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18일 코펜하겐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가 반쪽 성공이라는 평가를 받으면서 폐막하였다. 교토의정서를 대체할 구속력 있는 조약의 탄생까지도 예견되면서 무려 100개가 넘는 국가의 정상들이 참석하였던 코펜하겐 당사국 총회는 가까스로 정치적 성격의 코펜하겐 합의(Copenhagen Accord)를 만들어 내면서 구체적인 결과도출은 내년 멕시코 당사국 총회로 넘긴 것이다.

코펜하겐 합의는 기후변화 대응에 대한 별다른 내용을 담지 못하고 있다.  교토의정서와 달리 선진국의 구체적이고 법적 구속력이 있는 온실가스 저감 기준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 향후 지구사회 전체에 필요한 온실가스 저감의 약 65퍼센트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되는 선발 개발도상국에 대해서도 기본적으로 이들의 자발적 노력에 의존하도록 하고 있을 뿐이다. 다만 개도국의 기후변화 대응 노력을 지원하기 위해서 2020년까지 선진국이 1000억 달러를 지원하고, 이를 위해서 코펜하겐 청정녹색펀드 (Copenhagen Clean Green Fund)를 창설하기로 합의한 점 등에서 코펜하겐 기후변화 회의의 긍정적인 성과를 다소 찾아볼 수 있는 정도이다.

이와 같이 지난 2년간 소위 발리 로드맵에 따라서 치열한 협상을 진행해 왔지만 정작 기후변화에 대한 별반 내용이 없는 대응책이 나온 근본적인 이유는 유엔 기후변화협약 체제가 극도로 정치화되었기 때문이다. 어느 국제협약 체제에나 공동의 목적 달성이라는 명분 뒤에는 국가들의 이해타산이 개입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유엔 기후변화협약 체제는 선진국과 개도국, 미국과 여타 선진국, 선발개도국과 극빈개도국 간에 얽힌 이해관계로 인하여 192개국 간에 실질적인 합의를 이끌어 내기가 처음부터 매우 어렵게 되었다.

통상 국제환경 협약 체제에서는 미국이나 소수의 선진국들이 준비한 조약안에 바탕을 두고 협상을 진행하는 것이 통례였다. 그러나 코펜하겐 기후변화 회의에서는 주최국 덴마크가 준비한 초안이나 몇몇 선진국들의 안들은 모두 개도국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혔다. 숫자 면에서 개도국이 압도적으로 많은 유엔 기후변화 협약체제 하에서 선진국 안들은 내용이 문제라기보다 절차적으로 선진국에 의한 일방적인 행위라는 점에서 개도국 중심의 논의를 원하는 국가들에 의해서 받아들여 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선진국들은 교토의정서 하에서 감축의무 이행에 대해서 국회청문회를 연상케 하는 개도국들의 질문 공세에 시달리면서 추가감축 노력에 대한 압박에 시달렸다. 어렵게 합의가 되어가던 코펜하겐 합의도 폐막 총회에서 중남미 국가 및 수단 등 소수 5개의 개도국이 절차적 정당성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면서 그 합의에 실패할 뻔하였다.

사실 지구사회의 약 90퍼센트 정도의 온실가스 배출은 선진국과 중국, 인도, 브라질, 멕시코, 우리나라 등 몇몇 선발 개도국으로 구성된 상위 20개 정도의 국가에 의해서 이뤄진다고 한다. 급속한 경제성장 속에서 2010년경이면 세계 최대 온실가스 배출국이 되는 중국이 정치적 고려에 따라서 서부 사하라 지역 극빈국과 기후변화 대응에서 같은 입장을 취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오히려 다른 선발 개도국들과 함께 선진국과 합심하여 온실가스 저감에 적극적으로 나선다면 정치적 고려가 압도하는 유엔 기후변화협약 체제 하에서 200여개에 가까운 국가들 간에 온실가스 저감 기준에 대한 합의를 굳이 이루지 않더라도 기후변화 문제의 대부분은 해결이 될 수 있다.

기후변화 문제는 이제 환경보호의 문제를 넘어서 환경과 경제가 조화를 이루는 녹색성장의 문제이다. 온실가스 저감을 위해서는 정치적 이해타산이 아니라 녹색기술과 녹색산업에 바탕을 둔 경제구조의 전면적인 전환과 성장을 통한 대응이 필요하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경우에 따라서는 2020년까지 공공부문과 사부문을 통해 연간 500조원에 달할 수도 있는 녹색금융에 대한 논의도 필요하다. 이러한 노력이 선진국과 선발 개도국을 포함하는 20개의 주요 온실가스 배출국이 참여하는 G20에 의해서 이뤄진다면 유엔 기후변화협약 체제보다도 훨씬 더 효율적일 것임은 자명하다. 향후 G20은 전통 금융 위주의 논의 틀에서 탈피하여 녹색성장 전반에 관한 글로벌 비전과 기준을 마련하여 기후변화 문제에 대한 효과적인 대응체제로서 자리매김하여야 한다. 그리고 이것을 실현하기 위한 첫걸음은 2010년 G20의 의장국으로서 우리나라의 손에 달려있다. 

정서용(국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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