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총학생회(총학) 선거가 끝날 무렵인 지난해 12월, 일부 언론은 대학가에‘운동권’총학이 돌아왔다고 경쟁적으로 보도했다. 본교의 후마니타스 선본을 비롯해 서울대와 연세대, 이화여대 등 서울 시내 대학 가운데 14곳의 총학에 운동권 성향의 선본이 당선됐기 때문이다. 기성언론은 이를 대학생의 사회참여 의식이 고조되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운동권 총학’? 학생들 반응은 시큰둥
하지만 교내 분위기는 교외에서 보는 것과 사뭇 달랐다. 운동권 총학이 당선됐다고 학생들의 사회참여가 늘어나거나, 학생회의 논리에 찬성하는 의견이 강해지지는 않았다. 지난해 11월 말 조우리 안암총학생회장이 청와대 앞에서 한미 연합훈련 반대 1인 시위를 한 것에 대해 재학생 커뮤니티 고파스(koreapas.net)에서 비판 여론이 높아지기도 했다. 김재승(사범대 컴교10) 씨는 “총학생회장의 1인 시위는 개인의 의견이 마치 본교 학생들 전체의 의견인 것처럼 전달될 소지가 있었다”며 “사회적으로도 찬반이 첨예하게 엇갈리는 이슈를 두고 경솔하게 행동한 것 같다”고 말했다.

총학생회의 대학생연합단체 참여에도 미지근한 반응이었다. 총학생회장이 한국대학생연합(한대련) 의장직에 출마 의사를 밝혔지만 한대련 의장 출마에 관한 안건은 지난 겨울방학에 열린 임시 전학대회에서 참석대의원 43명 중 22명이 반대해 부결됐다. 이은국(정경대 정외09) 씨는 “다수의 학생들이 한대련을 아예 모르거나 한대련 식의 투쟁 방식과 활동 내용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사회 현안에 대한 문제제기나 참여가 늘어났다고 보기도 어렵다. 조우리 회장이 당선 이후 참여한 현안은 등록금 문제, 미화노조와 재개발 등 지난 총학에서 다뤘던 것과 비슷한 정도다.

(左) 비권이었던 41대 안암총학은 촛불문화제에 참가했다.  (右)운동권인 42대 안암 총학은 학생복지 향상에도 노력을 기울였다. (사진=고대신문 news@)

운동권과 비권의 사라지는 경계
2000년대 들어 갈라졌던 운동권이나 비운동권(비권)의 구분은 점차 사라지고 있다. 운동권 성향 학생회가 학생복지 차원의 공약을 주요 정책에 포함시키고, 비권 성향의 학생회는 사회 현안에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하려 하는 식이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게 지난해 안암총학생회 선거다.

당시 출마한 3개 선본의 주요 공약은 등록금 인하를 비롯해 커리큘럼 개편이나 전과제도 도입 등 일반적으로 학생들의 복지와 관련된 사안이었다. 당시 투표에 참여했던 양묘현(문과대 철학08) 씨는 “각 선본의 주요 공약이 비슷해 선본별로 어떻게 구분해야 할 지 모르겠다”며 “때문에 결국 뽑는 선본은 어쩔 수 없이 가장 우리 의견을 잘 반영할 것이라 판단되는 같은 단과대 출신 선본이다”고 말했다.

학생대표자들 역시 총학생회가 운동권인지 비권인지로 학생들의 성향을 파악하는 것은 무리라고 말한다. 조나은 전 문과대 학생회장은 “어떤 성향의 총학이 당선됐는지를 보고 학생들의 성향까지 판단하는 것은 억지스럽다”고 말했다.

학생회와 학생들은 변화하고 있다. 당선된 학생회에 새겨진 ‘색깔’보다는 학생회의 변화 양상을 눈여겨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25대 안암총학생회장 허영 (사)일촌공동체강원본부 대표는 “운동권과 비권 총학은 각자 과거에 서로 내세우던 공약들을 주요 정책에 포함시키고 사업 진행방법을 다변화했다”며 “학생들이 ‘좌경화’ 혹은 ‘우경화’됐다는 분석은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

대학사회의 현재 상황과 성향을 이해하고 앞으로의 방향성을 예측하기 위해서는 ‘편 가르기’는 낡은 잣대가 되었다. 좀 더 세심하게 대학생과 학생회의 변화 양상을 파악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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