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4-08 01:25 (월)
무서워서 쫄았지만, 죽으라는 법은 없더라
무서워서 쫄았지만, 죽으라는 법은 없더라
  • 위대용 기자
  • 승인 2012.05.05 23: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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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쎼쎼"만 알고 떠난 20일간의 대만 자전거 여행 上

오랜만에 보는 고층빌딩이었다. 대만의 수도, 타이페이(Taipei)에 점점 가까워질수록 드문드문 내리던 비도 점차 그쳤다. 이제 끝이라는 생각에 그동안 비를 막아준, 지긋지긋한 우비와 방수화를 벗어 던졌다. 오전부터 내내 맞은 비 때문에 축축히 젖은 몸이 무거웠지만 이상하게 다리는 더 힘차게 움직였다. 해가 지고 있는지 그림자가 길어졌다. 대만 자전거 일주를 시작한 1월 9일로부터 20일째 되는 날이었다.

대만은 우리나라보다 작은 나라지만 경치가 아름답고 한 겨울에도 따뜻해 세계 각국의 자전거 여행자들이 대만을 찾는다. 나도 올해 1월 9일부터 약 20일 간 추위를 피해 대만으로 향했다. ‘걘역시2’에 있는 구글맵에 의지해 해안도로를 시계 반대방향으로 달렸다. 엄청난 바람과 비, 업힐(오르막길)이 날 가로막았지만 끝까지 날 지탱해준 건 종아리 근육도, 허벅지 두께도 아닌 자존심이었다. 이왕 시작한 거 제대로 마무리 짓고 싶었다.

▲ 여행경로. 타오위안 공항에서 출발해 20일만에 타이페이에 도착했다.

출발
대만의 타오위안 공항에 도착하니 이미 밤 9시를 훌쩍 지나 밖은 어두웠다. 설상가상으로 한국에서 분리해 간 자전거의 조립을 끝내니 12시였다. 물론 공항에서 타이페이로 가는 버스가 있지만, 타이페이는 내 진행방향과 정반대 쪽에 있어서 나는 공항에서 바로 일주를 시작할 생각이었다. 드디어 자전거를 타고 공항 밖으로 출발했다. 나중에 만난 대만 친구에게 이 얘길 해줬더니 공항에서 밖으로 나가려면 고속도로를 지났을 텐데 위험하지 않았냐고 내게 물었다. 그 길이 고속도로라는 걸 그때 알았다.

나도 몰랐던 생명의 위협에서 벗어나 공항 밖으로 나온 난 새벽 2시까지 주변을 헤매다가 어떤 마을에 있는 사당을 발견하고 잠을 잘 수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잘 뻔 했다. 사당 주변이 휑한 논이라서 거세게 부는 바람이 텐트를 두드렸다. 마치 사람이 중얼중얼 대는 것 같은 느낌도 들었고, 누군가 걸어오는 것 같은 인기척 같이 들렸다. 자는 둥 마는 둥 하다가 날이 밝자마자 짐을 챙겨 그곳을 떠났다.

“오늘은 방이 없는데요”
일찍 출발해서인지 오후 1시도 안 돼 목적지인 신주(Hsinchu)에 도착했다. 미리 알아 본 게스트 하우스 ‘이스트도어(East Door)’를 찾아 밀린 잠을 청하고 휴식을 취했다. 내가 한국인인 걸 알고는 주인남자가 바로 어제 한국인 자전거 여행객 2명이 묵고 갔다고 말해줬다.

▲ 대만의 스쿠터 전용도로. 덕분에 자전거도 비교적 안전하게 도로를 이용할 수 있다.

다음 목적지인 타이중(Taichung)까지는 약 100km정도 떨어져 있어서 다음날 오전 9시에 출발했다. 타이중까지 가는 길은 지루했다. 오르막, 내리막도 없고 주변은 온통 밭이었다. 알고 보니 대만의 서쪽은 대부분 평지였다. 한국과 다르게 대만은 스쿠터 전용도로가 있어서 자전거도 비교적 안전하게 도로를 이용할 수 있었다. 하루 종일 달려 타이중에 도착하니 이미 어둑어둑했다. 마음이 조급해져 동네를 몇 바퀴 돌고 나서야 타이중리 호스텔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문에 붙어 있는 번호로 전화를 걸었더니 어떤 남자가 받았다. 안도의 한숨을 쉬고 “오늘 밤 묵고 싶다”고 말했다. 서툰 영어가 들려왔다.

