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한 명뿐인 지방 흉부외과

무작정 증원하면 선호과 쏠림만 심화

“의료전달체계부터 복구해야 한다” 

 

지난 2020년 문재인 정부의 공공의대 설립 및 의대 정원 확대 정책에 반대하는 집회가 여의도에서 열렸다.
지난 2020년 문재인 정부의 공공의대 설립 및 의대 정원 확대 정책에 반대하는 집회가 여의도에서 열렸다.

 

  2006년 이래 의과대학 입학 정원은 3058명으로 동결 상태다. 필수·지방 의료 공백이 심각하다는 여론이 일며 정부는 의대 정원 확대에 시동을 걸고 있다. 대한의사협회(의협) 등 의사단체는 문재인 정부 때와 마찬가지로 정원 확대에 반대하고 있다. 의사 수 부족에 대한 추계가 기관마다 다르기에, 개인이 의사 증원에 대한 가치 판단을 하기는 쉽지 않다. 한편 의대생들은 정부 정책이 자신들을 필수·지방 의료로 유인하는데 충분하지 않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병원 돌며 홍보 뛰는 흉부외과 교수

  의대생들은 졸업을 앞둔 본과 4학년 때 의사 국가시험(국시)에 응시하고 합격하면 의사면허를 받는다. 의사면허를 갓 취득한 일반의들은 ‘전문의’가 되기 위해 인턴과 레지던트 과정을 거친다. 내과, 피부과, 소아청소년과 등 전문과목(과 또는 전공)은 인턴 때 각 분야를 순환하며 수련한 후 결정한다. 전문과목이 결정되는 레지던트 채용에선 8월 필기시험 결과와 평소 인턴 성적이 주로 평가된다.

  현재 의대생들은 피부과·안과·성형외과·정형외과·재활의학과·영상의학과 등을 선호한다. 비교적 휴식 시간이 많고 급여가 높으며 대형 수술이 적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김상우(의과대 의학19) 씨는 “해당 과 모두 개원가 급여가 높고 수술이 적어 선호된다”고 말했다. 내과·외과·흉부외과·응급의학과·소아청소년과·산부인과 등 생명에 직결된 의료를 행하는 ‘바이탈(vital)과’는 기피 대상이다. 본교 의학과 18학번인 정모 씨는 “삶의 질, 급여, 의료 행위 난이도에 따라 전공 선호도가 정해진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선호도가 같은 과라면 가급적 수도권 병원에 남으려 했다. 정 씨는 “과 동기 아버지가 대구에서 병원을 운영하는데 그 친구는 대구 병원을 물려받는 대신 서울에 남으려고 한다”고 했다.

  지방 흉부외과에는 찬 바람만 불고 있다. 경상국립대병원 심장혈관흉부외과는 전공의를 1년에 2명 선발한다. 정원이 모두 채워진다면 매년 전공의 8명이 있어야 하지만, 현재 해당 과에는 3년 차 전공의 1명만 있다. 김종덕(경상국립대 심장혈관흉부외과) 교수는 전공의 모집 홍보를 위해 매년 각 대학병원을 돌아다닌다. 하지만 김 교수가 6년 넘게 홍보를 다녀도 전공의는 2~3년에 1명씩 들어온다. 그가 가장 보람을 느끼는 순간은 환자가 회복해서 가족에게 돌아갈 때지만, 흉부외과를 찾는 환자는 심장 질환을 앓고 있다. 대부분의 선호과와 달리 최악의 결과가 사망인 것이다. 김 교수는 “잠을 설치거나 가족과 시간을 보내지 못하는 건 참을 수 있지만, 수술 환자가 사망할 경우 ‘더 실력 좋은 의사에게 치료받았다면 결과가 다르지 않았을까’하는 자괴감에 시달린다”고 말했다.

  정상호(경상국립대 외과) 교수는 전공의 시절 처우가 열악했다고 말했다. 그가 1년 차 전공의였던 2000년에도 외과 지원자는 부족했고, 전공의를 돕는 진료보조간호사(PA, Physician Assistant)도 없었다. 지금이라면 8명이 할 법한 일을 홀로 처리하느라 1년 중 절반을 책상에 엎드려 잤다.

