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가 구부러져 바로 앉지도 못하던 환자가 똑바로 앉을 때 정말 보람을 느끼죠”

▲ 고대구로병원 서승우 소장(의과대 82학번)(사진=정회은 기자)
지난 달 16일, 고대구로병원 척추측만증연구소 서승우 소장(의과대 82학번)이 진료를 받으러 온 우즈벡소녀 막두나 양을 환한 미소로 반긴다. 지난 7월 20일 수술 이후 첫 만남이다. 말은 통하지 않지만 서로의 눈빛에는 반가운 마음이 오고간다. 지난 1999년부터 지금까지 6000명의 환자들을 직접 찾아가서 진료하고 있는 서승우 박사. 그로부터 ‘우즈벡소녀 막두나 양과의 인연’과 그만의 ‘특별한 진료행위’에 대해 들어봤다.

△막두나 양의 수술을 집도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조치원의 한 교회를 통해서 선교사로 일하고 계시는 한의사 김한길 선생님이 고대구로병원 척추측만연구소로 의뢰해 왔어요. 연락이 왔을 당시 막두나 양은 척추측만이 많이 진행된 터라 수술이 어려운 상태였고, 외국인이어서 의료비 지원이 안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안타까운 소식을 듣고 수술을 집도하게 됐습니다.

△막두나 양의 수술 전 상태는 어땠나요?

척추측만증은 척추가 비틀어지면서 옆으로 구부러지는 질환입니다. 선천성과 특별성으로 나눌 수 있는데 선천성은 보통 기형각도가 심해서 나이에 상관없이 발견 즉시 수술을 해야 하며 뼈와 뼈마디가 붙어있습니다. 막두나 양의 경우 선천성 척추측만증이였고 14년간 방치해 뒀기 때문에 각도가 120도로 상당히 굽어있었습니다. 그로 인해 폐와 장기가 눌려 굉장히 위험한 상태였습니다. 또한 뼈와 뼈마디가 다 붙어서 구분이 안 돼는 상태였어요. 그래서 이번 수술은 척추를 완전히 펴는 것에 중점을 둔 것이 아니라 더 이상 척추측만증이 진행되는 것을 예방하고 폐와 장기를 누르지 않도록 하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이번 수술을 하면서 위험한 순간은 없었나요? 어려운 수술이라 들었는데...

그럼요. 있었죠. 나사못을 보통 척추측만증 환자들 수술할 때 일반적으로 박는 곳에 박으려고 하는데 뭔가 이상한 게 있더라구. 자세히 보니 신경이 한 가닥이 아니라 두 가닥으로 갈라져 있었어요. 우리는 ‘지뢰 밟는다’란 표현을 쓰는데 자칫해서 척수신경에 나사못을 박았다면 지금 이 자리에서 막두나 양을 보지 못했을 겁니다.

▲ 치료를 받은 막두나양(사진=정회은 기자)
△지금 막두나 양의 상태는 어떤 가요?

120도로 휘어져 있던 척추가 60도로 펴진 것은 엄청나게 잘 된 케이스입니다. 이렇게까지 결과가 좋으리란 생각도 못 했고 욕심도 안 부렸는데 아주 성공적입니다. 척추측만수술은 수술 후에 2-3개월간 보조기를 착용하는데 사실 이 때가 가장 주의해야 할 시기입니다. 그 이후에는 막두나 양이 우즈베키스탄에 가서 사진을 찍어 보내는 것으로 진찰하게 될 겁니다.

△막두나 양이 수술 후에 선생님께 특별히 해준 말이 있나요?
“안 아파요”라고 말하며 손으로 따봉 포즈 해주던데요. 하하.

△이번 뿐 아니라 선생님께서 환자분들 수술비를 사비로 충당하는 경우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나 막두나 양 수술할 때 돈 안냈어요.

△상담 간호사님이 선생님께서 이번 수술에 500만원을 보태셨다고 말씀해 주셨어요.

에이, 뭐 조금 낸 것 가지고..

