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9일 백주년 기념관 국제원격회의실에서 유홍준 문화재청장의 강연회가 열렸다. 이번 강연의 주제는 ‘문화유산을 보는 눈’으로 문화예술 최고위과정 2기 수업으로써 이뤄졌다. 이번 강연에서 유씨는 △송광사 △무위사 △부석사 등 산사(山寺)의 건축방식을 중심으로 우리 옛 건축물의 건축방식과 그 아름다움에 대해 설명했다.

다음은 이 날 강연 내용입니다.

우리 나라가 산사의 전통을 갖게 된 것은 9세기 이후의 일으로 의상 대사가 국경선 가까운 곳에 국방의 목적으로 화엄사를 짓는 것에서 기원한 산사는 하대 신라인 9세기에 구산선문이 열리면서이다. 황룡사 모형도에서 볼 수 있듯 초기의 절은 높은 탑을 중심으로 건물이 만들어지고 주변에 회랑을 두른 구조였다. 보통 ‘산이 있는 곳에 절이 있는 것’을 산사로 생각할 수 있겠으나 ‘높은 산’ 꼭대기에 있는 일본과 중국의 산사와는 달리 첩첩이 겹쳐져 있는 계곡을 따라 들어가는 ‘깊은 산’에 자리를 틀고 있다.

유씨는 “황룡사를 복원하려는 시도가 있으나 나무로 지상 23층 규모의 건물을 짓는다는 것은 현재 기술로는 불가능하다”며 “이러한 건축이 가능했던 것은 나무 한 조각에도 조상들의 정성이 깃들어 있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우리 건축의 최고 전성기는 9세기로 석굴암과 불국사 등은 다 이때의 건축물이다. 지금 우리가 시멘트로 돌들 사이를 메우는 반면, 불국사의 건축은 돌 모양을 따라 밑받침을 일일이 깎아 조립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또한 석굴암은 자연적으로 곰팡이가 슬지 않도록 과학적으로 설계되어 있으나 개축한 지금 에어컨 을 가동해 인위적으로 유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옛 건축을 쫓아가기 위해서는 단순히 형식만을 따라할 것이 아니라 그 원형, 기초를 연구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유씨는 강조했다. 

이후 산사는 사천왕이 지키는 천왕문을 들어가 중앙에 정원을 놓고 ‘ㅁ’자 형태로 건물을 배치하는 ‘산지중정형’ 구조를 특징으로 하며 절의 주변 환경에 맞게 전각들을 증축해 나간 것으로 보인다. 산사의 기본구조는 대웅전, 적묵당, 만세루, 심검당으로 구성돼 있다. 처음부터 마스터플랜에 의해 지어진 것이 아니라 사정에 따라 증축되었으나 증축된 건물이 주변 환경과 잘 맞아떨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1980년대 들어 큰 마당을 만드는 풍조가 산사 건축에 밀려옴으로써 옛 사찰의 고즈넉한 맛이 사라지게 되었다. 강진 무위사 극락전과 예산 수덕사가 대표적인 피해 사례이다.

부안 내소사 주차장에서 보면 일주문만 눈에 들어오고 그 안은 보이지 않는다. 우리나라 절들은 속이 깊기 때문에 내소사의 경우 전나무 숲길로 1km를 들어가고 또 벚꽃나무 길을 지나야 천왕문으로 이어지게 된다. 즉 산사의 감동과 편안함은 이미 일주문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으로, 거기에서부터 건축이 시작되는 것이다. 이렇게 건축적인 생각을 가지고 건축된 길을 무시하고 자동차로 홱 지나쳐 버리면 출입하면서 속세와 성역이 갖고 있는 시간적, 공간적 거리감을 느끼게 조형된 사찰건축의 묘미를 이해할 수 없다. 유씨는 “문화재의 경우 사용자 입장에서 봐야 비로소 이해가 가능한 것이 많다”고 말했다.

지난 95년 광주비엔날레 커미셔너로 있을 당시 방한한 미국의 미술평론가 캐서린 할브라이시는 이렇게 말했다. 자연과 어우러진 선암사를 본 그는 “피라미드의 네모뿔처럼 세계의 모든 건축에는 고유 이미지란 것이 있는데 선암사는 전후좌우로 건물이 계속 겹쳐서 나오면서 건축의 전모가 드러나지 않는다”며 “한국에선 이런 건축을 ‘깊은(deep)건축이라고 하냐”라는 질문을 했다. 사실 호수가 깊고, 바다가 깊은 건 몰라도 산이 깊다는 말은 외국인에게 어색한지 처음에 깊은 산(deep mountain)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쉽게 이해하지 못한다. ‘깊은 산속에 깊은 절’, 아마 이것이 우리 산사의 미학이 갖고 있는 핵심일 것이다.

삼국사기에 이런 말이 있다.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다. 한국의 미는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은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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