  최준영(경상국립대 심장혈관흉부외과) 교수는 삶에 대한 의사들의 가치관이 변했다고 본다. 그는 “과거엔 생명을 살린다는 자부심으로 흉부외과를 택하는 의사가 많았지만, ‘워라밸’을 중시하는 세태가 되며 응급 환자와 의료분쟁 위험이 없고 적당히 수입이 보장되는 과에 의사가 몰리고 있다”고 말했다. 본과 4학년생인 정모 씨도 “요즘은 직업 안정성과 수입을 보고 들어온 학생이 대부분”이라며 “*관상동맥이나 췌장을 잘라내는 수술은 10시간이 넘게 걸려 학생들이 원하지 않는다”고 했다. 수도권보다 문화생활 여건 등이 부족한 지방도 기피 대상이다. 주현진 의과대 학생회장은 “의료뿐만 아니라 문화와 교육 여건들도 서울에 집중되고 있는 상황”이라며 “단순히 의료만의 문제로 접근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의사 수, 체감·추계 모두 달라

 

필수의료 혁신전략 주요 내용
필수의료 혁신전략 주요 내용

 

  현 정부는 지역·필수 의료 생태계가 붕괴 위기에 처했다고 봤다. 지난달 19일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필수의료 혁신전략’은 그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필수의료 혁신전략에는 △의대 정원 및 지역인재 선발 확대 △국립대 병원을 필수 의료 중추로 육성 △국립대 병원이 총괄하는 지역 내 필수 의료 네트워크 강화 △의료분쟁 부담 완화 등이 담겼다. 윤석열 정부 의료 정책의 성격은 지난 정부와 사뭇 다르다. 원래 환자가 전액 부담해야 하는 3800여 개 비급여 진료 항목에 건강보험 적용을 단계적으로 추진했던 문재인 정부의 의료 정책은 ‘보장성 강화’ 기조를 띠었다. 반면 신영석(보건대학원) 연구교수는 “현 정부는 공백이 생긴 필수·지방 의료 분야에 집중적으로 지원하는 ‘효율화’를 의도했다”고 설명했다.

  필수의료 혁신전략을 놓고 주로 의견이 갈리는 지점은 ‘의대 정원 확대’다. 현재 전국 의대 입학 정원은 2006년 이후 3058명으로 동결돼 있다. 의대 정원 동결 계기는 2000년 발생한 ‘의약분업 사태’였다. 당시 정부가 병원과 약국을 분리하는 의약분업을 강행하자, 이에 반발한 의사들이 세 차례 파업하며 전국적인 의료 대란이 벌어졌다. 정부는 사태 수습을 위해 의료계가 요구한 의대 정원 10% 감축을 받아들였고, 2000년 3507명이던 정원은 현재 수준으로 줄었다. 필수·지방 의료 공백 해결을 원하는 현 정부가 2025학년도부터 의대 정원 확대를 예고하자 확대에 찬성하는 이들은 늘어난 의사들은 바이탈과와 지방 의료 현장으로 향하는 긍정적 낙수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의대생들은 낙수 효과 실현에 의문을 표하고 있다. 김상우 씨는 “흉부외과 지망 학생은 100명 중 1명이 나올까 말까 한다”며 “분모를 아무리 늘려도 분자가 유의미하게 늘어날진 모르겠다”고 말했다. 정모 씨는 최근 전공의 수련 과정을 밟지 않고 일반의로서 피부 미용 등에 종사하는 의사가 늘고 있다고 전했다. 정 씨는 “서울 강남 지역에서 피부 미용에 종사하는 일반의들은 대기업 초봉보다 월등히 많은 돈을 받는다”며 “지방에 피부 미용을 받으려는 이가 별로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오히려 부정적 낙수 효과로 이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심지어 의사 수 추계도 기관마다 다르다. 의협 의료정책연구원은 “2047년에는 인구 1000명당 활동 의사 수에서 한국(5.87명)이 OECD 국가 평균(5.82명)을 추월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2010~2020년 활동 의사 연평균 증가율(2.84%)이 OECD 평균(2.19%)보다 높다는 점과 미래의 인구 감소를 반영한 결과다. 그러나 신영석 연구교수는 의료정책연구원의 추계방식이 가지는 오류를 지적했다. 그는 올해 한국의 인구 1000명당 의사 수(2.6명)는 OECD 평균(3.7명)의 70%라는 점과 2020년 한국의 인구 10만명당 한 해 의대 졸업생 수(7.2명)는 OECD 평균(12.4명)의 58%라는 점을 고려했다. 신 교수는 “현직 의사 수도 평균보다 적고 의대 졸업생 수도 OECD 평균에 못 미치는데 한국의 인구 1000명당 의사 수가 OECD 평균을 넘어설 것이라는 주장은 문제가 있다”고 비판했다.

