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윤태(인문대 사회학과) 교수

사회학자로서 나는 2009년 경기도 교육감 선거 직후 여론조사를 보고 크게 놀랐다. 예상을 깨고 당선된 김상곤 교육감의 핵심공약은 공교육 정상화와 혁신학교 설립이었다. 그런데 유권자들이 김상곤 교육감을 선택한 이유를 물으니 ‘친환경 유기농 무상급식’ 공약을 가장 중요하게 꼽았다. 이러한 관심의 변화는 시민들이 자녀의 건강과 복지를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하는지를 보여준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 무상급식을 비롯한 생활정치 공약이 바람을 일으켰다. 결국 큰 변화가 생겼다. 올해 전국적으로 ‘보편적 무상급식’을 실시하는 곳이 획기적으로 늘었다. 초등학교 무상급식을 실시하는 시·도는 일부 학년에 제한적으로 실시하는 곳까지 포함하면 무려 11개이다. 대구, 경남, 경북, 강원, 대전만 빠졌다. 이제 무상급식이 대세가 되었다.

정부는 부유층까지 무상급식을 제공하면 저소득층에게 줄 예산이 줄어든다며 반대한다. “삼성그룹의 손자에게도 공짜점심을 주는 과잉복지”라고도 주장한다. 그러나 저소득층만 주는 무상급식이 가난한 학생을 스티그마로 만들어 인권을 침해하는 현실은 외면한다. 교육방송 <지식채널e> ‘공짜밥’ 프로그램에서 볼 수 있듯이 급식비 면제를 받으려면 보험료 납부액 자료, 기초생활수급권자 또는 한부모가정이라는 통합신청서를 제출해야 한다. 수많은 초등학생들이 마음의 상처를 입고 인터넷에 “너무 창피하다”, “아이들이 눈치채면 어떡하죠”라는 글을 올렸다. 눈물 없이 보기 힘들다.

우리들이 학교에서 눈칫밥을 먹거나 가난한 집 아이라는 낙인이 찍힌다면 느낌이 어떨까? 급식비 행정절차를 바꾸는 법률개정안은 아직도 국회에서 계류중이다. 학생 인권에 둔감한 행정은 비인간적인 폭력이다. 어린 시절의 모멸감은 오랫동안 트라우마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통합신청서 때문에 고민한다면 제대로 공부에 집중할 수 없다는 점이다. 부모의 경제력 때문에 인생 출발점이 다르면 공정사회라고 보기 어렵다.

OECD 31개 국가 중 학교급식을 제공하는 나라는 20개국이다. 각국 무상급식 지원율을 비교하면 유치원·초·중학교에 전면급식을 실시하는 스웨덴과 핀란드(100%)가 가장 높다. 이어 미국(52.2%), 영국(34%), 폴란드(13.7%) 순이다. 한국은 16.1%에 불과하다. 세계 14위권의 경제규모에 비하면 초라하다.

무상급식을 의무교육과 사회복지 차원으로 보면서 급식예산을 증가하는 것이 세계적 추세이다. 스웨덴의 유치원은 점심은 물론이고 아침까지 제공하고 간식도 다양하다. 유럽연합은 작년부터 막대한 재정을 투입하여 학교에서 신선한 과일과 야채를 공급했다. 저소득층 아동일수록 신선한 과일, 채소, 우유 섭취량이 적고 이것이 계층간 영양 불균형의 요인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이다.

대한민국 헌법에는 ‘초·중학생에 대한 교육은 무상으로 한다’고 적혀있다. 교육을 국가의 의무로 생각하는 OECD 국가들은 공교육비 부담을 학부모에게 맡기지 않는다. 오히려 모든 학부모에게 소득수준에 관계없이 매월 15~30만원 상당의 아동수당 또는 가족수당을 지원한다. OECD 국가들은 평균 GDP의 2.3%를 학부모를 지원하는 데 쓰고 있다. 한국은 0.27%에 불과하다. 아동수당은 아예 없다. 만약 적절한 아동수당이 지급된다면 무상급식을 주지 않아도 학부모 부담을 덜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이 선진국으로 발전하기 위해서 가장 시급한 문제는 교육복지예산이 획기적으로 증가하는 것이다. 한국 학부모들은 전체 교육비의 42.4%를 개인적으로 부담한다. 이것은 칠레를 제외하고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비율이다. OECD 국가에서 학부모들이 부담하는 비율은 평균 17.4%이다. 미국 학부모도 14%만 부담한다. 세계에서 가장 심각한 한국의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학부모의 교육비 부담을 줄이는 복지정책을 시급하다. 무상급식은 보편적 교육복지의 문제이자 아이들의 건강과 직결된 문제이다. 이것이 바로 정부가 아무리 반대해도 무상급식을 지지하는 여론이 90% 가까이 유지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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