니다. 중국과 일본에도 여성 문학 양식이 존재하지만, 특별한 재능을 지닌 개인에 의한 문학이 중심입니다. 내방가사와 같이 평범한 여성들이 함께 향유하고 집단적으로 전승한 문학은 매우 드뭅니다. 또한, 중세적 질서 속에서 언문이라 폄하되던 한글은 내방가사를 통해 명실상부한 민족어로서의 위상을 갖게 됐습니다. 여성 주체의 기록과 민족어의 사용은 중세에서 근대로의 전환을 보여주는 대표적 특징입니다. 즉 내방가사는 근대전환기적 성격을 지닌 문학이죠.”

 

  - 내방가사는 ‘필사’와 ‘낭송’으로 전승됐는데

  “내방가사는 ‘필사’와 ‘낭송’이라는 고유한 전승 방식을 지닙니다. 하나의 작품을 여러 사람이 필사하는 과정을 반복적으로 거치죠. 내방가사 작품 하나에 조금씩 다른 부분이 있는 여러 이본이 있는 이유도 ‘필사’라는 과정을 거쳤기 때문이에요. 이야기의 큰 틀은 비슷하지만, 이본들은 저마다의 개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여성들은 필사를 통해 자신들의 생각을 공유하고 소통하는 문학 활동을 이뤄냈어요.

  작품을 공개적인 자리에서 낭송하기도 했는데, 이 낭송은 내방가사의 향유가 개인적 차원을 넘어 여러 사람이 함께 참여하는 과정이 되도록 합니다. 낭송은 작품의 원형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시적 자아의 목소리를 가장 정직하게 전달할 수 있는 문학 향유 방법입니다. 낭송의 과정을 통해 자연스럽게 소통과 공감의 작용이 적극적으로 일어나요. 즉 내방가사는 소통하는 글쓰기와 말하기 전승 방식을 통해 개인의 기억이 다시 집단의 기록으로 바뀐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 근대 시기 내방가사의 가치는

  “19세기와 20세기는 역사적·사회적으로 매우 큰 변화가 있었던 시기입니다. 한국은 이 시기 국권 강탈과 근대로의 전환이라는 이중고를 겪었습니다. 당시 여성의 목소리를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자료는 매우 적습니다. 내방가사는 이러한 상황에서 여성들이 자신들의 처지와 현실 인식을 직접 말하고 있습니다. 여성들은 권력 구도에서 소외돼 시대 담론을 주도하는 위치에 있지는 않았지만, 국가의 위기와 사회적 변혁기에 그들의 사회적 인식을 표현하는 데에 절대 소홀하지 않았어요. 여성들은 내방가사를 통해 자신을 둘러싼 역사적 사명을 회피하지 않고 적극적인 기록자로서 기능했습니다. 그렇기에 이 시기 내방가사는 한국의 근현대사를 그대로 증언하는 역사적 증언물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내방가사는 기존의 역사 기록에서 주목되지 않았던 일상사나 미시사를 담고 있는 기록이라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신문, 잡지 등의 근대 매체는 주로 남성들에 의해 기록돼 그들의 시각을 담은 기록입니다. 이에 반해 내방가사는 여성들의 시각과 인식을 그대로 담고 있어요.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의 역사 또한 남성 독립운동가의 서사를 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때 여성들은 독립운동 가담을 위해 만주로 망명한 후 그곳에서의 고단한 생활을 담아 ‘만주망명가사’를 창작했습니다. ‘만주망명가사’는 내조하면서 가족을 책임졌던 아내와 며느리의 애환을 생생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결국 내방가사는 역사에 기록되지 않았던 여성들의 중요한 대안 기록입니다.”

 

  - 내방가사가 주는 교훈이 있다면

  “내방가사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교훈을 줍니다. 대표적으로 ‘덴동어미화전가’를 말할 수 있죠. 이 작품은 조선 후기 상품경제가 발달하면서 겪게 되는 서민 여성의 애환을 담고 있는 작품입니다. 작품 속 덴동어미는 물질적, 세속적 욕망을 이루기 위해 계속해서 개가하지만 오히려 고난을 겪어요. 당대 여성에게 개가는 경제적 궁핍을 극복하기 위한 필연적 선택이었습니다. 궁핍을 피하려 했지만 남편의 죽음과 빈곤은 계속해서 덴동어미를 힘들게 했죠. 한편 마지막 장면에서 덴동어미는 모든 고난을 수용하고 마을 여성과 함께 노래를 부릅니다. 삶을 옥죄는 세상의 틀에서 벗어나 스스로 행복을 추구하고자 하는 덴동어미의 의지가 나타나죠. 덴동어미는 개가를 반대하며 세속적 프레임을 완전히 바꿔버립니다. 학계에서는 이를 덴동어미가 달관의 경지에 올랐다고 해석합니다.

  ‘덴동어미화전가’는 ‘세상이 요구하는 기준만을 따라가는 삶은 결코 승리할 수 없다’는 것과 ‘우리는 함께 소통하고 연대해야 비로소 진정한 행복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내방가사 속에 담긴 여성들의 목소리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진정한 삶의 의미와 행복에 이르는 길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글 | 윤혜정 기자 samsara@

사진제공 | 최은숙 경북대 교수·국어국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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