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아니 이명박 ‘교우’ 가 당선인이 되면서부터, 내가 밥을 벌고 있는 업계에서는 ‘왕립대학’ 이란 용어가 등장했다. 왕립대학이란 무엇인가? 당선인이 나온 대학을 일컬어 왕립대학이라고 한단다. 자연스럽게 나는 왕립대학 출신이 되었다. 일각에서는 ‘왕립대학’ 이란 용어가, 그동안 나라를 좌지우지해 왔던 관악산의 ‘관립대학’ 출신들이 질투심에서 만들어 낸 용어라는 말도 있긴 하다.

모교의 교수가 한 분은 외교안보수석이 되고, 한 분은 국정기획수석이 되었다. 모교 법대 출신 중 한 명은 민정수석이 되었고, 한 명은 국정원장에 ‘내정’ 됐다. 요소요소에 우리 ‘왕립대학’ 출신들이 깊숙이, 국가의 명운을 좌우하는 중요한 보직을 받았다.

모교 교우들은 감격에 겨웠으나 표정관리에 신경쓰기로 한 것 같다. 우리가 언제 단순 무식하고 똘똘 뭉친다느니, 해병대 전우회와 호남 향우회에 이은 대한민국 3대 마피아 조직이라느니 이런 험한 말만 들었지, 국운(國運)을 좌우하는 중요한 소임을 맡은 적이 있었는가. 쩝. 고소영 내각이니 뭐니 해도.
물론 우리 왕립대학 출신들은 이번 정권의 탄생을 위해 숱한 희생을 치렀다. 각 지역에 계신 교우들께서는 교우의 대통령 당선을 위해 동분서주하셨고 (선관위에 물어보니 이건 허용할 수 없는 일이라고 한다), 모교의 교우회와 교우회보는 교우의 업적을 칭송하다가 그만 검찰에 기소됐다. 선거법 위반이라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근데 왕립대학 출신들은 전부 왕당파인가? 일단 나부터도 그런 것 같지는 않은데. 우리 왕립대학 출신들은 모두 ‘좋은 게 좋은 고대 선후배’ 일까? 그런 것 같지도 않은데.

최근에 우리 ‘왕립대학’ 출신이 역사에 길이 남을 사고를 쳐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김용철 변호사. 모교 법대를 나와 삼성그룹 법무팀장으로 일하다 삼성의 비리를 폭로한 사람이다. 그가 폭로를 결심했을 때, 삼성의 고위 임원들이 그를 찾아가 간절히 만류했다. 두 사람 역시 ‘왕립대학’을 나왔다. 인간적으로는 교우끼리 참으로 민망하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 한 사람은 삼성에 칼날을 겨눈 사람으로, 또 한 사람은 삼성 비자금과 불법 경영권 승계의 핵심 인물로 거론되고 있다. 이학수와 김용철의 공통점은? 둘 다 모교를 나왔다는 것.

나아가 김 변호사는, ‘왕립대학’ 출신 중 2명이 삼성에서 떡값을 받았다고 폭로했다. 김성호 국정원장 내정자와 이종찬 청와대 민정수석. 저 유명한 고대 선후배 사인데. 쩝.

모교의 교수님들을 감금했다는 이유로 출교된 후배들의 법정 변호는, 모교 출신 변호사가 맡았다. 그리고 그들의 주장은, 모교 출신 기자들이 기사화했다. 교우들이 모교에 맞선 셈인데, 이 또한 어떤 분들은 ‘안습’ 이라고 하실지 모르나, 어쨌든 그런 일이 일어난 건 사실이다.

지난 해 내가 취재하고 있는, 아니 기사를 쓰는 게 그 회사에는 별로 안 좋은, 그런 곳에서 우리 모교 출신 선배님이 술 한 잔 먹자 했는데. 언제 또 내가 고대 나왔는지는 알았나보다. 난 안 갔다. 쩝. 고대 출신들 중에 나 같은 사람이 한 둘이 아닌 게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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