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삐 움직이는 지하철 속, 여유있게 한 숨 돌릴 기회가 생겼다. 지하철 1~4호선을 담당하는 서울메트로(사장=김상돈)가 올해부터 ‘서울메트로아티스트’라는 새로운 지하철 문화공연행사를 시작했다. 지하철 역사의 도움아래 진행되는 공연들은 어떤 모습일지 지난 10일(화)부터 12일(목)까지 총 5팀의 공연을 관람해봤다.

3월 10일(화) 2:20 PM, 선릉역

(사진 = 박지선 기자)
지하철 역 한쪽에서 익숙한 음악이 들려온다. 소리를 따라 발걸음을 옮긴 곳에는 두 남자가 색소폰으로 가요 ‘만약에’를 연주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잠시 시선만 줄 뿐 선뜻 발걸음을 멈추지 않는다. 듣는 사람이 적으면 민망하지 않을까 싶었지만 두 남자는 그게 좋단다. 연주를 감상하던 김준웅(68·남) 씨는 “지나다니다 이분들 공연이 너무 좋아서 일정을 물어봤어요. 오늘은 딸과 함께 나왔죠”라고 말했다.

유인현(54·남) 씨와 박민석(54·남) 씨가 ‘Duo saxophone’이란 이름으로 함께 연주를 시작한 지는 4년째. 동갑내기인 두 사람은 고등학교와 대학동창으로, 정년퇴직 후 취미삼아 색소폰을 배우기 시작해 본인들이 좋아 거리공연을 다니기 시작했다. 지금은 메트로 공연 이외에도 동호회나 카페공연도 정기적으로 하고 있다. 그들은 매 공연마다 재미있고 들뜬다고 했다. 유인현 씨는 “우리가 좋아서 하는 일이라 항상 공연이 즐거워요”라고 웃었다.

두 남자의 공연장 앞에는 특이한 모금함이 있다. 감상비를 넣은 시민들이 가져가도록 ‘사랑의 열매’가 함께 놓여있는 것. 박민석 씨는 “취미생활을 즐기는 것이 가장 큰 이유지만 봉사도 하고 싶은 마음에 모금된 돈을 사회복지공동기금에 송금하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지하철 공연에 대해 주변인들의 반응은 어떨까. “주변사람들은 이해 못하겠다고 하죠. 개인 돈쓰면서 뭐하러 하냐고…. 하지만 취미생활이라고 이해해주면 좋겠어요”

3월 10일(화) 5:00 PM, 서울대입구역

장발의 남자가 어깨엔 기타를 맨 채 양손가득 짐을 들고 개찰구를 통과한다. 15분 후, 남자는 기타를 들고 마이크 앞에 앉았다. “두서없이 트로트도 하고 팝송도 하겠습니다” 주석렬(39·남) 씨의 첫 마디다. 외국의 버스크(busk) 문화를 우리나라에 정착시키고 싶어 거리공연을 시작한 그는 올해로 벌써 10년차를 맞는 베테랑이다. 공연시 시민들의 반응을 묻자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기표현에 서툴고 거리공연문화에 미숙해서 무표정으로 무게 잡고 보는 경우가 많아요”라며 아쉬워했다.

주 씨에 이어 세계민속 음악을 연주하는 ‘바람소리’ 팀의 공연이 시작됐다. ‘바람소리’는 연령대도, 직업도 다양하다. 그들은 인터넷동호회를 통해 만나 4년째 함께 공연을 해오고 있다고 했다. “사는 지역과 직업이 제각각이라 연습은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만나서 해요. 서로 업무를 끝내고 만나야 해서 공연시간도 저녁시간만 가능하죠”

다양한 세계음악을 연주하다보니 준비해야할 악기가 많아 공연 1시간 전부터 준비를 한다. 일과를 마치고 공연을 하는 것이 힘들지만, 음악이 좋아 길거리공연을 포기할 수 없다. 팀원인 조현철(39·남) 씨는 “공연을 하다보면 음료수를 놓고 가거나 연주모습을 스케치해 주고 가는 분도 있어요. 그럴 땐 정말 공연이 흥이 나고 보람있죠”라고 말했다.

