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환경 고려해 의사 수 추산해야

정부, 병상수·의료 이용 통제 포기

강력한 지역인재 전형과 연동해야

 

윤석준 고려대 보건대학원장은 의료 공백 해결을 위해 지역인재 전형 선발을 
윤석준 고려대 보건대학원장은 의료 공백 해결을 위해 지역인재 전형 선발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의료 공백 사태가 연일 보도되면서 정부는 의대 정원 확대와 지방 국립 의대 육성을 골자로 하는 ‘필수의료 혁신전략’을 지난달 19일 발표했다. 대한의사협회(의협)는 지난 10일 의대 정원 확대를 주장하는 의사 징계를 추진하면서까지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의사 최초로 2014년부터 2016년까지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기획상임이사를 맡은 윤석준 보건대학원장은 “우리나라 정책 결정 과정은 매우 단기적”이라며 “의사 증원과 함께 지방 국립 의대 정원의 100%, 사립 의대의 80%를 지역인재 전형으로 선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의료 공백이 없다는 주장도 있다

  “필수·지방 의료 공백 현상은 객관적으로 존재합니다. 의사 수 문제를 떠나 부산, 대구, 광주 같은 큰 도시는 좀 낫지만 중소도시는 사정이 어렵습니다. 특단 조치가 필요해요.

  2005년 노무현 정부가 의학전문대학원 시스템을 도입한 게 도화선이었어요. 대학을 선택할 때 지역에 정착하기 가장 쉽습니다. 일찍부터 의과대학에 지역 인재 전형을 강력하게 걸어야 했는데 이를 대학원 과정으로 돌려버리니 지방 의료 공백이 가속화됐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지역에서 절대적 의사 수가 줄고 있다는 겁니다. 소아청소년과, 산부인과 등 필수 인력을 구하기 어려운 것도 문제죠. 상대적으로 당직을 안 서도 되는 전공으로 자원이 쏠리고 있어요.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의사 증원 정책이 ‘어떻게’ 작동해야 하는지를 따져야 합니다.”

 

  - OECD 의사 수 추계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추계는 추계입니다. 꼭 그대로 맞아떨어진다는 법은 없지만 대비를 위한 중요한 지표죠. 가장 간단한 방법이면서도 흔히 인용되는 건 OECD가 발표하는 소위 ‘인구 대비 활동 의사 수(Physician Population Ratio)’입니다. 우리나라는 OECD 비교 지표로 봤을 때는 단위 인구당 활동 의사 수가 OECD 평균보다 적습니다. 이 관점에서 보면 우리나라 의사 수가 부족해 또 다른 문제를 일으켰죠.

  그런데 국민의 의료 이용 빈도는 전 세계에서 가장 높아요. 입원 기간도 1인당 평균 18.5일로 OECD 국가 중 2위예요. 의사가 부족할 수밖에 없죠. 버틴 이유는 의사 1명당 보는 환자 수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진료 시간도 짧잖아요. 미국 동네 의원은 생활 습관에 관해 시시콜콜한 것까지 다 물어보느라 한 사람당 10분 이상 진료해요.

  우리나라가 처해 있는 의료 환경은 다른 나라와 다릅니다. OECD 회원국 중 상위권인 북유럽·서유럽 국가들은 의료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습니다. 특히 영국과 네덜란드에서는 인구당 주치의가 지정돼 있고 주치의가 허락해야 대형병원으로 갈 수 있어요. 일본은 강력한 주치의 제도는 없지만 국토가 길어 지역 안에서만 의료를 이용합니다. 의료가 자연스럽게 지역화된 거죠. 반대로 우리나라는 개인이 경제력만 있으면 마음껏 의료를 이용할 수 있는데, 선진국 중에도 이런 시스템을 가진 나라가 거의 없습니다. 문제는 동네 의원과 중소병원을 거쳐 대학병원으로 가는 제도가 있는데도 우회하는게 자연스러워졌다는 점입니다. 조금이라도 아프면 큰 병원에 가는 게 보편적이잖아요. 이런 환경을 고려하지 않고 OECD 데이터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건 곤란합니다. 하지만 어찌 됐든 지방과 필수 의료 공백은 사실입니다.”

