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날이 지나고 나의 마음 지쳐갈 때
내 마음속으로 쓰러져가는 너의 기억이 다시 찾아와 생각이 나겠지
너무 커버린 내 미래의 그 꿈들 속으로
잊혀져 가는 너의 기억이 다시 생각날까
                                  - 영화 건축학 개론 OST ‘기억의 습작-전람회’ 中에서


1990년대, 풋풋하면서도 어쩌면 바보 같이 서툰 첫사랑을 맞이했던 그들. 15년이 지나고 마주해서야 서로가 사랑이었음을 확인한다. 그리고 이내 첫사랑을 떠내 보낸다. 함께 이어폰을 나누어들었던 노래 ‘기억의 습작’이 담겨있는 CD플레이어를 마지막으로.

영화 <건축학개론>에 등장하는 어수룩하고 비겁해 보이는 극중 승민이와 마음 한 번 제대로 표현하지 못해 엇갈리기만 하는 극중 서연을 보면 화가 나기도 하지만 그래도 영화를 본 후 마음이 짠해지는 것은 묻어만 두었던 기억들이 건드려졌기 때문 아닐까.

<건축학개론>이 대한민국에 첫사랑 열풍을 불어왔다. 그리고 그 열풍의 중심엔 때 묻지 않은 순수함으로 관객을 사로잡은 서연, MISS A 수지가 있다. 열아홉의 나이지만 드라마․영화․가요계 신인상을 휩쓸며 화려한 조명을 받고 있는 수지는 여느 10대 여학생처럼 역시 톡톡 튀는 매력을 발산했다. 하지만 쓰고 있는 왕관만큼이나 무거운 무게를 견디고 있는 그녀였다. 고대신문이 MISS A 수지를 만났다.


- 영화 <건축학개론>이 큰 흥행을 거뒀다
“깊이 간직하던 첫사랑에 대한 추억들이 영화를 보며 되살아났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첫사랑이라는 소재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소재잖아요. 어쩌면 찌질했던 혹은 소중했던 기억들을 떠올리면서 ‘저땐 저랬지’하는 그리움을 많이 느끼신 것 같아요”

- 본인에게 첫사랑은 어떤 기억으로 남아있나
“아직까진 첫사랑이란 감정에 대해서 확신이 없어요. 사랑이란 감정 자체를 모르는 것은 아닌데 첫사랑이라 판단하기 어렵더라고요. 학창 시절 연애를 했던 경험도 있고 분명 누군가를 좋아해봤던 감정은 있는데 말이에요. 그래서 연기를 할 때 좋아했었던 감정, 설렜던 적이 있는 경험들을 최대한 기억 속에서 끄집어내며 풋풋한 첫사랑을 하고 있는 서연이가 되기 위해 노력했어요”

- 누군가는 수지 씨를 첫사랑으로 기억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글쎄요. 초등학교 4학년 빼빼로데이였어요. 당시에 빼빼로를 꽤 많이 받았었는데요(웃음) 품에 안고 집에 가는 도중이었는데, 같은 반이었던 친한 친구가 절 좋아했나봐요. 수줍음이 건축학개론의 승민이처럼 많은 친구였는데, 쪼르르 달려와서 빼빼로를 주고 도망가더라고요. 그 수줍음을 보고 설레고 당황한 마음이 들었던 것이 기억에 남아요. 하지만 저를 좋아했던 사람이었다고 해도 제가 그 사람에게 첫사랑이었는지는 확신할 수 없겠죠?”

