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고대생에게 학교법인은 구름 속의 존재다. 더욱이 학생의 동선에서 비껴난 인촌기념관에 위치한 법인 사무실을 찾을 일은 거의 없을 성 싶다. 2009년 7월에 취임한 이래 네 번째로 고대신문 기자와 마주한 김정배 고려중앙학원 이사장은 학교 발전과 재단의 역할에 대해 거침없이 쏟아냈다.
-법인이 학교를 도와주면 되지 않나요
법인은 고려대 뿐만 아니라 고려사이버대학, 중앙고등학교 등 산하 여러 학원들을 신경 써야 한다. 재단의 역할은 이들 모두가 건실하게 운영되도록 하는 것이다. 고려대의 1년 예산이 3개 의료원과 산학협력단을 합쳐 1조 7000억 원 정도다. 그 중 1%만 아껴도 170억 원이다. 이 금액은 법인이 1년 동안 수익사업을 열심히 해야 벌 수 있는 돈이다. 재단이 아무리 지원을 해도 예산 하나 잘못 세우면
물거품이 되는 것이다.
도움을 주는 것만큼 학교가 자금운영을 제대로 하는지 따지는 게 중요하다. 명분 없이 돈을 지원하면 학교가 망한다. 부모도 자식한테 명분이 있어야 돈을 주지, 그렇지 않으면 자식은 결국 일을 안 한다. 게다가 정부의 교육정책 변동이 극심해서 법인이 재원을 확보해야 미래에 대응할 수 있다.
-이사장님 취임이후에 재단전입금이 얼마나 늘었습니까
큰 차이는 없다. 오히려 명분 없는 지출을 중단시켰다. 법인 실·국장들이 재단이 알아야 할 학교 상황은 꼼꼼히 점검하고 있다. 학교가 은행에 돈을 빌릴 때도, 교육부에 사업 승인을 받을 때도 그 책임의 주체는 결국 법인이다. 재단은 그 책임을 감당해야 한다.
-김병철 총장과 학교 발전에 대한 논의가 있었나요
두세 번 만나 전반적인 방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총장 출마 시부터 연구성과를 강조했고, 또 이공계 출신이라 잘 해내리라 믿는다.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총장의 구상을 법인은 반대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성과 없이 비용만 들여서는 곤란하다. 법인이사회에 나가 총장에 대한 중간평가를 하겠다고 이야기했다. 앞으로 총장과 보직교수들이 더 열심히 뛰어야 한다. 교직원들도 적극적으로 협조해줘야 한다. 일단 뽑았으면 자꾸 발목만 잡지말고, 마음껏 일하도록 도와줘야 한다.
-지난해의 경영진단결과가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학교정책의 연속성에 의문입니다
김병철 총장이 선임된 지 이제 3개월이다. 신중히 접근해야 할 부분이고, 내부적으로 진지한 논의가 있을 것이다. 집행부의 연속성 문제는 총장선출 방식에서 찾아야 한다. 지금 교수들은 편을 가르는 데만 혈안이다. 뽑아만 놓고 책임은 다른 데에 전가한다. 총장이 돈을 여기저기 쓰기만 하고 채울 생각은 안 하는데도 학교는 잠잠하다. 총장이 무엇을 하는지, 무엇을 했는지에 대한 관심도 평가도 없
다. 이런 상황에서 연속성을 기대하는 건 무리다.
-올해 총장초빙위원회를 발족해 총장선임방식을 바꾸겠다고 했습니다
의견수렴의 과정은 있어야 하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총장선출은 간선제로 바꿔야 한다. 누가 보더라도 총장의 자격이 있는 분을 총장으로 추대하는 방식이 옳다. 서울대, 연세대도 최근 간선제로의 전환을 발표했다. 학교 출신이든 외국 학자든 정말 학교를 발전시킬 사람을 총장으로 모셔야 한다. 106년의 역사를 가지고서 그걸 소화하지 못해서 되겠나.
-이번 총장선임 과정에서 교수투표 방식과 재단 개입여부를 두고 의혹이 일었습니다
잘못된 정보다. 총 30명 중 교수가 15명인 총장추천위원회에서 최다 표를 받은 사람이 총장이 됐다. 총추위의 운영 방법까지 교수들과 협의하며 정했다. 재단이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개입할 수 있나. 민주주의가 이 정도로 진전되었으면 소소한 것으로 걸고 넘어지지 말고 규정대로 움직여야 한다. 그리고 이겼으면 축하해주고 졌으면 승복하면 된다.
-최근 학생들이 본관을 점거하고 등록금 인하와 교육환경 개선을 요구했습니다
기본적으로 학교는 학생의 부담을 최소화하는 선에서 정책을 짜야 한다. 하지만 이번 학생들의 행동은 지나쳤다고 본다. 매년 4.18기념식 때는 그 주역들이 총장을 방문한다. 그런데 올해는 어땠나. 총장이 총장실에 없어 교우들이 당황했다. 이런 일은 내 기억으로는 처음이다.
본관점거는 30년 전의 방식이다. 그렇게 점거해서 학생들이 얻은 것이 무엇인가. 취임 초에 총장을 찾는 손님들이 얼마나 많았겠는가. 학생입장에서 서운한 감정이나 반대의견을 얘기할 때는 당당하게 말해야 한다. 반대로 생각해서 학생이 뭐 잘못했는데 교수나 직원이 학생회실을 점거한다면 어떻겠는가. 신문을 보니 등록금 상위 10개 대학에 고려대는 들지도 못했다. 나는 속으로 창피하다고 느꼈다. 우리보다 많은 대학에도 이런 일은 없는데 말이다. 전반적인 대학 등록금 수준이 문제라면 그것은 정부에 항의해야할 일이다.
-세종시의 위기가 본교에 영향이 있나요
세종시에 캠퍼스를 지으려고 계획했을 당시 부지가 평당 37만 원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평당 237만 원이다. 30만평을 구입하기로 했는데 그러면 땅값만 7000억 원을 써야 한다. 세종시에 아파트를 짓는 건설업체들도 포기하는 하는 상황이다. 그 돈이 있다면 차라리 현재의 세종캠퍼스에 활용하는 게 낫다.
-재단 산하 고려사이버대학의 광고가 고려대를 연상시키는데
사이버 대학과 고려대의 연계를 구상중이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교육은 일장일단이있다. 고려대의 오프라인 교육을 온라인 교육과 경쟁시킬 필요가 있다. 과목 몇 개를 선정해서 온라인 교육을 해보니 학교에서 밤낮 수업 듣는 것보다 내용도 충실하고 문헌자료와 시청각 자료도 견실하다면 굳이 학교에 나와야 되는가? 그런 걸 시범적으로 하도록 얘기해 볼 생각이다.
-올해 카이스트에서 학생 4명이 자살했습니다. 대학생이 좌절하고 있습니다. 학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이상을 품고 꿈을 키워가는 학생들에게 어떻게 좌절이 없고 고민이 없겠나. 학생들이 긍정적으로 생각했으면 좋겠다. 일단 태어났으면 죽지 말고 살아야 한다. 그리고 어떻게 잘 살지를 고민해야 한다. 사회를 비판하는 것도 일리는 있지만 발전이란 긍정적인 면을 보고 그것을 재발견 하는 것이다. 해납백천(海納百川)이라. 큰 사람 되기 위해서 모든 것을 허용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 그리고, 강조하고 싶은 것은 시간을 아껴 쓰라는 것이다. 시간을 꼭 유익하게 써야 한다.
인터뷰 | 장민석 기자 moon@kunews.ac.kr
글 | 위대용 기자 widy@
사진 | 조상윤 기자 ch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