  신 교수가 2010~2019년 ‘의사 업무량(각 의료행위에 투입된 시간)’ 데이터에 근거해 수행한 <전문과목별 의사인력 수급 추계 연구(2021)> 보고서에 따르면 2035년 부족한 의사는 2만7232명이다. 하지만 이은혜(순천향대 영상의학과) 교수는 신영석 연구교수의 2021년 추계에 반론을 제기했다. 이 교수는 “한국 건강보험제도는 환자 의료이용을 전혀 관리하지 않으므로 의료이용량이 전 세계에서 가장 많다”며 “신 교수가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서 시행했던 연구는 의학적 필요도가 아닌, 환자의 수요에 기반한 과다이용을 토대로 진행됐기에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은 다른 의료보장 국가처럼 의학적 필요도를 바탕으로 의료 이용을 관리하지 않아 의사 수를 제대로 산출하기 어렵다고도 덧붙였다.

 

  수가 인상 요구는 합리적일까

  김봉천 의협 부회장은 지난 5월 24일 국민건강보험공단(건보공단) 제2차 의료수가 협상 후 브리핑 자리에서 “저수가 정책을 개선하지 않는다면 젊은 의사들의 필수의료 지원은 점점 적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상우 씨도 “초기 응급의학과에서 의사를 모집할 수 있었던 건 명예가 아니라 고된 일을 경제적으로 보상받은 덕분”이라며 “의료수가 인상이 의료 공백을 상당 부분 해결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의협을 비롯한 의사단체들은 ‘저수가’ 또는 ‘수가 인상’이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한다. 

  의료수가는 어떤 의료 서비스에 대해서 환자가 내는 돈(본인부담금)과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병원에 주는 돈을 합한 가격이다. 정부가 채택하고 있는 진료비 지불 제도는 ‘행위별 수가제(fee-for-service)’로 의사가 제공한 각 의료행위 하나하나에 대해 수가를 정해 진료비를 지불하게 한다. 행위별 수가제 하에서 각 의료행위의 의료수가는 ‘상대가치점수’에 ‘환산지수’를 곱해 정한다. ‘상대가치점수’는 의사 업무량, 진료비용, 의료행위의 위험도를 고려해 보건복지부 장관이 수년에 한 번 결정하지만, ‘환산지수’는 건강보험 가입자 단체와 공급자 단체가 매년 5월 협상을 통해 결정한다. 김봉천 부회장의 ‘저수가’ 발언은 가입자 단체인 건보공단과 공급자 단체인 의협이 환산지수를 놓고 협상을 벌인 뒤 나온 것이다.

  행위별 수가제는 선호과와 기피과가 생기는 이유 중 하나다. 미용 목적 등 생명에 직결되지 않은 진료에는 의료수가가 적용되지 않는다. 이런 ‘비급여항목’에는 따로 정해진 수가가 없으므로 의사가 돈을 얼마든지 올려받을 수 있다. 따라서 비급여항목이 많은 피부과·안과·성형외과는 선호과가 되고, 정반대인 내과·외과·산부인과·소아청소년과 등은 기피과가 된다. 생명과 직결된 바이탈과엔 환자가 자주 찾아오지 않아 의료행위 빈도가 낮지만, 해당 과 의사들은 위급 상황이 생기면 언제든 의료 현장에 달려가야 한다. 특히 저출산으로 환자가 줄어드는 산부인과와 소아청소년과는 의료행위의 빈도가 빠르게 줄고 있다. 반대로 비급여 의료 시장은 기술 발전과 사회문화적 요인으로 규모가 커지고 있다. 안정환(연세대 원주의대 산부인과) 교수는 “일반의가 피부 미용을 위한 의료기기 사용법을 익히는 데 3일도 걸리지 않는다”며 “외모에 대한 관심 증가와 의료기기 발전으로 미용·성형 시장 수요가 기형적으로 커졌다”고 말했다. 이은혜 교수는 “의료보장제도의 원칙을 지키지 않기 때문”이라며 “정상적인 의료보장 국가라면 요양기관 비급여 금지, **실손의료보험의 급여진료 본인부담금 지급 금지 등을 시행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한편 신영석 교수는 “의사단체는 매일 같이 ‘저수가’를 외치며 수가 인상을 요구하는데, 2020년 한국 임금 노동자 소득 대비 개원의 소득은 OECD 평균의 6.8배, 봉직의 소득은 OECD 평균의 4.4배였다”며 “국민들이 보험료를 털어서 의사 집단에 더 줘야 하느냐”고 지적했다. 신 교수는 “무조건적 수가 인상보다는, 건강 상태 또는 중재 과정의 연관성에 따라 일련의 서비스를 묶어서 지불하는 ‘묶음 수가제’로 바꿔야 한다”며 “이 역시 의협이 결사반대해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높은 의료 접근성의 이면에는

