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2-19 13:56 (화)
그에게 국적은 형식일 뿐이다
그에게 국적은 형식일 뿐이다
  • 조은지 기자
  • 승인 2012.03.18 13: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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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박물관 이사장 야마다 사다오(山田 貞夫) 씨 인터뷰

고대신문 도쿄취재③ - 고려박물관을 가다

한국 드라마 OST와 카라, 소녀시대의 노래가 흘러나오고 한국 소주 포스터가 붙어 있는 도쿄 신오쿠보의 골목길을 지나 한적한 길로 들어서니 작은 현판이 보였다. ‘高麗博物館(고려박물관)’ 한자로 또박또박 적혀 있는 현판은 작지만 알찬 박물관의 존재를 조용히 알려주고 있었다.

건물의 가장 높은 곳, 7층에 위치한 고려박물관은 대형 강의실의 절반쯤 되는 크기의 박물관이다. 문을 열자마자 보이는 기획전시 공간에서는 중국 해남도의 조선인 집단학살에 대한 전시가 한창이었다. 전시실 벽에는 해남도 피학살자 유해 발굴 사진과 생존자의 기록, 집단학살 당시를 기억하는 해남도 주민들의 인터뷰 자료가 액자에 정리돼 있었다. 다른 한쪽에는 상설전시로 한일관계의 통사(通史)를 정리한 액자가 있었고, 재일교포나 일본인들이 한국 전통문화를 체험하도록 한복과 가야금 등을 비치해두고 있었다.

2001년 개관한 고려박물관은 값비싼 유물 대신 박물관 회원들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역사 자료를 전시하는 ‘역사 박물관’이다. 그동안 박물관에서는 일제 강점기 한국 문화재의 약탈과 반출 현황 조사, 관동대학살을 묘사한 당시의 그림 자료 및 신문 기사, 해방 전 재일교포의 생활상 등을 주제로 기획전시를 했다. 또 한국과 일본의 유사한 문화를 전시하기도 했다.

“중국 해남도는 대만과 비슷한 크기의 큰 섬으로, 일제 강점기에 끌려간 조선 노동자들 1000여 명 이상이 집단학살을 당한 곳입니다. 하지만 일본 사람들은 모르고 있지요.”

고려박물관 이사장 야마다 사다오(山田 貞夫) 씨가 기획전시를 둘러보는 기자들에게 설명했다. 30여 년 동안 거의 매년 한국을 여행하고 유학생활을 거친 그의 한국말은 거침이 없었다.

▲ 사진 | 손민지 기자 marie@

엘리트 청년에서 자원봉사가로
야마다 씨는 50여 년 전 와세다 대학원을 다니던 청년 시절, 일본 역사 교육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게 됐다. 대학원 학비를 벌기 위해 고등학교에서 사회 과목을 가르쳤던 야마다 씨는 교과서를 교재로 학생들을 가르칠 수 없었다. “교과서에 제대로 된 역사가 적혀있지 않았습니다. 틀린 내용을 가르칠 수는 없어서 교과서를 쓰지 않았어요. 교과서 문제가 일어나기 이전부터 그렇게 교육을 했습니다”

교사를 그만 두고 가업인 도자기 판매를 이어 하던 야마다 씨는 마흔 무렵 다니던 교회가 서울의 한 교회와 결연 관계를 맺게 되면서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이후 한국의 매력에 빠진 그는 거의 매년 한국을 여행했지만 매번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아 한국 생활을 결심했다. 당시에는 장기 비자를 받으려면 유학을 해야 했기 때문에 가업을 이으며 관심을 가지게 된 미술사를 공부하기로 결심했다. 그가 판매한 도자기가 임진왜란 때 끌려간 조선 도공으로부터 시작된 하기야키(萩焼)였기 때문이다. 그는 강경숙(충북대 고고미술사학과) 명예교수 밑에서 3년간 도자사(陶瓷史)를 공부했다. 2010년에는 강 교수의 <한국 도자사의 연구>를 일본어로 번역해 출판하기도 했다. 이후 일본으로 돌아간 야마다 씨는 지인의 추천을 받아 2004년 이사장이 된 뒤 지금까지 박물관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사실을 말할 수 없는 사회
박물관에서 일본의 침략행위에 대한 내용을 전시하다 보니 가끔 일본 우익단체가 찾아와 항의하는 일도 있었다. 하지만 야마다 씨의 태도는 꿋꿋하다. “‘문화재 약탈’이라는 표현에 대해서 항의를 했었지요. 하지만 식민지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이뤄진 일을 어떻게 약탈이 아니라고 하겠습니까” 다행히도 박물관이 코리아타운에 위치해있기 때문인지 물리적인 항의는 없었다. “사실 일본 사람들은 학교에서 제대로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이런 역사를 잘 모릅니다. 최근에는 한류 때문에 한국에 좋은 인식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서 박물관에 오면 역사를 제대로 알아야겠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하지만 여전히 일본 사회에는 과거를 들추는 일들이 금기시되고 있다. 실제로 오사카 시립 인권 박물관에서 준비한 해남도 학살에 대한 전시가 갑작스레 저지됐고, 일본의 한 교수가 고려박물관의 자료를 빌려 전시를 준비했지만 학교에 의해 금지 당한 일도 있었다. 야마다 씨는 “지금도 진실을 말할 수 없는 상황들이 존재한다”며 슬퍼했다.

변화는 올바른 이해해서 시작
야마다 씨는 현재 해방 후의 재일교포를 다룬 기획전시를 계획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는 재일교포의 전통과 생활, 국적 문제와 한국 민단과 조총련의 대립, 일본 내 재일 교포 차별에 관한 내용을 담을 예정이다. “여러 나라 사람들이 일본에 와 있지만 본명이 아닌 일본 이름을 쓰는 건 한국인뿐입니다. 한류에 익숙해진 일본 사람들은 괜찮다고 말하지만 여전히 차별 때문에 이름조차 쓰지 못하는 현실이 존재해요”

변화를 위해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역사에 대한 올바른 이해뿐만이 아닌 변화를 위한 ‘행동’이다. 그리고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를 하는 사람, 야마다 씨의 미소가 따뜻한 것은 그것을 분명히 알고 또 행동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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