- 운명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이 있나
“같은 버스에 올라탔는데 같은 자리에 우연히 앉은 사람이 제 이상형이라면 운명으로 믿고 싶어요. 또한 같은 생각을 하고 같은 것을 좋아하는 등 공통적인 느낌을 받는 사람에게 눈길이 가요. ‘저 사람이 나랑 뭔가 있나?’는 생각을 하게 되나 봐요”

- 삶에서 사랑이 차지하는 비중은 어느 정도인가
“현재는 비중을 둘 수 없을 것 같아요. 일에 집중을 해야 하는 시기이니까요. 물론 연기를 할 때 많은 사람들을 겪어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자신은 없어요. 지금 저는 사랑은 와선 안 되는 걸림돌로 느끼고 있어요.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을 때 끙끙 앓고 소심하게 대하는 편은 아니지만, 당장은 일에만 집중하고 싶습니다”

- 아직 열아홉이다. 적성을 알아보고 직업을 선택하기엔 너무 이르지 않았나
“어렸을 때부터 노래가 좋았고 연예계 생활을 꿈꿔왔어요. 사실, 처음 연습생 생활을 할 땐 좋아하는 노래를 할 수 있다는 것 외엔 깊은 생각은 없었던 것 같아요. 기회가 빨리 찾아와서 2년간의 짧은 연습생 생활을 하고 데뷔를 할 때가 되니 아직 준비가 완벽히 되지 않았다는 생각에 불안하기도 했고요. 하지만 목표했던 것들을 하나하나 이뤄나가면서 더 많은 욕심이 생겼고 달려가고 있어요. 일을 하면 할수록 제가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것을 하고 싶은 사람인지 분명하게 알아가고 있습니다”


- 대중에게 사랑을 받는 만큼 체력적으로 힘든 부분이 있을 것 같다
“몸이 힘든 것은 괜찮은데 정신까지 같이 힘들 경우 모든 것을 놔버리고 싶을 때가 있어요. 체력적인 한계에 부딪히다보면 가끔 악마가 찾아오는 것 같아요. 그럴 땐 ‘이 일이 나랑 맞지 않나?’라는 회의감이 들기도 해요. 하지만 무대를 올라갈 때 느낌이 너무 좋고 일을 하는 게 행복해서 곧 ‘아, 이 일은 내 일이다’라고 마음을 다잡게 되요”

- ‘사람들 앞에서는 강한 척하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다’는 말을 한 적이 있는데
“제 성격상 힘든 일이 있어도 혼자 이겨내야 한다고 생각해요. 주위사람들이 때론 ‘너 그렇게 하다가 언젠가는 갑자기 주저앉고 싶고 무너질거다. 티도 내고 말도 좀 하라’고 조언해주지만 저는 그게 싫어요. 주변에 보면 사람들이 의지하고 그렇게 친구들 토닥여주는 사람 있잖아요. 제가 그런 스타일인 것 같아요. 부족하지만 충고도 나름 몇 글자 하면서 친구들에게 힘이 되고 싶고, 또 긍정적인 에너지를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때론 외로울 때가 있긴 해요. 원래 동물에 관심이 없었는데, 그래서 강아지를 키우게 됐어요”

밝게 웃는 모습으로 인터뷰에 응하던 그녀였지만, 어떤 것들이 본인을 가장 힘들게 하냐는 질문에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어린 나이로 연예계에 데뷔하고 모든 일에 책임을 져야한다는 생각이 강해보이는 그녀에게 너무 많은 짐이 실린 듯 했다. “눈시울이 붉어지신 것 같아요”라는 기자의 장난 섞인 말에 “왜 그러지”라며 웃으며 응답한 그녀는 친구들에 대해 묻자 다시 재기발랄한 모습을 보였다. “말해도 되나... 처음 말하는 건데요”라며 자신의 이야기를 다시 풀어 나갔다.