  하지만 의대 정원 확대 찬성하든 반대하든 지적하는 한국 의료 시스템상 문제가 있다. 바로 ‘의료 전달 체계(Health Care Delivery System)’의 붕괴다. 의료 전달 체계는 종합 병원(3차 진료기관)에 환자가 집중되는 현상을 막기 위해 동네 의원(1차 진료기관)과 중소병원(2차 진료기관)을 거친 다음 종합 병원에 가도록 하는 제도를 의미한다. 1989년 7월 도입된 의료 전달 체계는 전국을 대진료권 8개와 중진료권 140개로 구분하고, 1차 진료기관을 이용한 환자가 2·3차 진료를 받으려면 ‘단계별 진료의뢰서’가 필요했다.

  그러나 1998년 ‘국민의료보험법’ 발효로 다수의 보험 조합이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 통합되며 진료권 구분은 사라졌다. 환자가 속한 지역권 바깥에서 진료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더 많은 선택권을 얻은 환자들은 더 자주 서울의 대형병원으로 몰려갔다. 2021년 한국 국민 1인당 의사에게 외래 진료를 받은 횟수는 연간 15.7회로, OECD 평균(5.9회)보다 약 2.6배 높았다. 소위 ‘빅5’로 일컬어지는 서울아산병원, 서울대병원, 세브란스병원, 삼성서울병원, 서울성모병원의 2021년 비수도권 외래환자 수도 2017년 대비 14.7% 증가해 66만3000여 명을 기록했다. 고경남 서울아산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우리나라처럼 큰 병원을 마음대로 갈 수 있는 나라는 거의 없다”며 “좋은 의료 접근성의 이면에는 가벼운 복통, 두통, 감기로 응급실을 찾아오는 환자들로 인해 발생하는 ‘응급실 뺑뺑이’ 현상이 있다”고 지적했다.

  무엇보다 한국에서 의사 인력 배분이 잘 이뤄지지 않는 근본 원인은 의료 공급 주체와 관리 주체가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의견도 있다. 미국에서는 민간 부문이, 유럽에서는 공공 부문이 의료 공급과 관리 모두 맡지만, 한국에서는 대체로 민간이 의료 공급을 맡고 공공이 공보험을 통해 의료 관리를 담당한다. 신영석 교수는 “민간의 의료 공급 목적은 이윤 추구라서, 통제하려 드는 공공 부문과 매번 부딪힐 수밖에 없다”며 “우리나라 보건의료 정책이 대단히 어려울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의료 공백에 관한 많은 말들이 오가는 사이, 안정환 교수는 의료 공백을 직접 체감하고 있다. 그가 속한 산부인과 전공의 자리 8개 중 6개가 공석이다. 안 교수가 속한 병원의 신생아 중환자실은 조산아를 낳은 부모들의 유일한 동아줄인데, 공사 차 3주 넘게 문을 닫고 있다. “임신 37주 이전에 나오는 조산아들은 개인 의원에서 받을 수 없어요. 결국 아이를 안고 서울로 가야 합니다.” 

 

  *관상동맥: 대동맥에서 일어나 심장에 분포하는 두 개의 동맥.

  **실손의료보험: 보험 사고가 발생했을 때 피보험자가 실제로 부담한 의료비를 보상해 주는 보험.

 

글 | 정세연·이경준 기자 press@

사진 | 고대신문DB

인포그래픽 | 김성민 미디어부장 meenyminymo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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