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학기 본지 학술면에서는 본교 교수가 추천하는 책을 소개하고 그 평을 싣는다. 본격적인 연재에 앞서 서평의 역사와 현대적 의미를 되짚어본다. 

근대 이후 출판량이 증가하고 독자층이 두터워지면서 현대의 서평은 그 자체가 하나의 예술장르가 됐다. 우리나라는 90년대 이후 신문이나 잡지, 출판사 무크지 등에 고정 서평란이 생겼으나 서평의 기원 혹은 유형에 해당하는 다양한 글쓰기 양식은 진작부터 존재했다. 서발문, 논변문, 잡기잡록, 독서일기, 독후시 등이 그 예다. 전근대시기에는 문집이 많이 간행돼 서발문이 크게 발달했다. 문집은 상품화한 예가 드물어 서발문의 독자는 가문이나 지인, 혹은 일정 지역 등으로 한정됐지만 나머지는 특정 독자층을 겨냥하지 않고 학문 집단 내에서 교환되는 경우가 많았다. 본래 서발류는 문집 간행의 경위를 기록하면서 평자 자신의 문학론, 인생관, 문화론을 함께 드러내는 문체다. 서발문은 고려 중엽 이후 학술성과 문학성을 지니기 시작해 조선 중종 이후로는 철학성까지 띠게 됐다.

당시의 서발문은 간청에 의해 제작되는 경우가 많았으나, 기이한 문체와 실험적 시도로 현대적 감각을 지닌 글도 적지 않다. 이용휴(李用休, 1708-1782)는 신분상 미천했던 천재 시인 이단전(李亶佃)의 문집에 <하사고에 쓰다(題霞思稿)>라는 서평을 적어주면서, 책 이야기는 하나도 하지 않고 좌객에게 들은 기이한 이야기를 썼다. 그리고는 맨 마지막에 “행권(行卷)을 펼쳐보니, 괴상한 빛이 번쩍거려 눈이 부실 정도라서 무어라 형용하기 어려워, 사려의 바깥으로 벗어난 것이 있었다. 그래서 두 좌객의 말이 거짓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라고 덧붙이며 이단전의 시문에 ‘상상을 벗어나는 면모’가 있음을 암시했다.

조선후기에는 전문 서평가들의 활동이 활발했는데 특히 남극관(南克寬, 1689-1714)과 김려(金려, 1766-1822)를 꼽을 수 있다. 숙종 때 문인이었던 남극관은 28세로 요절했으나, 죽기 전인 1712년 7월 한 달 동안 독서일기인 <단거일기(端居日記)>를 남겼다. 룸펜이었던 그는 자신의 글에서 “눈병과 가슴앓이를 앓으면서도 생각하기를 그만두거나 서책을 버릴 수가 없어 날마다 일삼은 바를 기록한다”고 썼다. 전문 출판인이었던 김려는 <담정총서(담庭叢書)>라는 총서를 엮으며 총서에 수록하는 저작물마다 서평의 일종인 ‘제후(題後)’를 덧붙였다. 한편, 전근대시기에는 경학이나 사학 분야에서 원 저작물이 지닌 역사관이나 사상체계를 명료하게 설명한 단평(短評)이 많았다. 이러한 글은 없어진 것도 많으나 최근 여러 문중에서 전하는 필사본이 하나씩 공개되고 있다.

서평은 사회적 형태로 성립된 출판물에 대한 평가를 진술한 글이기 때문에 그 자체가 사회성을 띤다. 그러므로 서평이 참의미를 지니기 위해서는 사회적으로 신뢰성과 객관성을 인정받아야 한다. 하지만 우리사회의 서평은 단순히 내용을 요약하거나 저자를 위한 공치사를 늘어놓은 예가 적지 않다. 물론 텍스트의 행간을 읽어내어 원 저작물의 진의를 소개하는 일은 만만한 일이 아니다. 또한 입시 참고서 중심의 출판시장, 외국번역물의 압도적 우위, 베스트셀러 만들기 경쟁 등으로 인해 ‘책을 제대로 읽을 수 있는’ 환경이 마련돼 있지 않은 것도 큰 문제다. 그러나 책에 관한 명료한 설명, 치밀한 고증, 폭넓은 시야를 담은 명문의 서평이 많아야, 우리 사회에서도 지(知)의 유통이 그 파행성을 극복하게 될 것이다.

심경호 (문과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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