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형식으로 메시지 전달

세계화 열망·갈등 모순 담아

급격한 경제성장 이면 조명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백 투 더 퓨처-한국 현대미술의 동시대성 탐험기’ 전시가 지난 6월부터 시작해 다음해 5월까지 무료로 진행된다. 전시는 1980년대 후반부터 2010년대의 한국 현대미술의 일부를 미술관이 2018년부터 2022년까지 수집한 회화, 영상, 조형 같은 소장품으로 보여준다. 사회와 예술의 관계, 현대미술의 역사를 담은 이번 전시는 한국의 현대미술이 국내외의 변화가 거셌던 당대 사회에서 어떻게 성장했는지 살펴볼 수 있다.

 

  세계화·문화 소통의 시작

  전시장에 들어서자 1988 서울올림픽 당시 주제가인 ‘손에 손잡고’가 리믹스 돼 흘러나온다. 음악이 나오는 4x4 텔레비전 화면에선 올림픽 개막식과 경기 장면이 뒤섞이면서 노이즈 현상과 함께 재생된다. 안정주 작가의 작품 ‘영원한 친구와 손에 손잡고’는 올림픽 당시 세계화를 향한 열망과 고도성장으로 인한 사회적 문제를 드러낸다.

  옆 세션에는 문화적 상호침투의 가능 여부를 묻는 박이소 작가의 작품들이 전시됐다. ‘삼위일체’는 국수가 담긴 그릇을 연한 갈색으로 표현한 그림이다. 커피, 콜라, 간장을 섞은 갈색 용액은 여러 재료가 섞인 상태를 통해 미국 내의 다양한 문화·민족 정체성을 나타낸다. ‘삼위일체’ 옆 간장으로 채워진 원형 아크릴 튜브 안엔 야구방망이를 넣은 ‘무제’가 있다. 야구방망이는 미국을, 간장은 한국을 상징한다. 작품은 이질적으로 섞인 국가 간 완전한 문화적 소통이나 이해의 가능성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박이소 작가의 ‘2010년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 1위~10위’
박이소 작가의 ‘2010년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 1위~10위’

 

박이소 작가의 ‘2010년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 1위~10위’도 눈길을 끈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 1위에서 10위까지를 백색 유토로 엉성하게 만든 작품은 건축에 투영된 인간의 욕망과 허무함을 나타낸다.

 

  현대미술, 영상의 향연

  전시는 영상작품으로 이어진다. 김범 작가의 ‘3개의 세계(에셔에 의한, 청계고가도로 1/13/97 5:00-5:20 a.m.)’는 1997년 1월 13일 새벽의 청계 고가도로 모습을 택시의 백미러로 담는다. 차의 전면 유리창, 백미러, 사이드미러에 비친 풍경을 분절된 화면으로 한데 모아 보여준다. 스쳐 지나가는 차들, 다가오는 차들, 멀어지는 차들을 담아 과거, 현재, 미래를 드러낸다.

 

이용백 작가의 ‘기화되는 것들(포스트 아이엠에프)’
이용백 작가의 ‘기화되는 것들(포스트 아이엠에프)’

 

  사람들은 이용백 작가의 ‘기화되는 것들(포스트 아이엠에프)’ 앞에서 멈춰 서서 스크린 속 영상을 바라본다. 정장을 입고 산소 호흡기를 착용한 남자가 물이 찬 푸른 수영장 안을 걸어간다. 이용백 작가는 1997년 IMF 선언 후 중산층 붕괴 당시 지인의 숨쉬기조차 힘들다는 말에 영감을 받아 작품을 만들었다. 특정 시기를 살던 특정 사람의 모습을 담았지만 누구나 공감할만한 주제를 담아 관객들의 큰 관심을 얻고 있다. ‘기화되는 것들’을 유심히 보던 배수현(여·35) 씨는 “작품 설명과 함께 보니 인상 깊다”며 “영상이 많아 전시 내내 지루하지 않다”고 전했다.

 

유비호 작가의 ‘검은 질주’
유비호 작가의 ‘검은 질주’

 

  2000년대 초반 정보화 시기의 두려움을 담은 작품도 있다. 매트릭스를 연상케 하는 유비호 작가의 ‘검은 질주’ 속 검은 옷을 입은 남자 11명은 하얀 공간 속에서 계속 달린다. 인공지능과 컴퓨터가 발달하는 정보화 시대에서 빅브라더 감시로부터 벗어나려는 몸부림을 담아 당대의 두려움을 나타낸다.

 

  산업화의 이면을 비추다

정재호 작가의 ‘난장이의 공’
정재호 작가의 ‘난장이의 공’

 

  영상작품 관람을 마치자 전시관 한편을 꽉 채우는 거대한 작품이 등장한다. 조세희 소설가의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모티브로 한 정재호 작가의 ‘난장이의 공’이다. 극사실주의적으로 서울 상가를 표현해 멀리서 보면 사진 같지만, 가까이 보면 필선이 돋보인다. 급격한 경제성장 속 빼곡한 상가들, 하늘에 떠 있는 로켓 하나는 고도 성장기에 맞물리는 빛과 그림자를 표현해 생기 없이 우울한 도시의 인상을 선사한다. 양현우(남·25) 씨는 “사진인 줄 알 정도로 정교한데 그림이라 신기하다”고 전했다.

  금혜원 작가의 ‘푸른 영토’ 시리즈는 재개발의 아픔을 드러낸다. 철거 현장에 덮인 파란 방수포는 마치 푸른 영토처럼 보인다. 개발로 인해 상처받는 사람들과 이득을 얻는 사람들, 양면적 공간을 초현실적으로 드러낸 작품이다. 관람객이 직접 화면을 클릭해 영상을 재생하는 웹아트 프로젝트도 있다. 49개 색 면으로 구성된 화면을 누르면 작가가 수집한 고전 영화의 일부 장면이 재생된다. 색감과 고전 영화가 어우러져 현대인들의 심리를 드러낸다.

  전시장 외부로 나오면 마지막 작품인 최정화 작가의 ‘내일의 꽃’이 있다. 형광 페인트가 칠해진 꽃들과 쇳가루로 뒤덮인 꽃들이 줄지어 있다. 마치 생명과 죽음을 묘사하는 작품은 생과 사의 이치를 거스를 수 없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전시를 기획한 국립 현대미술관 김형미 학예연구사는 “이번 전시를 통해 해당 시기의 한국 현대미술을 역사화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김아린 기자 arin@

저작권자 © 고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