3월 11일(수) 5:40 PM, 성신여대입구역

감미로운 재즈선율이 지나가는 사람들을 돌아보게 한다. △바이올린 △멜로디언 △클래식기타를 연주하는 ‘가라섬 재즈트리오’가 ‘fly me to the moon’을 한창 연주하고 있었다. 오후 5시 10분부터 시작된 공연은 한 시간 가량 진행됐다. 원래 ‘가라섬 재즈트리오’의 멤버는 셋인데 오늘은 이들과 친분이 있는 백진희(23?남) 씨가 객원멤버로 함께 했다. 공연을 끝낸 ‘가라섬 재즈트리오’는 다음 공연장소인 동대문운동장역으로 이동했다. 세 사람은 한 재즈아카데미에서 수강생으로 만났다. 세 사람이 공연을 함께한 것은 지난해 10월부터다. 바이올린을 담당하는 박고은(26·여) 씨는 “작년에 자라섬 재즈페스티벌을 함께 보러갔다가 감명 받고 거리공연을 함께 하게 됐어요”라고 말했다. 그들에겐 길거리에서의 공연이 곧 연습시간이다. 팀의 리더이자 기타리스트인 전인회(27·남) 씨는 “보통 짜여진 틀 없이 즉흥적으로 연주를 하기 때문에 당일 공연이 연습시간이 돼요”라고 말했다.

관객들의 반응은 어떠냐는 물음에 멜로디언을 담당하는 김민영(26·여) 씨는 “멜로디언은 아이들이 부는 악기 아니냐는 분도 있어요. 하지만 공연 후 악기에 대해 말씀드리면 좋아해주세요”라고 말하며 웃었다. 세 사람은 앞으로 날씨가 풀리면 길거리 공연도 할 생각이다. 언젠가 대학로 어딘가에서 이들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3월 12일(목) 6:50 PM, 이대역

박수를 치며 환호성을 지르는 관객들 속에 삐에로가 고무공으로 저글링을 하고 있다.

풍선을 이용한 퍼포먼스와 마술이 이어지자 지나가던 사람들도 관심을 보인다. 삐에로는 전문 공연인 신승빈(30·남) 씨다. 공연을 시작한지 7년째인 그는 관객들과 호흡하는 공연이 좋아 ‘메트로아티스트’에 지원했다. “퍼포먼스의 특성상 관객들과 함께해야 해서 주로 이대역, 을지로입구 등 사람이 많은 곳에서 공연을 해요”

그는 자신을 ‘내성적’이라 말했다. 하지만 분장을 하고나면 명랑하고 익살스런 영락없는 삐에로다. “주변사람들은 제가 이런 일을 할 줄 몰랐다며 놀라워해요”

삐에로 분장과 소품준비로 그의 무대준비 시간은 유난히 길다. 하지만 공연준비가 오래 걸려도 감수하는 것은 사람들의 호응이 좋으면 모두 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의 공연은 호응이 좋다. 그의 공연을 좋아해주는 팬이 만들어준 팬카페가 있을 정도. 그는 “어제 회원이 1000명을 넘었답니다”라며 부끄러운 듯 웃었다. 공연 중 힘든 점은 없을까. “분장을 했을 때는 삐에로로 봐줬으면 하는데 공연 중 퍼포먼스에 기분 나빠하거나 화를 내는 분들이 있어요. 그럴 땐 우리나라가 아직 길거리 공연문화에 익숙치 않은 것이 아쉽죠”

퍼포먼스가 끝나고 하얀 얼굴과 빨간 입술의 삐에로 분장을 지우는 신승빈씨. 분장기 없는 그의 얼굴엔 아직도 삐에로의 명랑함이 머물고 있었다.

*서울메트로아티스트 공연일정은 다음카페(cafe.daum.net/seoulmetroartist)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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