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인터넷 영향 받아

“영상은 또 하나의 언어”

IMF·고도 성장기 작품 인기

 

국립현대미술관 김형미 학예연구사

 

  한국 산업화와 세계화를 배경으로 한 전시 ‘백 투 더 퓨처-한국 현대미술의 동시대성 탐험기’는 198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의 현대미술 작품을 제시한다. 당대 한국 현대미술을 역사화하기 위해 전시를 기획한 국립현대미술관 김형미 학예연구사는 “이 시기엔 각 개인이 각자 흐름을 만들었기에 하나로 정의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 전시 주제와 기획 의도는

  “이번 전시는 일종의 소장품 특별 기획전이에요. 소장품을 기반으로 주제를 뽑아낸거죠. 전시 기획 과정에서 지난 5년간 소장품의 전체적 흐름을 살펴봤어요. 국립현대미술관은 시기·장르적으로 다양하게 소장품을 구입하는데, 희한하게 눈에 띄는 방향성이 있었습니다. 19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초 작품들을 눈에 띄게 많이 구입했더라고요. 1990년대 말 2000년대 초엔 한국 현대미술이 갖는 동시대성이 형성됐습니다. 동시대성은 시간적 의미가 아니라 정서적 태도이자 심리적 요구입니다. 동시대 미술은 1950년대나 1960년대에도 있었잖아요. 동시대성은 기존 헤게모니 구조에 대한 문제 제기와 같은 태도나 방향성을 가리키는 개념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이번 전시가 동시대성이 어떻게 형성됐는지, 그 맥락은 무엇인지 살펴보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

 

  - 시대 변환기의 동시대성은

  “1980년대 말 1990년대 초엔 국내·외적으로 어마어마한 시대적 변환이 있었어요. 소련 해체, 베를린 장벽 붕괴 등 시대를 지배했던 이념이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양 이념 간 경쟁에서 자유민주주의가 득세하기 시작하면서 후기 자본주의 논리로 세계가 돌아가기 시작했죠.

  좌우 갈등이 무너지자 모든 게 파편화됐습니다. 모더니즘적인 발상으로 형성한 수직적 구조가 무너지고, 수많은 파편이 생긴 거예요. 하나의 중심은 없지만 모두가 중심이 되는 다원주의가 됐습니다. 세계 구조가 개편되면서 동남아시아, 서유럽, 아프리카 등 모든 세상이 각자의 모더니즘을 갖게 된 거예요. 각자의 중심으로 세상을 살아가겠다는 다원주의가 등장하면서 하나의 원칙이 존재하지 않게 됐죠. 다원주의의 근저에는 후기 자본주의 논리가 있습니다. 세상을 지배하던 정치 자리를 경제가 대체한 거죠. 동시에 물류, 자본, 인적 자원이 세계적으로 늘어났습니다.

  동시에 과학기술의 혁신이 일어났죠. 인터넷으로 세계가 완전히 서로 연결되면서 글로벌리즘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시·공간이 예전엔 완벽하게 분리돼서 순차적으로 지나갔지만 이제 뒤섞이기 시작하는 거죠. 시공간의 개념이 과거와 달라지면서 기존의 관습적인 시선과 태도가 붕괴하는 걸 경험한 게 90년대입니다.”

 

  - 당대 우리나라 미술계는

  “정치·사회·문화적으로 88올림픽, 민주화 등 변화가 일어납니다. 문화적인 부분을 설명하자면, 세계적 차원의 교류가 크게 일어났어요. 사립 미술관과 화랑이 다수 만들어지고, 한국예술종합학교 같은 미술대학교가 만들어지기도 합니다. 광주 비엔날레가 생기고 큐레이터라는 인적 자원도 들어왔죠. 즉 우리 미술계가 해외 미술계와 발걸음을 나란히 할 수 있는 인프라가 90년대에 형성됐습니다. 작가들의 태도가 많이 변한 시기이기도 합니다. 당시 한국적 모더니즘인 단색화와 민중미술이 이데올로기 논쟁을 벌였는데, 논쟁 이후 기존 가치관이나 전통적 장르 정의에서 벗어나는 활동이 많아졌습니다. 대표적인 작가로는 이불, 고낙범, 최정화가 있습니다.

  특히 90년대는 우리나라도 세계화 선언을 하고, 문화적 상호작용이 일어난 시기입니다. 개인이 목소리를 내도 문제가 없다는 자신감을 얻은 첫 세대죠. 홈페이지를 자기가 만들 수 있고, 작가들이 스튜디오를 하나씩 가질 수 있는 장이 마련된 겁니다. 과거엔 어떤 선생님이나 이념, 분파를 잘 따라야 미술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는데, 이제 개인이 하고 싶은 걸 하게 되니 작업도 굉장히 다양해졌어요. 각 개인이 각자 흐름을 만들어 나가기 때문에 이 시기를 하나로 정의할 수는 없습니다.”

 

  - 전시에 영상 미술의 비중이 높다

  “1세대 작가인 최정화, 공성우, 박이소, 이용백의 작업이 전시 앞쪽에 포진돼 있고, 후반부엔 싱글 채널 비디오 1세대라고 할 수 있는 유비호, 김세진, 함양아, 박화영의 작업이 전시돼 있습니다. 당시 영상 장비를 이용해 새로운 메커니즘을 쓰는 과학기술이 혁신을 일으켰어요. 당대 변화를 흡수해 작품 내용이나 구성 재료로 사용하는 일이 많아졌죠. 이전과 다른 차원의 작업을 하는 작가들이 세대적 단층을 형성한 게 이 시기입니다. 웹아트, 영상물 등의 영상 미술이 등장한 거죠.

  비디오는 비디오만의 언어 어휘가 있잖아요. 영상은 이제 또 하나의 언어인 것 같아요. 우리가 쓰는 말처럼 영상 매체도 하나의 언어가 된 거죠. 마치 캔버스 천에 물감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처럼 영상이라는 매체를 통해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한 하나의 도구가 된 거죠. 웬만한 작가들에게 영상 매체 이용은 기본적으로 정착을 해버린 수준이에요. 미켈란젤로 시대에 무슨 프레스코화가 유명해서 모두가 다 프레스코화를 그린 것처럼 지금은 영상이 중요한 하나의 언어가 된 겁니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한국 현대미술이나 동시대 미술이 궁금하다면 ‘백 투 더 퓨처’를 꼭 보셨으면 합니다. 언제가 될진 모르지만 2탄, 3탄도 하고 싶거든요. 좋은 작품들이 많은데 아쉽게 못 나온 작품들도 많습니다. 이 시기의 작업에 더 많은 관심 가져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한국 현대미술의 동시대성이 형성된 맥락을 보여주는 작품뿐만 아니라 그 시점 이후의 작업도 보여준 거거든요. 이번 전시 작가들의 이름을 꼭 기억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글 | 김아린 기자 arin@

사진제공 | 김형미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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