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가 되어 버린 천재를 아시오?” 이상의 단편 〈날개〉의 유명한 첫 구절이다. 그런데 심상용 교수(동덕여대 미술학부)는 〈천재는 죽었다〉(아트북스)에서 이렇게 말한다. “천재라는 개념 자체가 신화이며 허구다. 탁월한 인간, 인간을 넘어서는 인간으로서의 천재는 휴머니즘의 오랜 역사가 잉태한 야망의 산물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은 르네상스로부터 낭만주의에 이르는 동안 심화되어온 인간에 대한 과도한 기대가 낳은 하나의 발명이었다.”

 미켈란젤로, 램브란트, 피카소, 달리, 잭슨 폴록. 요셉 보이스, 사이 톰블리에 이르는 미술사는 천재들의 역사로 간주된다. 하지만 심상용 교수는 그 역사 속에 감춰진 시장과 권력의 메커니즘에 주목한다. 미술 시장은 천재의 신화를 조장하고 그것을 권력화하며, 미술사는 한 줌의 작가들을 신화화하고 영웅시하기 위해 대다수 작가를 매장해온 권력의 연대기에 불과하다는 게 심 교수의 논지다.

 그는 더 나아가 오늘날의 이른바 예술 활동의 상당수가 천재의 자리에 오르려는 난잡한 소동에 불과하며, 그런 행위를 천재의 소산으로 떠받들어 이익을 챙기려는 언론과 사회의 거짓 선동의 결과라고까지 말한다. ‘죽은 토끼를 끌어안고 주절대기, 홀딱 벗고 첼로 켜기, 괴물 흉내내기, 자신의 살을 난자해 전시하기, 살 속에 이물질 삽입하기, 별다른 이유 없이 조국의 국기 태우기.’ 소동의 종류도 갖가지다.

 한편 20세기 미술 최대의 천재 피카소를 표적으로 삼은 책으로 마이클 C. 피츠제랄드의 〈피카소 만들기〉(다빈치)가 있다. 피카소는 이전의 천재 화가들과 달리 사후가 아닌 생전에 자신의 천재적 예술성으로 부와 명성을 동시에 거머쥔 최초의 예술가였다. 그리고 그것은 비즈니스의 천재 레옹스 로젠버그란 화상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피카소는 남다른 상업적 후각을 지닌 특이한 천재였기에 주저 없이 로젠버그와 손을 잡았고, 원하던 것을 이루었다.

 아방가르드 계열 작가들이 기성 체제를 부정하고 소비 체제에 영합하지 않았다는 일반적인 인상을 불식시키는 사례가 바로 피카소다. 작가와 화상이 공모하여 평론가, 수집가, 큐레이터들을 꼬드겨 작품의 가치와 작가의 명성을 높이는 것. 마치 주식 시장의 작전 세력을 방불케 하는 풍경이 현대 예술의 본질적인 모습 가운데 하나라는 걸 알 수 있다.

 예컨대 피카소는 현대 미술의 선구적 양식으로 평가받던 큐비즘에서 손을 떼고 발빠르게 고전주의 양식을 다시 불러낸다. 피카소의 이러한 선택은 예술적인 이유에서가 아니라 상업적인 이유, 즉 수익성 극대화를 위해 물량을 털고 종목을 바꿔 탄 경우라는 게 저자의 지적이다. 그런 피카소가 ‘가난한 사람처럼 사는 부자가 되고 싶다’는 소망을 이루었음은 물론이다. 피카소는 미술상과 작가 자신이 공조해 만들어낸 최고의 히트 상품 바로 그것이었다.

 두 책 모두 일종의 신화 깨부수기 혹은 정체를 폭로하기(debunking)에 해당하는 데, 〈천재는 죽었다〉가 현대 미술 전반에 대한 무차별 융단 폭격이라면, 〈피카소 만들기〉는 전략적 가치가 높은 선택적 목표물을 향한 정밀 폭격이다. 이러한 폭격은 니체의 이른바 계보학의 과제를 떠올리게 만든다. 그것은 어떤 대상이나 개념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디서 연유하는지를 묻는 것, 어떠한 권력 의지가 작동하는지 밝혀내는 과제다. 두 책을 읽으면 〈날개〉의 첫 구절을 이렇게 바꾸고 싶어질지도 모른다. “상품이 되어 버린 천재를 아시오?”

표정훈 (출판평론가)

저작권자 © 고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