"Sorry, Today is no room"

혹시나 싶어 다시 물었고 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알았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지만 마땅한 대책은 없었다. 중국어를 모르니 여관도 찾기 힘들었다. 예상치 못한 위기상황이 닥치자 덜컥 겁부터 났다. 일단 안 되는 중국어로 주변 사람들에게 근처에 여관이 있냐고 물어봤다. 다행히 한 식당 아주머니가 주변에 묵을 만한 곳이 있다면 전화번호를 주셨다. 기쁜 마음에 받고 보니 타이중리 호스텔 번호였다. 이미 전화를 했고 방이 없다고 하는 걸 몸으로 아주머니에게 보여줬다. 아주머니는 내가 전화가 없는 걸로 이해하시고 본인의 전화기로 전화를 걸어주신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아까 전화했던 사람인데 주변에 묵을 만한 곳이 없냐고 물었다. 그러자 거기서 기다리란다. 잠시 후 한 남자가 왔다. 그는 일본인인데 이민을 와서 살고 있다며 나를 근처에 있는 악세서리 가게로 데려갔다. 같은 건물 2층에 게스트 하우스가 있으니 잠시 여기서 기다리란다. 기다리는 동안 가게 주인으로 보이는 여자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그 여자는 자신을 ‘아키’라고 소개하며 일본인이라고 말했다. 반바지를 입고 있는 내가 안 돼 보였는지 그녀는 내게 따뜻한 차를 내줬다. 고마운 마음에 한국에서 가져간 초콜렛 ‘자X시간’을 줬더니 정말 좋아했다. 짧은 일본어로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눴는데 교토에서 태어난 아키 씨는 대만에 놀러왔다가 만난 대만 남자와 결혼했다고 한다. 햇수로는 어느새 6년째란다. 좀 있으니 방주인으로 보이는 젊은 대만남자가 왔고 대만돈 400달러(한화로 16000원)에 하룻밤 묵을 수 있었다. 이날 이후부터는 도착하기 전날 미리 게스트하우스에 전화해 묵을 수 있는지 확인했다.

▲ 타이중에서 만난 사람들. 왼쪽부터 나, 아키 씨 남편, 아키 씨, 타이중리 호스텔 주인, 게스트하우스 주인.

경찰에 붙잡히다
그렇게 나의 여행은 순조롭게 흘러가는 듯 했으나 예상치 못한 위기도 있었다. 타이중에서 다음 도시인 자이(Chiayi)까지 가는 도중 마땅히 잘 곳이 없어 인적이 드문 동네 사당에 텐트를 치려는 참이었다. 워낙 시골이라 별일 있겠나 싶었는데 멀리서 경찰차 한 대가 와서 멈추더니 경찰 2명이 다가왔다. 나는 영어로 한국에서 왔고, 자전거 여행 중이라고 말했지만 경찰들은 알아듣지 못하는 눈치다. 그런데 웃기는 건 약간 뚱뚱한 경찰의 휴대폰 벨소리가 김범수의 ‘보고 싶다’였다. 경찰들은 답답했는지 내 여권을 보더니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알고 보니 영어를 할 줄 아는 동료에게 전화를 걸어 나를 바꿔주려는 것이었다. 그렇게 전화통역으로 힘겹게 의사소통을 했는데, 얼마 전 이 지역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해서 여기서 자면 위험하다고 한다. 하지만 마땅히 갈 곳이 없다고 하자 두 경찰은 잠시 고민하더니 자전거와 짐을 차에 실으란다. 그리고는 나를 시내에 있는 모텔로 데려다줬다. 무려 1000달러(4만원)이나 하는 곳이었다. 너무 비쌌지만 경찰의 눈치를 보니 그곳에 묵을 수밖에 없었다.

대만에서 만난 고대생 왕통거 씨
여행 일주일째가 되는 날에는 반가운 사람을 만났다. 대만의 부산이라고 할 수 있는 항구도시 카오슝(Kaoshiung)에 도착한 나는 하루 전에 전화로 예약한 ‘하마센 호스텔’을 찾았다. 그곳 주인은 3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왕통거 씨였는데 그는 내가 자전거 앞에 붙여둔 고대신문 명함을 보더니 자신도 고려대를 졸업했다며 반가워했다. 한국말도 어느 정도 했는데 하루 전날 한국인 자전거 여행객 2명이 왔다 갔는데 한 명이 고대생이라고 말해줬다. 알고 보니 이스트도어에서 들었던 그 여행객이었다. 왕통거 씨는 2001년에 교환학생으로 고려대를 왔었고 관악부 윈드앙상블에도 들어갔었다고 한다. 그는 졸업앨범도 보여줬다. 왕통거 씨와의 인연 덕분에 그날은 다른 날보다 좀 더 마음 편히 쉴 수 있었다.

▲ 카오슝 하마센 호스텔 주인 왕통거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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