- 친구들 사이에서 별명이 ‘나댐’이라고 들었다
“나댐이는 초등학교, 중학교 때 별명이에요. 원래 사람들 앞에서면 낯을 가리고 말을 잘 못하는 내성적인 성격이었는데 친구들과 같이 있으면 본모습이 나왔던 것 같아요. 항상 한결같이 나댄다고 친구들이 지어줬어요(웃음)”

-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친구들과 스포츠를 직접 만들었어요. ‘허타’라고 이름을 지었는데, 직접 규칙도 만들었죠. 허타는 ‘허벅지 구타’의 줄임말이에요.(웃음) 허리 숙이고 다리를 굽혀서 자세를 취하고 서로 허벅지를 치는 것이 게임 방식이에요. 짝하는 소리가 더 큰 쪽이 점수를 가져가요. 아픈 것도 아픈 거지만 게임을 할 때면 그렇게 긴장감이 맴돌 수가 없어요. 친구 집에서 자주하곤 했는데, 집주인 친구가 우리가 지르는 비명소리에 시끄럽다고 조용히 하라고 하면 그 때부턴 침묵으로 게임을 진행해요. 아픈데 소리도 못지르구요. 저는 그래도 게임에서 이기던 쪽이었어요(웃음)”

- 친구들과 굉장히 특이하게 노는 것 같다
“그랬던 것 같아요. 중학교 때 시험기간이면 도서관에서 가서 장난을 치고 놀곤 했어요. 당시에 학교 도서관에 큰 거울이 있었어요. 공부가 안될 때면 잠깐 나와서 수다를 떨다가 거울 뒤에 친구랑 몰래 숨어서 종이를 먹었어요. 공부가 잘 안되니까 이렇게라도 하면 머리에 들어올 줄 알았죠. 사실 삼키진 않고 씹다 뱉곤 했어요. 지나가는 사람이 저희를 보곤 이상한 눈으로 쳐다봤던 게 기억나요(웃음)”

- 바쁜 스케줄 때문에 친구들을 잘 만나지 못할 것 같은데
“친구들이 광주에 있으니까 아무래도 잘 만나지 못하는 것 같아요. 지금 다들 고3이라 저보다 더 바쁘기도 하고. 며칠 전에 휴가를 받아서 광주로 3일 휴가를 갔었어요. 하루는 할머니 집, 하루는 집, 하루는 친구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는데 만나서 놀다가 친구 다섯 명이서 동시에 아무 말 없이 눈물을 흘렸어요.
얼마 전 예능프로그램 ‘놀러와’에서 몇 십 년 동안 소중하게 친구사이로 남아있는 분들을 보며 부럽고 짠해서 눈물을 흘렸던 적이 있었는데, 제 친구들이 아직까지 제 곁에 남아 있어줘서 정말 고마워요”   

자신을 한글자로 말한다면 ‘읭’이라는 표현을 하고 싶다는 그녀는 알면 알수록 더욱 궁금해지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다. 친구들이 자신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고 자신이 타인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좋아한다는 그녀는 대학에선 연기보다 심리학을 공부하고 싶다고 한다. 시트콤 논스톱처럼 캠퍼스 커플도 하고 싶고 대학에 대한 로망을 가지고 있다는 그녀는 웃으며 “대학이 정말 그런가요?”라고 기자에게 반문했다.

- 심리학 교수가 되고 싶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것은 정말 먼 훗날 이야기에요(웃음) 사람 심리에 대해서 궁금해요. 있는 그대로의 현상보다 그 너머에 숨어있는 이면이 궁금한 거죠. 심안(心眼)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아요. 심안은 말 그대로 마음의 눈으로 무엇을 보는 거에요. 예를 들면 지금 기자님 손가락에 난 상처를 보며 그냥 지나치지 않고 왜 저런 상처가 생겼을까를 추리하는 거죠”


- 고3인데, 대학 진학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대학은 무엇인가를 배우는 제게는 새로운 세계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하고 있는 일과 연관된 학과를 진학해서 공부하는 것도 좋지만, 연기나 노래는 직접 경험하면서 배우기도 하고 배울 수 있는 방법이 많으니까 일반 학과에 진학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심리학이나 철학, 언어학 등에 관심이 있고요”

- 수지 씨를 사랑하는 고려대학교 학생들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일단, 저를 이렇게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공부하느라 많이 힘드시죠? 대학 생활 즐겁게 즐기시면서 좋은 추억들 많이 만들어나가시길 바라요. 기회가 될 때 저를 초대해주셨으면 좋겠구요! 항상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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