 

  - 필수의료 대책 중 보완점은

  “국립대 병원의 소관 부처를 교육부에서 보건복지부로 넘긴 건 잘했다고 봅니다. 교육부 관료들이 반대했겠지만, 보건복지부가 더 전문적이니까요. 한국엔 공공병원이 부족하니 국립대 병원을 중심으로 의료의 지역화를 이루려는 노력도 옳다고 생각합니다. 일부에선 의사 수를 늘렸을 때 긍정적 낙수 효과가 발생한다고 보는데, 자칫 잘못하면 상황이 악화할 수도 있으니 정책 옵션을 분명히 하는 게 중요합니다. 2021년 한국 인구 1000명당 병상 수는 12.8개로 OECD 국가 중 가장 많았습니다.

  우리나라가 의료인력을 그렇게 많이 필요로 할 정도로 병상이 왜 늘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정부는 병상 조절 기능을 지난 20년간 포기하다시피 했고, 인력을 별로 고민하지 않고 정책을 폈습니다. 병상이 늘어나면 그만큼 의사나 간호사가 더 필요한데, 의사 인력은 동결 상태고 간호대 정원만 한참 늘리니 간호사들이 1~2년 만에 다 그만두고 있습니다. 의료 현장에서는 환자 돌봄도 필요한데, 정작 최근 간호대 교육은 전문화를 추구하고 있죠. 정책을 짤 때는 의료인력, 시설, 장비, 지식 체계가 한 번에 맞물려야 하고, 고령화 속도 등을 고려한 조절 기능이 있어야 합니다.”

 

  - 한국 의료 시스템의 문제는

  “앞서 말한 국가들에는 의료 이용을 통제하는 문지기(gatekeeper) 기능이 있습니다. ‘상환제(reimbursement)’를 운영하는 벨기에에선 환자들이 진료비 전액을 우선 지불합니다. 해당 금액은 심사기구가 심사한 후 진료비 일부를 환자에게 돌려줍니다. 환자가 자기 돈을 먼저 내야 하니 의료 이용을 자제하게 되는 거죠. 거꾸로 우리는 진료비의 70% 이상을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먼저 의사에게 내주고 나머지 30%만 환자 본인이 부담하는 구조예요. 진료비가 2만5000원이라 해도 환자가 체감하는 진료비는 만원도 안 되니 의료 이용을 참지 않아요. 한편 병원은 어쨌든 환자를 더 많이 받아야 경영을 할 수 있으니 경쟁적으로 병상을 늘리고 있습니다. 국민이 이용하기 편할지는 몰라도 사실 굉장히 비효율적인 시스템이죠. 우리나라 건강보험 재정은 온 국민이 내는 건강보험료로 유지되는데 의료 이용이 많아지면 보험료를 자꾸 올릴 수밖에 없습니다. 의사들은 더 많은 환자를 보느라 바쁜 시스템이 유지가 되니 불만이고, 국민은 병원 대기열이 길어지고 보험료가 올라서 불만입니다.”

 

  -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우리나라는 정책 결정 과정이 굉장히 단기적이에요. 정권이 5년마다 한 번씩 바뀌니 이전 정책을 이어가는 경우가 별로 없어요. 극단적 조치가 필요합니다. 현 대통령 임기 중에라도 지방 국립 의대에 지역 인재 전형 100%를 걸고 지방 사립 의대에 80% 이상을 권고하면, 적어도 의대생의 50%는 해당 지역에 남지 않겠습니까? 지역 문제 해결은 강력한 지역 인재 전형과의 연동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그렇게 시작해도 의사가 활동하는 데까지 10년이나 걸려요.

  필수 의료 문제는 더 복잡해요. 이제 대한민국은 개인의 선호를 규제로 바꿀 수 있는 나라가 아닙니다. 결국 단위 수가를 올리는 등의 인센티브 제도가 필요한데, 수가를 올려준다고 해서 당장 해결되지도 않습니다. 우리나라는 ‘행위별 수가제’가 기본입니다. 행위별 수가제는 의료행위를 했을 때 정해진 가격에 맞는 보상을 받는 구조예요. 그런데 환자가 안 오면 의료행위가 벌어질 수 없습니다. 소아청소년과를 개원하거나 대학병원에 있어도 저출산이 심각하니 환자가 오지 않습니다. 단위 수가를 올려줘도 환자가 찾아와야 보상받을 수 있으니 대안적 지불 제도가 필요합니다. 환자가 오지 않더라도,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만으로 충분히 보상받을 수 있게끔 필요 지역이나 분야별로 일종의 센터를 지정해 밤새 지키기만 해도 충분한 보상이 되는 형태로 발상을 전환해야 해요.”

 

글 | 정세연 기자 yonseij@

사진 | 하동근 기자 hdngg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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