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 남자를 만났다. 긴 머리에, 꿰뚫는 눈빛, 묘하고 피폐한 얼굴. 이제껏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천재적인 그의 모습은 내게 충격을 주었다.”

작곡가 베를리오즈는 파가니니를 이렇게 회상했다. 시인 하이네는 파가니니를 ‘바이올린을 든 흡혈귀’라고 불렀다. 파가니니의 연주를 들은 몇몇 여자들은 히스테리를 일으켜 드레스를 찢었다. 점잖은 신사들도 광기에 사로잡혀 폭력을 휘두르기까지 했다. 이러한 사료는 파가니니의 ‘악명’이 얼마나 드높았는지를 보여준다. 1784년 이탈리아 제노바에서 태어난 파가니니는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라고 불렸다. 그의 독특한 용모와 경이적인 연주 실력은 센세이션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파가니니는 바이올린 한 대만으로 오케스트라의 소리를 모방했다. 당나귀, 개, 닭 등의 소리를 흉내 내기도 했다. 파가니니는 연주 도중 현 하나가 끊어지면 연주를 중단하지 않고 세 현으로 연주를 계속할 정도로 ‘괴물’ 같았다. 파가니니는 G현 하나만으로 곡 하나를 연주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작곡가 리스트가 “그가 연주하던 네 번째 현은 파가니니가 살해한 애인의 창자다.”라고 말한 적도 있다. 바이올린 연주자로서 파가니니의 유명세는 과연 전설적이었다. 

파가니니는 뛰어난 작곡가이기도 했다. 파가니니는 타르티니, 로카텔리 순의 바이올리니스트 겸 작곡가 계보를 잇는다. 파가니니의 곡은 이 계보의 절정이자 바이올린 음악의 정수라고 평가받는다. 파가니니의 영향력은 리스트, 샤를 드 베리오, 비외탕 등의 작품에서도 드러난다. 일례로 리스트의 ‘파가니니에 의한 초절기교 연습곡’을 들 수 있다. 이는 파가니니의 영향력이 얼마나 컸는지를 보여준다.

파가니니의 대표작을 꼽자면, 단연코 ‘바이올린을 위한 24개의 카프리치오’다. 카프리치오는 ‘일정하게 정해진 틀 없이 작곡가의 영감에 의해 자유롭게 쓰인 곡’을 뜻한다. ‘바이올린을 위한 24개의 카프리치오’(이하 카프리치오)는 기교 중의 기교를 모아놓은 곡이다. 파가니니는 반주 없이 바이올린 단 한 대로 대담하고 기발한 기교의 향연을 구축해낸다. 카프리치오는 ‘악기의 여왕’ 바이올린만이 표현해낼 수 있는, 날카롭지만 화려한 음색을 잘 드러낸다. 로카텔리가 작곡한, 24개의 카프리치오로 구성된 ‘바이올린의 기법’은 파가니니의 카프리치오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파가니니는 로카텔리의 ‘바이올린의 기법 제7번’을 그대로 따와서 ‘카프리치오 제1번’을 만들었다. 참고로 카프리치오의 마지막 곡은 박찬욱 감독의 영화 <친절한 금자씨> OST에 삽입된 바 있다.  

파가니니 음악의 정수를 맛보려면, 루지에로 리치의 연주를 적극 권한다. 파가니니 곡 같은 난곡을 척척 소화하는 연주자는 루지에로 리치가 거의 유일하다. 루지에로 리치는 ‘파가니니 스페셜리스트’로 불릴 만큼 파가니니 연주에 있어서 독보적인 존재다. ‘파가니니가 살아서 돌아왔다’라는 찬사도 나왔다. 아인슈타인은 루지에로 리치를 “모차르트 이래로 가장 놀랄 만한 음악의 천재”라고 일컬었다. 루지에로 리치는 세계 최초로 파가니니 카프리치오 음반을 녹음하기도 했다. 기존 연주자들이 카프리치오 전곡 레코딩을 기피해왔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그의 카프리치오 전곡 레코딩은 그 시도만으로도 기념비적인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루지에로 리치는 카프리치오를 총 네 번 녹음했다. 내가 추천하는 음반은 1975년에 이뤄진 네 번째 레코딩이다. 관록이 빛을 발한다. 테크닉도 여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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