△99년부터 지금까지 6000명의 환자들을 직접 찾아가서 진료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처음 이 일을 시작하게 된 동기가 궁금합니다.
뭐 동기는, 그냥 의사가 하는 일인데... 내가 외국에 연수 갔을 때 보면 장애아동들이 경제적 부담이 없이 쉽게 치료와 수술을 받더라고요. 기부분화가 발달해서 그런 면도 있고. 그런데 우리나라 와보니 시스템이 있긴 한데 너무 복잡해요. 특히 우리나라에서 정신지체 아동들은 치료를 많이 못 받고 있었어요. 보통 정신지체 아동들이 척추측만증을 많이 갖고 있는데 치료 못 받으면 안 된다 생각했고 내 전공이 그거니깐 시작하게 되었죠.

△특별히 정형외과를 전공으로 선택하신 이유라도 있나요?
내가 대학생일 때 노동운동이 많았어요. 당시 고대구로병원 근처에 있던 구로공단에서 손을 다치는 환자가 꽤 많았었죠. 하루에 4-5명 정도였으니깐. 또 밤에 야간작업이 많아서 앳돼 보이는 소년들이 졸다가 손이 잘리거나 오징어포처럼 이그러져 병원에 왔죠. 이 사람들을 위해 내가 도울 수 있는 게 뭔가 생각하다가 정형외과가 가장 근접하다고 생각했어요. 손가락 접합술에도 관심이 있었고요.

▲ 수술 후 촬영한 막두나양의 척추모습
△의료 봉사를 하시면서 선생님께서 기대하시는 바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에, 그 봉사란 말 안 쓰면 안 되나? 그냥 ‘진료활동’으로 해줘요. 의사들 다 하는건데 뭐.
바라는 게 있죠. 일단 한국도 OECD에 드는 선진국인데 자선어린이병원이 없어. 다른 나라는 뇌성마비, 정신지체 아동들은 거의 무료로 수술을 받아요. 하지만 우리나라엔 거의 없다고 봐야해요. 경제수준으로 봤을 때 동남아와 같은 후진국에도 자선기금으로 운영되는 병원이 있는데 말야. 우리나라도 대기업 이런데서 뭐 있어야지 말이에요.

두 번째로 보호자들과 시설에서 아이를 돌봐주는 사람이 환자를 포기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치료받을 수 있게 노력해야 해요. 보통 ‘해서 뭐하나’ ‘완전히 낫는 것도 아닌데’라며 포기하는 경우가 꽤 많거든. 정신지체아동들은 자기 의사를 표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이들에게도 의료혜택을 받을 권리가 있죠. 뭐 경제적인 이유로 혹은 간호하는 것이 힘들고 완전히 멀쩡해지는 것도 아니란 생각으로 포기하는데 이런 인식이 바뀌어야 합니다. 적극적인 의지가 있으면 좋은 수술 결과가 있고 사회적으로 자선어린이병원들이 건립되면 경제적인 문제도 해결이 되겠지요.

△앞으로 계획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방학 동안에 학생들을 데리고 외부시설을 돌아다니려고 해요. 학생 때부터 의사가 치료할 수 있는 사람이 병원 속 환자들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병원과 같은 제도권 의료에 스스로 오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학생 때 인식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거든. 요즘 학생들은 강의실에만 있고 바깥에 노출 될 수 있는 기회가 적은 것 같아요. 어서 계획을 실천해야 하는데 난 방학 때 환자들이 많고, 학생들은 개학하면 공부해야 하니 시간이 안 맞네요. 맞춰봐야지요.

△마지막으로 의대 후배들에게 해주실 말씀 부탁드려요.
의료가 너무 상업화 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물론 열심히 진료에 임하는 선생님도 많지만 의사가 돈 잘 벌고 괜찮다고 생각하니깐 기를 쓰고 오는 거잖아요. 사실 자기 것을 희생하면서 남을 도우라는 말은 종교를 가진 사람에겐 괜찮지만 일반인들은 한계가 있잖아요. 그런데 그렇지 않으면서 타인을 도울 수 있는 것이 의료행위라 생각해요. 자기가 하는 일이 타인에게 좋은 일이 될 수 있는 것. 치료 자체가 타인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행위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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