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의료 보험에 가입돼 있지 않은 에릭. 어느 날 절단기로 나무를 자르다 중지와 약지 끝이 잘리는 사고를 당한다. 이런 에릭에게 병원 측은 민간보험 미가입자인 에릭이 가운데 손가락을 봉합하는데 6만달러(한화 약 6000만 원), 약손가락은 12만 달러(한화 약 1억 2000만 원)가 든다고 말한다.

미국의 민간의료보험 제도의 실상을 다큐멘터리로 제작한 마이클 무어 감독의 영화<식코(Sicko, 2007)>의 한 장면이다. 감독은 영화에서 보험적용을 거부당하거나 엄청난 의료비로 고통 받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아내며 민영보험회사의 실상을 고발한다. 미국은 국영보험제도가 없어 국민들이 전적으로 민간보험회사에 의존하고 있다. 한편 우리나라 국민은 미국과 달리 '국민건강보험'을 통해 소득에 따라 보험료를 내면서 전 국민이 동일한 의료혜택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최근 우리나라 누리꾼 사이에서 정부의 '의료산업민영화 정책'과 관련해 영화와 같은 일이 발생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일고 있다.

의료민영화에 대한 국민적 우려가 커지자 보건복지가족부는 지난달 20일 홈페이지에 '건강보험민영화에 대한 정부 입장'이라는 제목의 글을 게재했다. 보건복지가족부 측은 공보험인 건강보험을 현 체제 그대로 유지하고, 건강보험을 현 체제 그대로 유지하고, 건강보험 당연지정제를 확고히 하겠다고 밝혔다. '당연지정제'는 국내의료기관의 민간보험 지정을 원천적으로 차단해 국민건강보험 가입자가 국내의 모든 의료기관에서 안정적으로 진료를 받도록 하는 제도다.

그러나 이 같은 정부의 설명에도 일부 전문가와 시민단체는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새 정부가 주창한 '능동적 복지'의 일환인 의료민영화의 부분적인 움직임이 보이기 때문이다.

최근 정부가 발표한 의료민영화의 움직임은 크게 두 가지다.

그중 하나가 '의료영리법인의 허용'이다. 현재 국내의 모든 병원은 '비영리법인'으로 투자자가 이윤추구를 위해 병원에 투자할 수 없다. 따라서 병원에서 발생한 수익은 병원내로 다시 투자돼 시설*인력 *장비를 보완해야 한다. 현재 정부는 국내 의료시장의 효과적인 자본진입을 위해 의료영리법인 허용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그러나 시민단체들은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의료계가 자본에 종속된다며 반발하고 나섰다. 시민건강증진연구소 측 관계자는 "병원의 영리법인이 허용되면 투자자들이 병원에 이윤을 얻기 위해 추자하게 되고, 이는 정부가 상업적 진료를 법적으로 허용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건강세상네트워크 역시 "건강보험 수가를 따르지 않고 높은 진료비를 요구하는 병원이 등장해 사회 계층간의 위화감이 조성될 것"을 우려했다.

두 번째는 '민간의료보험의 도입'이다. 정부는 '공보험인 건강보험이 보장하지 못하는 병실료 차액 등의 부문을 민간의료보험의 도입을 통해 해결하겠다'고 밝혔다. 보건복지가족부의 한 관계자는 "대부분의 국민이 민간보험을 하나쯤 갖고 있다"며 "앞으로 민간 보험과 건강보험이 서로의 영역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으므로 정부의 관리체계로 도입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공보험의 손이 닿지 않는 비급여 부문은 '민간의료보험 활성화'를 통해 해결하겠다는 정부정책에 대해 본교 신현호 교수(법과대 법학과)는 "비급여 항목은 국가가 점차 급여 항목으로 확대해야 하는데 공보험 보장성의 확대에 대한 고민은 하지 않고 민간보험을 통해 해결하려는 사고방식은 문제가 있다"며 "필요한 경우 건강보험료를 인상한다 해도 국민들이 크게 반발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부의 의료민영화 정책에 찬성하는 의견도 있다. 대한의사협회의 한 관계자는 "아무리 비영리법인이라도 의사들 역시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라며 "의료영리법인이 허용되면 병원 간 가격경쟁으로 진료비가 더 낮아질 수도 있고 환자들은 질 높은 의료 서비스를 받을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새 정부의 복지정책 전반에 대한 지적도 있었다. 김진수(연세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지난달 27일 인터넷 언론 프레시안 주최로 열린 '이명박 정부 100일 평가 토론회'에서 "현 정권이 복지부문에서 지나치게 민간 참여에 의존, 효율성을 높이려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신 교수 역시 "자본주의가 적용되는 사업이 있고 결코 적용될 수 없는 사업이 있다"며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교육과 의료제도는 자본주의로 설명할 수 없는 성격을 가진다"고 말했다.

정부의 '의료민영화 정책'이 가시화되면서 이에 대한 사회 각 분야 전문가들의 찬반논란이 확대되고 있다. 그러나 국민들이 느끼는 의료보험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전문가와는 다소 다른 차원에서 확상되는 양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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