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보건기구에 의하면 우리나라 장애인 수는 인구의 10%인 480만 명으로 추정된다. 또한 지난 2005년에 정부가 실시한 장애인 실태조사 중 ‘장애인의 차별인식 정도’에 따르면 장애인의 경우 86.7%, 비장애인의 경우 49.1%가 장애인에 대한 차별이 많거나 심하다고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사회적 차별을 해소하기 위해 정부는 지난해 4월부터 ‘장애인차별금지법’을 제정하고 매 해 단계적으로 적용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하지만 법 시행과정에서 여러 문제점이 나타나면서 관련 단체들의 반발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차별’에 대한 법적 규제

장애인차별금지법(이하 장차법)은 모든 생활 영역에서 장애를 이유로 한 차별을 금지하고 차별 받은 장애인의 권익을 구제해 장애인의 사회참여와 평등권 실현을 구현하자는 목적에서 만들어졌으며, 총 6개장 50개 조문으로 구성돼 있다.

장차법에는 차별금지 유형과 금지 영역이 규정돼 있다. 차별금지 유형은 △직접차별 △간접 차별 △장애를 고려한 서비스 거부에 의한 차별 △광고에 의한 차별 등 총 4가지며, 영역은 △고용 △교육 △재화와 용역의 제공 및 이용 △사법·행정절차 및 서비스와 참정권 △모·부성권과 성 △가족·복지시설과 건강권 △장애여성과 장애아동 등 총 7가지다. 이제 가족이라 할지라도 장애를 이유로 장애인의 권리에 제한을 두거나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복지시설에 위탁, 감금 등을 하는 경우에는 법의 제한을 받게 된다.

또한 차별을 받은 장애인은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와 법무부를 통해 권리를 구제받을 수 있다. 차별을 받은 장애인은 인권위에 진정신청을 하면 된다. 인권위의 조사결과 차별사실이 드러날 경우, 가해자에게 시정권고가 내려진다. 권고를 받은 자는 정당한 사유를 증명해야 하며, 정당한 사유 없이 권고를 이행하지 않을 시엔 법무부장관 직권으로 시정명령이 내려질 수 있다. 차별의 행위가 고의·지속적이며 보복적이고 규모가 큰 경우에는 악의적 차별로 간주돼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된다.

시행 1년, 현황과 과제
장차법은 장애인 차별에 대한 가이드라인 및 판단 기준을 제시했다는 점과 사회적 약자들의 인권증진을 위한 법령 제정에 선구적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특히, 장애인 당사자가 직접 법 제정을 주도하고 입법화하는데 성공했다는 점은 과거의 사회적 약자 관련 법안이 전문가들에 의해 제정되어온 점과 비교해볼 때 그 의미가 크다. 하지만 법 시행 1년을 맞은 지금 각계에서는 현행 법령에 대한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가장 문제로 지적되는 것은 장차법이 기존의 법안들과 상충되는 부분이 많아 법안 적용에 어려움이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현재 인권위 법상으로는 장애인 차별에 해당하는데 아직 장차법 적용대상이 아니라 장차법상으로는 위반에 해당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이를 인권위법 위반을 들어 시정권고를 내릴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실무상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박종운 변호사는 “장차법 제정으로 인권위 법이 효력상실 혹은 폐지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두 법이 양립할 수 있는 상황”이라며 “피해자의 입장에서 장차법과 인권위 법을 선택해 적용을 주장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지난 1일(수) 국회 보건복지가족위원회는 장차법과 충돌되는 현행법 중 47건의 개정안을 일괄 발의하겠다고 밝혔다.

장애인차별금지법 일부에 대한 규제일몰제 적용도 문제로 지적된다. 규제일몰제란 일정한 기간이 지나면 법적 효력이 자동으로 상실되거나 규제의 지속여부를 의무적으로 재검토해야하는 제도다. 장차법에선 제21조 3항이 포함된다. 제21조 3항은 ‘방송법에 따라 방송사업자 등은 장애인이 비장애인들과 동등하게 제작물을 이용할 수 있도록 △자막 △수화 △인쇄물 음성변환 출력기 등 통신 중계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조항은 현재 규제일몰제로 인해 시행된 지 1년 만에 기대효과를 보지도 못한 채 없어진다는 예고를 받은 상태다. 장애여성 공감인권센터 김광이 소장은 “정보획득의 폭이 넓어질 것을 기대했던 장애인들에게 규제일몰제는 좌절을 안겨줄 수 있다”며 “교육·문화의 핵심 매체인 출판물과 영상물의 정보접근과 의사 소통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장차법과 관련해 인권위 축소와 보건복지부 산하에 있는 장애인권익증진과의 통폐합 문제도 지적되고 있다. 현재 정부는 지난해 장차법을 마련하면서 신설했던 장애인권익증진과를 올해 초 통폐합하겠다고 발표해 관련 단체들의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장애인 차별 금지 추진 연대 박옥순 사무국장은 “지난해 4월 장차법이 시행된 이후 진정건수가 696건으로 2007년도의 두 배가 넘지만, 사건조사 시작을 알리는 연락을 받아보지도 못한 장애인이 부지기수”라며 “이런 상황에서 인권위를 축소한다는 것은 장차법 무력화와 연결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지속적인 개선과 감시 필요해
관련 전문가들은 현행 장차법에 내재된 문제에 공감하며 지속적인 개선과 감시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지난 1일(수) 본교에서 ‘장애인차별금지법 시행 1주년 현황과 과제’ 포럼에 참석한 이준일(법과대 법학과)교수는 “현재의 우리나라 장차법은 세계 각 국의 장차법을 짜깁기한 것에 불과하며, 형벌과 벌금의 규제가 있는 것도 우리나라 뿐이다”며 “앞으로 장기적이고 비판적인 입장에서 장차법을 개정해나갈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박종운 변호사는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추진 연대를 ‘장애인차별금지법 시행 감시 및 개정 추진 연대’로 개편해 장차법 시행을 감시하고 해당문제점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역할을 하도록 해야 한다”며 “또한 세미나와 포럼을 통해 장차법을 알려 법안의 실효성을 확보하고 국민들의 인식 변화를 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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